초대일시_2001_1204_화요일_05:00pm
● 강연회_"시각장애인의 예술활동" 2001_1215_토요일_01:00~06:00pm 정독도서관 시청각실_서울 종로구 화동 2번지 / Tel. 02_734_5365~9 1. 일본의 시각장애인 미술교육_요헤이 니시무라_조각가 2. 한국 시각장애인 미술활동의 현황_이은주_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 총무 3. 전문예술가로서의 시각장애인_쥴리아 카심_헬렌 햄린 연구소 연구원 4. 시각장애유아를 위한 점자그림책의 교육적 효과_현은자_아동학자
아트선재센터_지하 2층 주차장 프로젝트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4-2번지 Tel. 02_733_8945
가능성의 예술운동(Able Art Movement)과 현대미술 ● 현대미술이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쨌든 "평론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현대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필자를 포함하여 소위 '전문가'들이 아무리 열심히 재단하고 바느질하고 디자인하여 옷을 지어 입혀도 왠지 임금님은 벌거벗고 있는 것만 같은 것이다. "예술"이라는 권위의 왕관을 쓰고 멋진 발걸음으로 미술관을 행진하지만 그가 입은 옷은 오로지 전문가들의 눈에만 보이는 특별한 천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고 미술계가 이 사실을 폭로해줄, 제도에 때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소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현대미술은 거의 그 대중적 기반을 상실해서 일반인들은 임금님이 옷을 입었건 안 입었건 그다지 관심조차 없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임금님의 패션쇼가 아닌 새로운 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연계가 강화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술치료(Art Theraphy)라든가, 가능성의 미술운동(Able Art Movement)같은 국제 포름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2-30 여년 사이에 몇몇 사람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시작되었던 일들이 최근 서서히 자신들이 해 온 일의 의미를 인식하고 활성화되고 있다. 이 새로운 미술에 대한 관심의 공통점이 있다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예술의 가장 근원적인 기능이 자기표현이며, 더 나아가 표현을 통한 인간의 마음의 위로와 치료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즉 예술이란 어떤 천재가 제작해서 많은 우매한 대중이 우러러보는 무엇이라기 보다는 자기가 하면서 즐기고 위안을 얻고 자기를 표명하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예술을 비장애인만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누구나 자기의 감각과 지각을 동원하여 작업을 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치유하고, 표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실현하고 발전시킬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21세기의 예술은 이렇게 '보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는 "시각장애인들이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표현 욕구와 창작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널리 알리고, 그들이 미술활동을 통해서 이를 실현하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 아래 1997년에 발족하여 1998년에 첫 '우리들의 눈' 전시를 개최하였다. 올해 3회째를 맞는 '우리들의 눈' 전에 이르기까지 그간 이 전시를 위해 애쓰고 있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품 제작에 진정 몰두하면서 그 전 과정을 즐기는 어린 제작자들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참으로 감동하였다. 미술은 시각예술로 분류되지만 그것이 시각예술이기 때문에 더더욱 시각장애학교 미술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 한편 나는 '우리들의 눈'전을 감상하면서 스스로에게 내가 이 전시에 거는 기대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어보았다. 나는 이 전시가 비장애인의 전시와는 다르기를 기대하는가? 장애의 고통을 통해 나온 만큼 뭔가 더 순수하고, 영혼을 울리는 작품들이기를 기대하는가? 나의 결론은 그런 식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장애'와 '장애'를 나누고 '장애'에 대해 뭔가 특별한 원초적 감수성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비장애'를 문화로, '장애'를 '자연'(본능)으로 보는 매우 우려할만한 잘못된 이분법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전시가 비장애인들의 전시와 같은 임금님의 패션쇼이기를 바라는가? 물론 아니다. 분명 제도권 미술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또한 제도라는 것이 그냥 헛것인 것만은 아니지만, 진정한 미술은 항상 제도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그 경계를 허물고 선을 넘나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은 미술교육과 관련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더욱 어렵고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들의 눈'전이 미술계에 던질 수 있는 의미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정도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다 어느 정도의 장애들을 갖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장애와 더불어 어떻게 자기를 실현하면서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리라. '우리들의 눈'전이 새로운 미술, 누구나 할 수 있는 미술의 진정한 가능성과 힘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재 비장애 아티스트들이 시각장애학교 미술교육을 자원봉사 차원에서 꾸려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누구나 예술을 통해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표현하고, 개발할 수 있다는 이 어린 작가들의 자신감, 당신이 누구이든, 자신의 모습을 실현함으로써 당당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들의 믿음을 통해서, 비장애인 선생님들은 '보이기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새삼 발견하고, 예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함께". ■ 정헌이
Vol.20011128a | 우리들의 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