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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라는 말은 일상세계에서 아주 익숙하게 쓰인다. 그것은 인간이 비교적 근래에 만들어낸 인공적인 어떤 재료에 대한 이름이다. 전형적인 20세기의 산물인 이 재료는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볍고 쉽게 다양한 형태로 가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에 비해 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많은 물건들이 이것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진다. 플라스틱의 어원은 plastic art라는 말에서 쉽게 그 어원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하지만 이 재료는 무언가 만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만든다라는 것에서 확장될 수 있는 창조성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주로 전자제품의 외관을 장식하고 있는 이 재료는 그 외관 안의 내용물이 고장을 일으키면 그 내용물과 더불어 버려진다. 그만큼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는 단순한 기능에 봉사하는 데 쓰이고, 그 자체를 위해서 간직되지는 않는다. 얼마간 쓰고는 버려지는 이 재료는 썩지도 않아서 환경오염의 주범처럼 여겨진다. 썩어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 재료의 나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는 이미 그 재료 안에 가공된 무엇이라는 이미지가 배어 있고, 싸구려, 겉만 번드르함, 가벼움 등의 이미지를 풍기고 있어서, 원색의 색채가 가미된 이 재료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키치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손국환과 이환권은 바로 이러한 느낌을 주는 플라스틱으로 작업한다. 그러나 그들의 작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작업은 플라스틱을 이용한 손쉬운 작업도 아니고, 키치적인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진지하며 그들은 플라스틱이라는 재료가 결여하고 있는 창조라는 의미를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를 통하여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손국환은 하루하루 특정한 색을 첨가한 액체 상태의 플라스틱을 -흔히 폴리라고 부르는- 미리 만들어 둔 틀에 붓는다. 폴리는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는 그날 그날의 온도와 습도를 재가면서 적정량의 경화제를 주사기에 넣어 세밀하게 계산된 양을 액체 상태의 폴리에 주입한다. 이를 틀 안에 부어 틀 안의 사물의 키가 2cm씩 늘어나도록 한다. 매일 뼈처럼 굳어 가는 것이다. 작품의 크기가 2m정도이므로 그는 약 100일 동안 이런 작업을 지속하며 매일 사진을 찍고 거기에 그날 그날의 온도와 습도를 기록한다. 자신이 만드는 대상의 키가 커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그 틀 안에서 자신의 대상이 성장해 가는 것을 상상할 것이다. ● 이환권은 그가 만들고자 하는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찍은 다음 포토샵을 이용해 일정한 비례로 가로, 세로의 방향으로 늘인다. 그와 같이 만들어진 사진들을 조합하여 삼차원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이때 비로소 그가 만들고자 하는 대상이 드러난다. 그것을 다시 흙으로 빚어내고, 폴리로 떠내는 것이다.
이 두 작가의 작업의 공통점은 작품이 작품 자체로 가질 수 있는 의미 이외에 작품에 어떤 부가적인 의미를 가지도록 의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들 두 젊은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그 자체로 독립적인 미적 대상이기를 원하지, 그 안에 어떤 메시지를 코드화시켜 보여주고자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작품 외에 부가될 수 있는 의미를 통해 작품이 드러나기보다는 대상의 미적 차원이 바로 작품의 의미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작품 외적인 의미의 환기를 목적으로 하는 작업은 의미의 시효가 다하는 시점에서 작업의 가치도 소멸할 가능성이 있고, 더 나아가 개념적인 차원과 미적 차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이러한 의도를 애초에 가지지 않는다. 이들은 작품이 서사적인 내용을 가지는 것을 피하고 오로지 형식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신들이 표현가능한 대상의 창조에 몰두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작업이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견고한 실체가 되기를 원한다. 작품이 독립적인 생명을 가진 실체가 되기를 원하는 만큼, 작업에서 대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적 요소와 의미는 배제된다. 그 외적 요소에는 사회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들이 대상에 품을 수 있는 감정도 포함된다. ● 이런 이유로 이 둘의 작품은 다소 정적으로 느껴지고, 전체적으로 차분한 인상이다.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이환권의 작업은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한 데도 그의 작업의 인물들의 표정은 거의 무표정에 가깝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어서 몽환적이면서도 건조한 느낌을 준다. 쭈그리고, 앉고, 서 있는 자세의 인물들은 관객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시선을 맞추지도 않는다. 그들은 의미의 중력을 벗어난 상태에서 떠 있거나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무시한다. 그래서 그들은 관객의 시선 안으로 좀처럼 들어오지 않고 환영처럼 존재한다. ● 손국환의 작업에는 우리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참조하지도 않고, 형태를 통하여 해석 가능한 코드들도 만들지 않는다. 그는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를 통해 세심하고 꼼꼼하게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하나의 사물을 만들어 낸다. 그가 만들어 낸 사물은 삼각대처럼 세 발로 서 있으며 하나의 생명체처럼 자신의 성장일지를 가지고 있다. 이 사물이 가진 화려한 색채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신의 성장과정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고운 색채의 줄무늬를 가진 이 무용한 사물은 의미의 배제를 통해 보다 더 자신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 자신의 대리물이다. 의미의 심연에서도 단단한 지반을 가지고 서 있거나 서고 싶은. ■ 안성열
Vol.20011125a | 손국환_이환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