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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닿고 사라진 자리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 여운을 남긴다. 마치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자국과도 같이 삶은 이러한 서로 다른 자국들이 얽혀가며 채워지는 과정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인간과 삶에 대한 단편들을 보여주는 이순종과 이향숙의 작업은 사회와 소통하는 그들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시간적, 공간적 흐름 속에 남겨진 흔적들을 통해 삶의 체험, 순간적 경험을 가시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사고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쉽게 표면화되고 인식되지 않는 삶의 흔적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움직이는 자국'을 작품에 담고자 한다. 때로는 너무 순간적이어서 쉽게 잊혀지는 것, 아픈 기억의 상처, 또는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되는 흔적, 스쳐 지나가는 심리적인 의식, 이 모든 것들은 시간 공간 사고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는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흔적들이 담겨지는 용기(容器)로서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몸에 부여된다. ● 시간이 항상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듯이 몸 역시 언제나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자국처럼 남겨진 몸의 흔적들은 공간적 경험과 살아온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 이향숙은 각기 다른 신체와 사고를 지닌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요소를 찾아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다. 눈동자에 반영된 다양한 삶의 체험적 공간을 근접촬영으로 담고있는 「시선」은 여러 사람의 삶의 반경을 엿볼 수 있는 작업이다. 수많은 공간을 이동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순간적인 상(像)이 동공에 반영되며 인식되는 순간의 포착을 의미한다. 바라보고 인식하는 시각 기관으로서의 눈이 공간을 담아내는 용기로 변모되어 찰나의 자국을 남기게 된다.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사람마다 다르듯 포착되는 광경의 선명도 또한 다르다. 맑고 또렷한 눈망울을 지닌 어린이와 혼탁함이 심화된 노인들의 눈동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시선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한다. 이처럼 인간은 시공간적 한계를 지닌 몸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고 경험하며, 반복적인 인식과정을 거치면서 공간적 체험은 하나의 기억 속에 자리잡게 된다.
몸에 지닌 흉터를 자신의 손으로 어루만지고 있는 영상작품 「기억」은 사람마다 지닌 상처를 통해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경험을 전해주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과거로 돌려 회상하면서 감추고 싶은 아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상처를 더듬는 손길의 움직임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반추해보는 현재의 심리 상태가 읽혀진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우고 싶어하는 손길과 상처에서 묻어 나오는 애잔함이 개인사적 경험 속으로 스며들면서 또 다른 기억의 통로를 만들어 준다. 저마다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로 다른 손의 모양새와 주름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 한 세대를 거쳐가면서 선천적으로 대물림되는 각기 다른 뚜렷한 자국, 생김새는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가족 27쌍의 부모와 자식의 얼굴을 중첩시켜 놓은 작품 「두 세대」는 한 세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혈육간의 생김새를 나타낸다. 삼십여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아이의 미래와 부모의 과거 모습이 동시에 한곳에 겹쳐져 있다. 유전적인 자국이라고 할 수 있는 닮음은 단순히 외양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목구비 생김새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 분위기의 유사함 마저도 감지할 수 있다. 유전적인 대물림은 그 사람을 동일시할 수 있는 가장 용이한 인식의 잣대가 되며 뿌리를 찾아 자신의 존재론적 가치를 발견하고 가족이라는 사회 구성체의 유대감을 지속시키는 원류(原流)이다. 그 흐름에서 인간은 또 다른 세대를 이어주는 중간적인 매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생(生)의 끈을 이어 나가게 된다.
이순종은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미묘한 심리적 의식을 재치있게 표현한다. 작품 은 삶의 체험 속에서 마주치는 갈등, 대립 순간에 표출되는 심리적 의식의 흐름을 네 가지 단계로 얼굴 표정을 통해 표면화시킨다. 지난날 많은 기억,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이듯 수십년의 세월의 흔적들을 감아 놓은 듯한 실타래에 작가는 자신의 얼굴 영상을 투영하여 다양한 심리적 현상을 유희적인 접근방식으로 제시한다. 하나의 작은 점에서 출발하여 터질듯한 풍선처럼 그 긴장감이 증폭 확대되면서 마침내 갈등은 불거져 나온다. 그때부터 순간적인 돌출 상황이 빚어지고,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 이중적인 심리적 상황들이 교차되면서 통제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져든다. 공처럼 여기저기 충돌하는 마음의 방황을 경험하면서 어느 순간 비겁한 마음이 자리잡는다. 때로는 알면서도 모른척 냉담하게, 순진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자세,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결정을 미루는 탐색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도달한 자신만의 해결 방식은 엉뚱하고도 우회적 방법으로 타인과 세상에 대해 지닌 두려움과 고민을 털어 버리려는 듯 조소하는 자세로 나타난다. ● 이 작품은 하나의 감정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상반되는 모순적 감정들을 포착하여 인간이 지닌 여러 가지 갈망, 심리를 들추어내고 있다. 인간의 의식 속에 흐르고 있는 복잡한 이중적 심리들을 의식의 경계 위로 가시화시켜 반영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인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 ● 이들의 작품에 담긴 축적된 시간·공간·사고의 흔적들은 인간의 삶에 유형(有形) 무형(無形)의 자국을 남겨 놓는다. 각기 서로 다른 몸과 서로 다른 경험을 하지만 이러한 흔적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통로이자 매개체로서 동시에 나를 드러내는 메시지 자체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의 소통은 서로의 삶 속에 담겨진 공존(共存)의 자국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순종, 이향숙 이 두 작가에게 작품은 세상을 인식하는 하나의 독특한 방식이며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모습과 인간,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며 읽어나가는 끝없는 시도이기도 하다. ■ 황신원
Vol.20011123a | 자국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