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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의식, 깨어 있는 예술 ● 이번에 안성금은 8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작업을 정리하는 성격의 개인전을 마련하고 있다. 40대 중반에 이른 한 작가의 20년간의 작업을 한 공간 안에 펼쳐 놓아야 하는 당위성은 무엇일까? ● 데뷔 당시부터 안성금은 그의 작업 속에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우리 시대의 고통을 강하게 표출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그것도 자신이 제시하고자 하는 주제에 합당한 형식의 모색과 내용의 심화를 거듭하면서 끊임없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어 왔다. 이와 같은 그의 행보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경성, 이일, 유홍준, 최태만 등의 국내 중요 비평가들과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 하리우 이치로 등의 저명한 외국 비평가들이 그의 작품에 대한 논평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안성금이라는 작가는 결코 간과할 수 없을 만큼의 진폭으로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 시대와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려 왔다.
작가가 직접 전해 준 자료뭉치 속에서 낡은 한 장의 종이를 발견했다. 그 종이에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생활방법인 팔정도(八正道)가 적혀 있었다. 팔정도란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즉 바른 견해, 바른 의사, 바른 언어적 행위, 바른 신체적 행위, 바른 생활법, 바른 노력, 바른 의식, 바른 정신통일을 의미한다. 지난 세월 동안 안성금이라는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그 강렬하고 끈질긴 메시지가 바로 이 8개의 규범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데뷔 당시의 「인물화」연작에서부터, 파리에서 제작된 관세음(觀世音)을 표현했다는 「소리」연작, 귀국 후 파불(破佛)을 서슴지 않았던 「부처」연작 그리고 90년대 중반이후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을 비판하기 시작한 「우리는 모두 불구자다」, 「악몽」, 「세계화」 등의 작품들을 관통하여 흐르는 작가의 태도가 바로 이 8개의 규범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앞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한 보다 바른 의식을 지니고자 하는 안성금의 생활태도를 지배하는 실천적 규범일 것이다.
그 자신, 작업을 해 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에 대해 더욱 치열해 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어 보기도 했고 거꾸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현시점에 이르러 보다 첨예해진 사회적 의식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에 대해 오히려 좀 더 간결해지고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1985년의 작가 노트에서 안성금은 이미 미래의 자신의 작업을 예견하는 언급을 기록하고 있다. ● "육안(肉眼)으로 바라보면 세계는 한낱 광경에 지나지 않으며 너와 나 사이에는 허공이 있을 뿐이다. 나는 육안으로 보지 않고 심안(心眼)으로 본다. 그러므로 나의 작업은 예술자체에 대한 질문이나 유희가 아니라, 나의 고뇌(苦惱)와 수고(手苦)를 동반하고 심안(心眼)으로 보여진 인간세계에 대한 나의 증언이며 고백이다."
물론 이 당시 안성금은 자신의 시선을 주로 수도하는 승려나 삶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보통 사람들의 얼굴에 고정시켰다. 거대한 광목 천에 짙은 먹색으로 그려진 그들의 초상을 바라보면서 많은 이들은 안성금의 즉발적인 표현력에 전율했다. 거칠지만 인간의 근원에 대한 진솔한 관찰의 결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 이후 파리로 거주지를 옮긴 안성금은 소리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불경 위에 완전한 형상들을 상징하는 원형, 반원형 또는 난형(卵形)의 검은 면들을 배치함으로써 관세음(觀世音)의 소리를 획득하려 하였다. 이 작품들은 현지에서 강한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태리에서 있었던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안성금은 소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혀 놓았다. ● "나에게 있어 소리란 넓은 의미의 것입니다. 침묵에도 쉽게 결합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저의 작품들은 충만함과 공허함 사이의 끊임없는 관계입니다. 빛과 어둠, 백과 흑 등이요. 밀가루가 하얀 것처럼 침묵은 어두운 것입니다. 볼 수는 없지만 단지 상상으로 가능한 느낄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찾아서 지요."
당시 유럽 화단에서 안성금에 대한 평가는 동양적인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인터뷰 역시 그런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안성금 역시 불교적 용어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지만 이 언술 속에 이미 인간의 선과 악, 세상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잠재시키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관세음의 소리는 부처가 되어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자비로서 고난 속에 있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세상을 가득 채운 갈등의 요소들을 조화시키는 침묵의 소리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 「소리」연작을 전후해서, 또는 그와 동시에 제작된 「부처」연작은 보다 직접적으로 안성금의 세계관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연작은 좌우로 또는 머리부분에서 분절된 부처상이 등장하는데 신성불가침의 부처상이 과감히 절단되었다는 시각적 충격과 함께 작가 자신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행한 퍼포먼스의 파격성으로 안성금의 대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 「소리」연작과 연결된 퍼포먼스 중 1994년 화랑미술제에서 제시된 「예수, 부처, 그리고 이름없는 성인들게 바침」이라는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쌀을 오브제로 채택한 안성금은 10×13cm의 작은 봉투에 쌀 3∼4톨을 넣어 1천원에 판매하는 행위미술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자 하였다. 이 작업에 대해 안성금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 "요즘같이 물질화 되가는 세상에서 쌀처럼 정말 필요한 것이 뭔가를 생각해보게 하려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예술이란 것이 꼭 엄숙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활의 엄연한 한 부분이라는 것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의 제목처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성인들의 깨달음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쌀 몇 톨의 상징성에 비추어 확산시키고자 한 것이다. ● 이 시기부터 안성금의 작업은 이미 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했음을 확신할 수 있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선보인 「현미경·망원경」이라는 작품은 야외에서 전시된 대형 설치작품으로서 관객이 직접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고안되었고, 주재료인 스틸이 원형으로 말려 나온 형상을 하고 있음으로 해서 카메라 렌즈처럼 보이는 작품이었다. 이는 세상을 보다 직시하고자하는 작가의 눈을 상징한다. 이어 1995년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작품이었던 「우리는 모두 불구자다」라는 작품은 흑과 백의 단절된 해골과 인형두상을 마구 쌓아 놓았다든지 의족과 의수를 등장시키고 미국 달러화로 미장된 방을 선보여 현대인의 정신적 불구상태를 드러내었다. 안성금의 시각에서 현대인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로 대표되는 돈과 섹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안성금의 과거 작품과 현재 작품이 동시에 공개됨으로써 이 작가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생성, 전개, 발전되어 왔는지를 일련선상에서 살펴보자는 의도를 갖고 있음과 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오늘날의 이 시점에서 더욱 더 유효하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물」, 「소리」, 「부처」연작 중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과거의 대표작들이 다시 선보이고 위에서 언급한 「세계화」라는 작품과 「謹弔 人間」, 「12·12」라는 작품은 재현 또는 개작되어 가나아트센터 전시장, 중정, 로비에 전시되고 있다. 전시 타이틀을 『戰時中·展示中』이라고 설정한 안성금은 이들 작품 외에 새로운 작품을 하나 더 추가했다.
「戰時中」이라는 작품이 그것으로 「세계화」라는 작품의 연장선장에 놓여있다. 역시 중정에 설치된 이 작품은 중정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위치에 설치된 파라솔을 이용한 작품으로 파라솔의 윗면에 펜타곤, 미사일, 유태인을 상징하는 별 등 현재 전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미국과 아프카니스탄 사이의 전쟁을 소재를 패치워크로 장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별도의 설명 없이도 미국식 패권주의를 비판하고자 한다. 전쟁의 명분 없음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괴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안성금은 특별히 이 작품을 중정에 설치하고자 한 이유로서 중정이 갖는 여유로움과 평화로움, 대화의 장소 등의 의미에 주목했다고 한다. 방문객들에게 안온한 이미지를 주는 파라솔에 패권주의 형상들을 대치해 봄으로써 우리의 보호막 역할을 하는 실상들이 진정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다같이 숙고해 보는 의도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세계 경찰국가로서 미국의 역할이 반대급부에 서있는 다른 많은 국가와 사람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 최은주
Vol.20011117a | 안성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