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사비나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3번지 Tel. 02_736_4371
남정식의 그림은 한국의 전통 가옥 구조의 형태와 그 안에 장식된 문양, 색채를 해체, 변형시켜 이를 꽃, 나무 등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일종의 풍경으로 만들고 있다. 사찰이나 전통가옥의 지붕과 처마, 다양한 공포의 그 복잡하고 절묘한 구성과 강렬한 색채, 나무 조각들의 끼워 맞춤 등을 흥미롭게 원용하여 자연과 어우러지게 그려낸 것이다. 여기서 집과 단청, 문양과 식물은 구별 없이 혼재되어 있다. 다분히 범신론적인 접근이라 볼 수 있는 그런 시선이 감촉된다. ● 집이라는 구조의 안을 장식한 다양한 목조구성, 문양과 단청에 사용된 여러 요소들이 화면 전체에 운율처럼 떠도는 편이다. 그리고 속도감을 지닌 선들의 연결로 인해 청각적인 여운이 강한 파장을 남긴다. ● 사실 단청은 목재를 비바람과 병충해로부터 보호하는 칠 공사라는 실용적 차원에 걸려있고 그 문양은 화재와 잡귀를 막아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거기에 쓰여지는 오방색 역시 구체적인 색채라기 보다는 관념적인 의식에 결부된 것들이다. 작가는 그런 실용적, 도상적 차원 및 여러 의미망을 벗어나 이를 장식적이고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화면구성으로, 풍경으로 만들었다. 특정한 문화적 콘텍스트안에서 기능하던 것들을 시각적인 구성의 체계로 재배치하고 조합, 해체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풍경은 모든 것들이 하나로 선회하는 증식과 변형의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그것들끼리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체계를 은연중 자아낸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지워진 체 얽히고 물리고 연결되어 또 다른 존재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복잡한 구성은 무엇보다도 공간에 활력을 주고 단일한 시점의 배열에서 벗어나 화면 전체를 시선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화면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충일한 생명체 마냥 유동한다. 생성적인 화면이 된 것이다. 작가의 화면에 들어온 모든 것들은 살아서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로 변신하고 그 모든 것들은 생명으로 충만해 보인다. 따라서 건축의 문양과 단청 역시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삶을 부여받는다.
한국 전통가옥의 구조와 모양도 결국은 자연에서 따온 것이고 이는 그 주변의 구체적인, 실재하는 자연풍경, 풍광과 절묘한 조화 속에서 호흡했던 것들에 다름 아니다. 가옥구조와 사찰의 가람배치란 결국 한국인들의 탁월한 공간구성 및 자연과의 조화라는 차원에 걸려있다. 이런 의미를 깨닫고 이를 응용하는 작업이 전통미술에 쓰인 소재를 끌어들여 '인테리어화'하는 기존의 작업들과 나름의 변별성을 유지하는 지점이 될 것이다. 이번 그림은 그 모든 것을 결국 다 같은 자연으로 보고자 하는 의도된 시각을 반영한다. 애초의 원초적인 자연의 카오스적인 상태 또한 은연중 드러낸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것들을 생명적인 것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의욕을 접하게 한다. ● 이는 이전 작업이 보여준 다소 경직되고 딱딱한 디자인적인 마무리 속에 그려진 단청과 기하적 선들의 구성에서 자유롭게 이탈해 보인다. 그림다운 맛과 회화적인 뉘앙스, 호흡 같은 것들의 편안함도 감촉 된다. 무엇보다도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방법론의 변화에 대한 모색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한국적인 미를 특정한 소재로 국한시키거나 전통적인 기법에서 찾는데서 빚어지는, 생명력을 잃어 박제화되는 그런 아쉬움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시선 또한 느끼게 해준다. ● 또 하나 두드러진 것은 이전의 모필의 운용과 수묵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기교주의, 꼼꼼한 설채의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나무젓가락이나 가지를 꺽어 이를 모필로 대용하고 있다. 더러는 경질의 종이를 접어서 긁어내리는 기법을 구사한다. 그러니까 나무의 꺽어진 상처와 종이의 단면이 붓을 대체해서 먹물을 머금고 선들을 긋고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그것은 모필 만이 보여주는 부드러운 흡수, 일획의 단호함, 먹의 스며듬과 번짐이라는 전형적인 동양화 재료의 특성들을 순식간에 무화시킨다. 오로지 잉크처럼 찍혀진 먹물들이 일정한,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의 운명을 다하면서 짧고 단속적인 선들을, 자취를 남긴다. 그렇게 그려진 윤곽선이 소묘, 드로잉의 유니크한 맛을 여운처럼 재미나게 만들어준다. 붓을 벗어난 선의 맛은 예측하기 힘들고 우연적이면서 자연발생적인 그런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런 맛들이 좀더 '세련되게' 구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느끼는 대로 자연스럽게 화면을 운영하면서 선의 색다른 맛들을 찾아나가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것 같다. 이는 또한 기존 동양화의 고정관념을 지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구성과 선, 방법론 등에서 보여지는 이 자연스러워지고자 하는 의욕은 이전 작업의 경직성과 단호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데서 연유한다. 그것은 사물과 세계를 보는 시선과도 맞물린다. 비로소 자연에 대한 접근이랄까, 자연주의적인 태도가 문제시되는 것이다. 흔히 한국적인 미를 거론할 때 자연적인 미, 자연의 미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오해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자연은 예술과 대립적이다. 자연은 자연적인데 반해 예술은 인공이기 때문이다. 어떤 장르로 어떤 방법론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오로지 해석된 자연만이 예술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술가가 해석한 자연의 세계, 자연의 미가 작품에 구현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을 소재로 채택했다고 해서 되는 문제도 아니며 우연적이고 자연스럽게 그렸다고 되는 것 또한 아니다. 남정식의 근작은 바로 그러한 만만치 않은 과제에 대한 해명에 걸려있는 동시에 여기에 대한 일정한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는 인상이다. ■ 박영택
Vol.20011101a | 남정식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