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round

권정준 사진展   2001_1024 ▶ 2001_1104

권정준_space overturning-어머니_잉크젯 출력_17×27×13cm_2001

초대일시_2001_1024_수요일_06:00pm

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60_4720

하나의 물체를 볼 때,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그건 아마도 4차원의 세계에서 가능할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을 가지는 물체를 시간이 걸리지 않고 볼 수 있으려면 그것이 한 눈에 보여야 할 것이다. ● 나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이다. 어릴 적 보았던 어린이 잡지 속의 4차원에 관한 이야기들은 나로 하여금 항상 그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였고, 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4차원의 공간에 가지 못 할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곳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4차원이 생물체에겐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어떻게 보일까? 부피를 가지는 대상을 평면으로 만들어 보았다. 이러한 작업은 사물을 바라보는데 걸리는 시간을 압축시켜 주었으나, 시간이 0이 되진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4차원의 생물이 대상을 바라 볼 때 이렇게 보리라곤 생각 할 수 도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부피를 가지는 대상이 부피를 가지면 그건 어쩔 수 없이 '시간'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되고 난 그 부피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부피를 없앴다. ● 부피를 없앴지만 시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아무리 평면이라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의 뇌가 빛의 속도 이상으로 빨리 돌아가지 않는 한. 이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이다.

권정준_규선_다중촬영 흑백인화_20×24inch_2001
권정준_Go-around 규선_컬러인화_246×80cm_2001

꿈은 물거품이 됐지만, 하여간에 난 하던 일을 계속해야한다. 난 공간을 평면으로 만들기 위해 '토폴리지'를 응용했다. 내가 가장 주목 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잘 늘어나는 고무막'으로 만든 '입방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끝없이 늘어나는 영국의 '해안선'이다. '고무막'의 비유는 이렇다. 잘 늘어나는 고무막으로 만든 육면체에 작은 칼집을 내어 그것을 잡아 당겨서 평면으로 만들어도 위상기하학에선 펴진 평면과 원래의 육면체를 일치(동상)한다고 생각한다. 위상 기하학에서 변형된 혹은 변환된 공간이 동상이 되는가. 그렇지 못하는가를 증명하는 공식이 있다. 그것은'오일러 표수'이다. ● (면의 개수) + (꼭지점의 갯수) - (모서리의 갯수) = 2 ● 즉, 오일러 표수에 일치하면 그건 바로 동상이라는 거다. 내가 만든 공간의 평면이 바로 칼집을 내어 잡아당긴 '고무막'과 같은 모습이다. ● 다른 하나인 '영국의 해안선'은 이런 말이다. 해안선의 길이를 잴 때. 길이를 재는 자의 길이에 따라 길이가 달라진다는 아리송한 말이다. 자의 길이가 1km이냐 아니면 1cm냐에 따라 길이는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잘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 나의 작업에서 동일한 길이의 벽이 사진상으론 달라지는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10m의 벽을 10cut으로 찍느냐, 아니면 100cut으로 찍느냐의 차이다. 단지 촬영 할 때 가까이서 찍느냐 멀리서 찍느냐의 차이 일 뿐. 벽이 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아닌 것이다.

권정준_Go-around 남대문_컬러인화_150×182cm_2001

특정한 부피를 차지하는 사물은 그것이 공간에서 차지하는 부피와 체적 이외에도 사물의 특질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외형적 특색이 있다. 물 컵에 물을 가득 붓고, 얼려보자. 얼은 물을 컵에서 빼내어 보면. 그 얼음이 컵에 담을 수 있는 공간의 크기이자 컵의 외형적 특색을 증거하고 있다. 이처럼 원기둥은 원기둥 나름의 일관된 형태가 있고, 입방체는 입방체 나름의 고유한 외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육면체를 보자. 육면체는 12개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육면체의 모서리는 외부에서 볼 때. 두 면이 만나 돌출된 형태를 취하며, 내부에서 볼 때는 밖으로 튀어 나가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사진으로 기록해 보자. 튀어나온 모서리든 들어간 모서리든 둘 다 평면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못이나 칼도 평면이다. 우리가 잘 찍은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서 화면상의 못이나 칼날이 날카롭게 보이는 이유는, 앞에서 밝혔듯이 경험에 의한 추론의 결과물 일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진부한 이야기이겠지만, 복잡한 물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대단히 고생스러운 일이겠지만. 아무리 복잡한 입체라도 평면이 되어 버리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 축구공을 여섯 각도에서 촬영한 후, 촬영한 각도대로 연결하였다. 육면체의 축구공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사진을 이용해서 입방체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진이 평면임을 보여주는 한 방편이다. ■ 권정준

Vol.20011027a | 권정준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