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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0)2.737.7650 www.sungkokmuseum.org @sungkokartmuseum
사르트르는 보들레르에겐 언제나 다른 곳에 있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했다. 현재 있지 않 은 다른 장소, 지금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가고자 했던 보들레르의 그 욕망은 단순히 신기루 같은 환상적 공간에로의 도피가 아닌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갈증을 의미한다. 이석주의 작품에 나타나는 현실로부터의, 시간의 굴레로부터의 탈출욕망은 진정 보들레르의 그것을 닮았다. 거대한 시계를 배경으로 갈기를 휘날리며 설원을 내달리는 말과 검은 연기를 거칠게 내뿜으며 평원을 가르는 기차, 그리고 등을 돌린 채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화가의 모습은 분명 지금 존재하지 않는 다른 곳으로 가려는 보들레르적 욕망을 드러낸다. 이들과 함께 바람을 벗삼아 거친 들판을 날아온 낙엽은 관람자를 화가의 고독한 여행에로 이끄는 초대장이리라.
이석주의 정신적 여행이 환상적 공간에로의 도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요소는 상상력이다. 보들레르가 얘기했듯, 상상력은 단순한 자연모방을 너머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에 다리를 놓는 예술가의 정신적 능력을 뜻한다. 현실과 상상을 이어주는 이 상상력이 이석주의 작품에서는 스케일의 조작과 이질적 사물의 병치로 나타난다. 거친 들판을 대체한 시계판, 울창한 침엽수림을 지나는 장난감 같은 기차를 쫓는 거대한 말, 그리고 눈 덮인 원산을 배경으로 놓인 피라미드 같은 의자 등은 극사실 기법으로 그려졌음에도 그 회화공간을 현실이 아닌 상상의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이 상상의 공간 속에서 화가 이석주는 외부세계와 자신의 삶을 순화시키는 연출가이다: "나는 대상을 보다 심화시키고 자기화시키는 데서 의미를 발견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이 아닌 감추어진 일상, 그 속의 개인적, 심리적 상황이나 경험을 상징화시키고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이나 인물 또 추상적 이미지의 사물들을 서로 무관한 공간에 놓음으로써 조용하고 강렬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싶다."1)
이석주의 정신적 여행의 목적지라고도 할 그 "조용하고 강렬한 드라마"는 그간 극사실이라는 연출기법에 묻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러한 무관심은 그의 초기작 『벽』이 30회 국전의 서양화 추상부문에서 입상한 것이나, 그것을 "회화매체의 본질에 대한 모더니스트적인 관심과 탐구"2)의 문제로 보려는 시각에 잘 드러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에게 『벽』이 갖는 의미는 분명했다. 그것은 "현실의 벽이라기보다는 ... 인간의 실존과 벽이 상징하는 막막함, 현실과의 괴리"3)이자 "생활 중에 부딪치는 사회적인 제한, 현실의 보이지 않는 속박"4)을 의미했다. 이 벽은 화가로 하여금 냉담하고 객관적인 아웃사이더로서 현실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케 한 장치였고,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상상의 공간과 비가시적 세계에로의 여행을 떠나게 한 동인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극사실적 기법도 "대상세계와 작가와의 '거리'를 객관화하는 데 가장 적절한 방법"5)이자 동시에 비가시적 세계에로의 다리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재료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는 말과 기차를 타고 떠난 그 상상의 세계에만 머무를 수 없는 방랑자였다. "까뮈적 우주의 장대한 무관심" 내지 "현실에 대한 철저한 허무감"6)으로 표현된 그의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과 질문은 그로 하여금 현실과 상상 그 어느 세계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게 만들었다. 일관된 그의 작업에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는 그가 이 양극의 세계 중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지표이다. ● 먼저 현재까지의 그의 작업 명제 중 하나인 『일상』이 보여주는 실내나 도시 풍경은 그의 표현을 빌면 "정지된 순간의 모습으로 일상의 문맥에서 단절되어 상호간의 통상적인 연관성을 잃고 일상의 무의미를 되물을 수 있는 풍경들이었으며, 그후의 군상들의 모습, 머리나 발, 등 일부분을 중심으로 한 작업은 일상적인 도시 속에서의 군중의 모습, 무표정한 도시인의 단면을 차가운 시각으로 중성화된 인간상"7)의 표현이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소외된 도시인의 삶을 묘사한 이들 작품에서 화가는 현실에 닻을 내린 냉철한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드러낸다. 다방이라는 좁은 실내,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한정된 바깥풍경, 그리고 답답하게 밀착된 땅바닥이 보이는 이들 작품에서는 현실로부터의 탈출 가능성이 애초부터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화가는 역설적이게도 그 답답한 현실에 더욱 다가감으로써 탈출구를 발견한다. 1980년대 후반의 작업에서 그는 "현실을 멀리서 바라보는 입장이 아니라 직접 부딪치는 생활인"8)의 입장에서 물질문명의 혼돈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신발, 숫자, 일회용 컵, 바퀴, 회전판, 대걸레, 망치, 뒤틀린 팔다리 등 일상적 사물과 인체부분이 그 원래의 문맥에서 탈락된 채 새롭게 조립, 재구성된 이들 작품에서 그는 숨막히는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난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체험은 그 후 그가 일상적 사물과 도시 이미지에서 벗어나 황금빛 들판이나 바다를 가르는 기차, 태양처럼 먼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거대한 시계, 그리고 흰 천으로 덮인 의자들이 병존하는 시적, 서정적 공간을 창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9)
1990년대의 작품에서 화가는 상상력이라는 다리를 건너 도시의 일상적 공간에서 시적인 공간에로 넘어간 여행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넘어간 공간은 바다와 초원과 설원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목가적인 자연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케일의 조작과 이질적인 사물의 병치는 그 공간을 시적인 상상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연기를 길게 내뿜은 기차, 바람을 머금고 떠 있는 낙엽, 그리고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운 시계바늘은 그러한 공간변화의 징표들이다. 순간 속에 영원히 정지된 듯한 이들 요소는 우리가 고개를 돌려 일상의 공간으로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그 운동성을 회복하여 기차는 기적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낙엽은 쓸쓸히 빈 의자에 떨어지며, 시계의 초침은 다시 제갈 길을 재촉할 것이다.
말과 기차를 타고 푸른 평원과 흰 설원 그리고 황량한 사막을 넘나들며 과연 화가는 무엇을 그토록 갈구하는 것일까? 그 해답의 일부는 1998년 10월 선화랑에서의 개인전에서 보여준 『幻』 연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작품에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텅 빈 배경에 유령처럼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은 이전의 고립되고 소외된 도시인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의 비밀을 더듬는 태초의 인간이다. 원시성을 담지한 아프리카 조각이 그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존재에 대한 자각과 확인"10)에 대한 그의 욕망이 마침내 그 기원과 근원에 대한 탐구에로 나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고독한 여행은 이제 일단락 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그 시적 상상의 공간에서 현실의 공간으로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번 신작에서 가장 큰 변화라면 그 여행에서 돌아온 그의 흔적이다. 흰 천으로 덮인 채 떠나버린 화가를 기다리다 돌로 굳은 듯 거대하기만 하던 의자에서 천이 거두어지고 밀짚모자가 놓이고 옷이 걸리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뿐이라고 했던가! 이러한 의자의 변화에서는 그 긴 여행에서 돌아와 여독을 풀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여유 있는 모습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날카로운 금속성의 시계바늘이 사라지고 이를 대신하듯 두 송이 꽃이 나비처럼 내려앉는 작품에선 자연과 기계, 이성과 본능이 하나로 통합된 세계가 엿보인다. ● 한편 이번 신작에서 지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변화는 그가 거부했던 현실과 인간이 다시 긍정적 가치를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천호를 훌쩍 넘는 대작인 『타임』과 『일상-도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나신의 군상들이 쓰고 있는 탈과 구겨진 시계판은 인간의 허영, 이기심, 위선 등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들을 등지고 거대한 시계를 관조하는 화가의 뒷모습에는 이전과는 달리 선과 악, 이성과 본능이라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긍정의 태도가 엿보인다. 한편 텅 빈 도시의 거리와 콘테이너 건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상상의 여행을 위해서 반드시 자연의 이미지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콘테이너 건물 안에 갇힌 시계와 빨간 신호등이 암시하듯, 이 거리는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멈춰진 시간으로 인해 초월성이 암시된 공간이다. 코믹한 느낌을 주는 모형 비행기는 이전의 작품에서 기차, 말, 낙엽이 했던 역할, 즉 상상의 여행수단이자 도심의 공간에 초월성을 부여하는 징표이다. ● 화가는 이제 도심 한복판에 있는 콘테이너 앞의 의자에 앉아 또 다른 여행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이번 신작은 그 여정이 선과 악, 빛과 어둠,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통합된 세계일 것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 정무정
1) 이석주, 「일상의 의미」 『선미술』 (1989년 여름), pp. 61-62. 2) 강태희, 「형상의 변주, 응시와 투시의 풍경화」 『미술세계』 (1991년 6월), p. 54. 3) 이석주, 『사실과 환영: 극사실 회화의 세계』전을 위한 좌담회, 2001년 3월. 필자와 2000년 11월 8일에 가진 대담에서도 그는 자신의 『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전에서 『벽』이 추상부문으로 들어간 것은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구상입니다. 당시 그것은 미국적인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이해되었으며 전혀 감정이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이해되어 추상화로 보여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벽』은 감정이입이 된 상태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암울하고 답답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모노톤으로 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4) 차대덕, 「'78년을 맞는 용기와 행동의 순간」 『공간』 (1978년 6월), p. 45.. 5) 이일, 『이일 미술비평일지』 (서울: 미진사, 1998), p. 153.. 6) 이석주, 「일상의 의미」, p. 60.. 7) 위의 글, pp. 59-60.. 8) 위의 글, p. 61.. 9) 이러한 변화에 있어 기법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과거의 작업에서는 적극적으로 시도된 적이 없었던 재구성의 방법은 그 후의 작업에 대한 암시적 역할을 하였다." Ibid.. 10) 위의 글, p. 62..
Vol.20011007a | 이석주展 / LEESUKJU / 李石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