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Voice

김현희 사진展   2001_1004 ▶ 2001_1009

김현희_She#5_스판덱스 컬러인화_110×90cm_2001

초대일시_2001_1004_목요일_06:00pm

성보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4번지 2층 Tel. 02_730_8478

사진속 언어, 절규 ● 인간의 얼굴은 촉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의 집합체이다. 얼굴은 보는 능력,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의 겉모습을 의미하며 한 개인의 전체를 대변한다. 얼굴에는 여러 기관들이 모여있는데 그중 눈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한 몸 속의 세포들이 위로 몰려 불거져 나온 것이란다. 내 몸 안에 절여진 모든 것들이 열망하는 바깥을 그리워해 부감된 흔적들은 흥미롭다. 그 가운데 시각은 모든 악의 근원인 적이 있었다. 눈은, 보이는 모든 것을 동경하기에 그렇다. 인간이 지닌 감각기관중 가장 추상적이고 속기 쉬운 감각인 시각은 사실 근대에 들어와 특권적 지위로 격상되었다. 그런데 시각은 늘 질투하고 욕망하고 갈등하는 감각이자 무엇보다도 쾌락적이다. 그래서 미술은 이 눈으로부터 비롯된다. 또한 우리들의 눈은 타인의 얼굴을 우선적으로 주목한다. 그림과 조각은 물론 사진 역시 전적으로 처음부터 얼굴을 위한 것이었다. ● 얼굴은 여전히 유일한 자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런데 얼굴이 그/그녀의 것일 수 있는 것은 입을 통해서일 것이다. 그 입/구멍은 세상에 말을 건네고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 결정적인 수단이다. '나'라는 주체의 호명을 유일하게 스스로 지닌 것이다. ● 김현희는 인간의 얼굴/안면만을 '클로즈 업'하여 찍었다. 사각형 안으로 얼굴들이 '낑겨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은 한결같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벌려진 입, 질끈 감은 눈, 그리고 자잘한 상처와 같은 주름들로 이루어졌다. (눈을 감고)세계를 지운 체 오로지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들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그 입에 주목케 한다. '벗어나고 싶은 모종의 현실 상황'을 상기하면서 고함을 치는, 사각형의 프레임안으로 잡혀 들어온 그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틀을 깨고 거기서 늘상 이탈의 꿈을 꾸는 인간의 한계"(작가노트)를 암시한다. 그 절규를 보다 촉감적으로 가시화하기 위해 천 위에 전사를 해서 주름을 잡거나 등고선 모양의 층을 만들고 입체적으로 부풀려보는 식으로 만들었다. 그런 장치는 단순한 인화지 위의 형상에 머물지 않고 외부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을 암시한다. 인화지의 평면성에서 이탈하려는 이 제스처는 납작하게 잡아내는 사진속 인간에서 벗어나 공간 속으로 속도와 함께 질주한다.

김현희_He#5_스판덱스 컬러인화_110×90cm_2001

한 개인의 육체의 최전선에서 세상 밖으로 내지르는 신호는 바로 얼굴/입의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완벽하게 고립된, 통조림통속에 들어있는 꽁치 같은 인간의 육체는 자신의 고독과 밀폐된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을 건네고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고 굴절시키는가 하면 음성, 소리를 지른다. 이 모든 기호들은 절박한 소통의 수단들이다. 입은 그 소통의 핵심적 위치에 놓인다. 물론 음성, 말이란 동일문화, 언어권에서만 약속된 제한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그 제한을 넘는 것은 이른바 몸 언어다. 소리를 지르고 고함을 치는 것은 언어이기 이전에 가장 본능적이고 직접적이며 매개 없이 소통되는 유일한 기호이다. 어떠한 말도 가지지 못한 아이들이 첫소리는 '울음'이다. 그래서 고함이나 울음 등은 어떤 증상, 상태, 감정 등을 알리는 신체기호이자 언어이며 나아가 생물병리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병리학적 의미 또한 보여준다. 작가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자의 또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가지 굴레에 순응해 살다가 답답함을 인식하고 벗어나려 할 때 보여주는 가장 일차적인 행위인 동시에 내부의 무언가를 밖으로 내보내고자 할 때 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행위가 바로 소리지른다는 행위라고 말한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생명체를 지닌 존재,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음을 알리는 정보의 역할을 하는 그 소리에 주목한 것이다. ● 각각의 육체 속에 깃든 형언하기 곤란한, 언어의 조합과 틀 속에서는 도저히 가늠되고 규정되기 힘든 애매하고 곤란한, 그런 증상을 유일하게 알리는 것 말이다. 어쩌면 입/입술은 그렇게 본능과 맞닿아있고 그런 만큼 한 개인이 세상과 만나는 쓰라린 접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김현희가 찍은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답답하고 억눌린 감정의 상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기능 하는 절규, 고함을 분출한다. 자신의 삶과 그 삶의 여러 가지 틀 속에서 받는 규제와 억압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지극히 자위적인 치유의 수단은 눈물과 고함 등일 것이다. 육체가 지을 수 있는, 육체만이 할 수 있는 안스러운 표현이다. 언어화할 수 없는, 문자꼴로 정착시킬 수 없는 절망감은 몸짓과 표정으로, 외침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모든 이미지 역시 그런 절망의 한계를 숙명처럼 지니면서 이루어진다. ● 김현희의 이 사진은 신체를 통하여 겉으로 읽어볼 수 있는 의미의 소박성, 얼굴을 통하여 말을 하게 하는 기호표현에 머문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만큼 직접적이란 얘기다. 작가에 의해 선택돼 그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내부에 깃든 심리적 억압을 상기하면서 내지르는 이들의 고함은 그들만의 사연을 지닌 것들이다. 소리를 지른 이유가 그만큼 알 수 없이 산개된다. 사진을 보면서 우리들의 귀는 그들이 지르는 소리의 파장을 거둬들인다. 청각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일견 고통스럽다. 작가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청해서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바닥을 알 수 없이 가라앉아 있는 착잡한 심정과 고통을 상기시키도록 주문한 것이다. 결국 김현희는 무의식을 사진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분명 신체도 말을 한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 재현된 신체가 말하는 언어는 실제의 말과 고함소리와 어떤 지점에서 변별될까? 신체 스스로가 말하게 하는 이 사진 속 인물들의 음성은 물론 무성이지만, 침묵 속에서 강한 여운을 여전히 질러댄다. 우리들 눈에 소리를 달아준다. ■ 박영택

Vol.20011002a | 김현희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