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의 은밀한 대화

이정화展 / digital art   2001_0501 ▶ ON LINE

이정화_'a note pad'_디지털 영상과 사운드_15.8mb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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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이제까지의 회화 기법에 대한 향수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화가들이 이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어 가며 살아가는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화가들의 삶의 벗이요, 그의 꿈을 촉진시켜주는 매체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다양한 장르에 의해 혼돈스러워 보이기까지도 하는 오늘날의 미술현상 속에서 화가들은 이처럼 이제까지의 회화 기법이 가져다 주는 독특한 매력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그러면서도 이제 본인이 전통회화 기법과 정반대 되는 기법-디지털 회화-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현재의 예술현상이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이 과거 중세의 템페라 기법에서 부터 유화로, 벽화에서 캔버스로 대체되어 버려 새로운 회화 세계를 열어 놓은 것처럼, 그리고 재현적이건 표현적이건 이미지가 담겨있는 회화로 부터 현대를 통해 평면적인 구성이라는 미술의 관념이 나타난 것 처럼 오늘날 컴퓨터의 출현은 우리 사회 전반의 생활양식을 바꾸어 놓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예술세계 전반의 영역을 뒤바꾸고 있는 중이다. 다시말해, 전통적인 수작업에 의해 수행되어 오던 미술 현상은 디지털 아트 혹은 사이버 아트의 형식으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사실은 화가들 개개인의 의지에 관련된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싫든 좋든 컴퓨터가 우리의 생활에 불가피하게 개입되면서, 그것은 우리의 삶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어 왔고, 심지어는 의식까지도 바꾸어 놓는 식으로까지 작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 과거의 예술표현의 수단이 거대한 캔버스와 유화 물감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디지털 회화에서의 예술적 표현 수단은 작은 모니터와 마우스, 그리고 타블렛이다. 화가는 과거의 표현 수단이었던 물감, 연필, 브러쉬, 목탄, 유화 등 전통적인 도구에 상응하는 것 이상을 제공하고 있는 각종 다양한 소프트 웨어 프로그램과 저작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세계를 표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요시에는 그것을 미련없이 휴지통에 버리고 새로운 파일에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한가지 작업을 가지고 수 없이 많은 기교의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게 되었고, 아무런 노동의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원하는 만큼의 대량 복제도 가능하게 되었다. 과거처럼 그림을 망가뜨릴까봐 망설이고 조급해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또한, 한 예로 화가라면 익혀야 했던 원근법에 대한 이해나 그에 따른 실제적인 기법을 경우에 따라서는 몰라도 상관없게 되었다. 즉, 예술가는 이제 과거의 아카데미 교육의 일환으로 요구되어 졌던 원근법과 투시도법을 익혀야 될 필요가 없게 되었다. ●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 회화 기법 그 자체가 이제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화가들은 기존의 전통적 회화 기법과 디지털 회화 방식을 결부시킴으로써 그들의 사고 방식 혹은 세계관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되어 졌으며 자신의 세계를 보다 더 분명한 시각적 언어로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즉, 컴퓨터 소프트 웨어 프로그램만을 가지고 작품을 제작할 뿐 아니라, 수작업으로 그려진 그림을 스캔받아 컴퓨터에 다시 그것을 입력하여 작업을 한다든지, 역으로 컴퓨터에서 그려진 그림을 출력하여 그 위에다 다시 수작업화한 경우, 혹은 그 둘 다를 함께 병행해서 작업하는 경우가 그러한 것 들이다. 이러한 시도들이 현재는 초기 단계라 할지라도 앞으로 더욱 더 여러가지 형태로 변화.발전될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 컴퓨터 소프트 웨어 프로그램만을 가지고 작업을 한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도 디지털 회화 방식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재현 혹은 표현-전통적이 용어를 사용하자면- 할 것인가 하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완성시키는데 수차례의 수정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러한 작업은 웹 디자인에 관련된 여러가지 제작 기획과 구성 및 짜임새에 관련된 문제보다도 훨씬 더 오랜 시간과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 이번 디지털 회화 전시에서는 형상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았던 나의 기존의 작품과는 달리 형상의 이미지를 반영하였다. 그 형상의 이미지들은 내 주변의일상 생활을 주제로 다룬 것들이다. 꽃, 책, 정물,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자연 풍경 등등.....이런 일상의 이미지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엮어져서 비현실적인 세계가 구현되고,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 이미지들은 특이한 감각으로 우리 눈에 들어 오기를 기도하였다. 이처럼 변형되고 합성된 이미지들은 다름 아닌 화가로서 바라다 본 이 세계의 또 다른 모습이며, 그 모습을 통해서 내 자신과 침묵으로 일관된 세계와의 관계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 안에는 세계에 대한 저항의 흔적이나, 그것을 부정할 힘 조차 작용하지 않고 있으며, 여성 우월에 대한 권리를 내세우려는 몸짓 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 안에는 오로지 이 세계에 대한 부정도 긍정도 아닌 '나'와 내가 바라다 본 '세계'와의 은밀한 대화요, 타협만이 있을 뿐이다. 나와 새롭고 은밀한 관계로 부터 유지되고 있는 이 세계는 그곳으로 부터 나의 삶이 솟아나고 있는 그런 세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현실적인 세계가 아니라 그와 떨어진 그래서 흔들림이 없는 맑은 샘이요 생명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한줄기 빛이다. 그것의 응시... ● 나는 오늘도 여전히 그 빛을 쫒고 있다. 또 다른 세계가 내 눈 앞에 펼쳐지기를 기대하면서... ■ 이정화

Vol.20010731a | 이정화展 / digital art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