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4번지 2층 Tel. 02_730_8478
그는 주로 혼례에 사용되는 여인의 화려한 전통 의상을 사진처럼 그리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의 복식 문양을 비롯하여 혼례용 의상 형태와 색채, 질감까지 실물과 똑같이 그려진다. 이와 같은 전통 복식화의 특징은 화려한 색채와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나는 문양이 매우 아름답다는 점이다. 특히 검정 바탕에 청, 녹, 황, 적, 백색 등 원색의 조화로운 대비와 꽃무늬와 봉황, 용, 학이 극사실로 그려지면서 전통 의상에 나타난 색채와 형상의 미를 강조하고 있다. ● 작가자신은 이러한 혼례용 활옷과 원삼 등의 복식 그림을 통해 "기계문명의 현대사회 속에서 잊혀져 가는 과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내면의 표현"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얼굴을 배제하고 의복만을 그리는 것도 "인물에게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색채와 문양에 나타난 형태미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동시에 사물의 익명성 및 내면성"을 우선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이처럼 혼례복이나 왕실의 복식을 그려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문양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그의 회화는 복합적이며 종합적 성격을 갖는다. 즉, 전통 혼례복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색채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성이 주목된다. 의복에 그려진 봉황이나 용, 학 등을 비롯하여 청, 녹, 황의 색채들은 장수를 기원하고 건강이나 부귀를 구하는 상징적 표현이 좋은 예이다. ● 또한 화려한 의상만이 강조되는 얼굴이 없는 초상화는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 작업으로 익명성과 함께 복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익명은 하나의 허상이다. 전통문양과 색채의 조화 속 존재하는 여인은 허상이다. 검은 색 바탕에 허상으로 존재하는 인물과 화려한 의상의 겉모습이 매우 대조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상을 넘어선 아름다움』이라는 그의 제목처럼 허상이 아닌 실상과 내면 깊은 곳에서 존재하는 미의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정명조의 『상상을 넘어선 아름다움』은 환영(illusion)을 통해 나타난다. 이는 그의 작업에서 가장 큰 과제이다. 그 첫 번째 내용으로 작가는 완벽한 형태 묘사를 추구하고 있다. 자연의 모방에서 나온 실물과 같은 형태의 재현은 환영을 나타내는 지름길로 해석된다. 여인의 화려한 전통 의상을 회화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도 대상 자체에서 환영적 아름다움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의상에 나타난 동식물 문양과 색채 구사는 시대를 초월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어서도 전통 혼례의상은 우리 고유의 미를 간직하는 대표적 대상이다. 청색과 황색, 백색 바탕에 붉은 색의 대비는 극사실로 묘사된 동식물의 형태와 조화를 이루며, 시각의 극대화가 이루어진다. 이같은 색채와 형태들은 마치 현실 저편의 환상을 생각하게 한다. 아름다움은 현실보다 환상과 상상의 세계에서 화가들은 새로운 환영을 찾아 나서고 있다. ● 두 번째로 환영과 함께 그의 회화에서 강조되는 것은 존재의 문제이다. 유사한 소재로 제작된 근작의 화면에는 화려한 의상만이 나타난다. 의상 이외의 부분은 전부 검정색으로 칠해져 있다. 짙은 어둠 속에 혼례복을 입은 새색시의 얼굴도 없으며, 배경도 온통 칠흙 같은 어둠뿐이다. 원근감도 없는 검은 색 공간, 백색의 여백보다 한층 더 무언가의 존재를 의식하게 한다. 그가 그린 의상은 단순한 허상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마치 그의 의상은 혼이 머무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어둠 속에 긴장이 흐르는 침묵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화려한 의상 속엔 인간의 영혼을 생각하게 하며, 죽음보다 생명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 점차 작가는 전통적 의상에 나타난 '형식적 미'에서 벗어난 '환영'과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게 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완성시켜 나가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의 창조이다. 대상의 정확한 해석과 치밀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전통 의상을 그려나가면서 자신감을 얻고 있다. 절대적 미는 올바른 대상의 선택과 끈기 있는 장인 기질로 묘사해 나가는 것이라는 확신이 서 있는 기분이다. 충동적 흥분보다 오랜 시간 축적된 손의 마무리 작업으로 그의 그림은 완성되어 나간다. ● 결론적으로 그의 회화는 환영과 존재의 문제를 탐미적 성격으로 풀어 나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평면에 그려진 의상은 미술사의 과제인 환영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실존의 영역까지 접근한다. 특히 형태와 색채를 결합하여 환영과 존재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 작가는 대상의 과장된 해석보다 있는 그대로의 형상과 색채를 중요시한다. 형태의 시녀로 존재했던 색채를 독립된 미의 여신으로 등장시키며, 아울러 문양의 섬세한 묘사로 미의 세계에 접근한다. 결국 그의 작품이 주목되는 것은 뛰어난 테크닉의 감각적 표현을 뛰어넘어 우리의 내면세계를 비쳐주는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이다. ■ 유재길
Vol.20010527a | 정명조展 / JEONGMYOUNGJO / 鄭明祚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