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 유지숙_이용백_최정원_손혜민_김은경
대안공간 루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3-3번지 B1 Tel. 02_3141_1377
時間은 금이다라고 말하는 작자들의 꿍꿍이가 무엇이든지 간에, 또는 시간으로부터 구속받지 않는 양 너스레를 떨어대는 작자들이 무엇을 하며 시간을 죽이든지 간에, 사람들 대부분은 시간에 대해 일종의 강박증세를 보인다. 그렇다고 시간에 구속받지 않고 살겠다고 외치고 다니거나 시간에 구속받지 않은 듯 보이는 사람을 흉내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다. 그들은 뒤로 호박씨까듯이 시간을 관리한다. 그리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공허한 허세에 불과하다. 오히려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시간에 대한 강박증세가 더 심해진다. ● 하고싶은 일들의 양에 비하여, 인생은 너무 짧다. 짧아도 이렇게 짧을 수가 있느냐 하는 탄식의 소리를 시인들은 질리지도 않고 끊임없이 내뱉어왔다. 이유도 가지가지지만 도연명은 속세에 미련은 없되 못 다 마신 술이 아쉽구나 하는 탄식을 내질렀다. 하지만 말년의 도연명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딜레마이고 삶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도 손에 쥘 수 없는 열쇠이다. 아끼려해도 아낄 수 없고, 방기하고자 해도 방기할 수 없는 시간.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의 시작과 끝. 시간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삶의 방식을 전혀 다르게 만들 정도로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시간은 사람들의 성격의 차이만큼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의식은 삶을 사는 서로 다른 태도이다. ● 1초展은 그러한 시간에 대한 해석의 불가능과 차이에서 오는 딜레마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하필 1초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1분, 1시간,1년 등이 아니고 하필 1초인지에 대해 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 1초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가장 짧은 시간이다. 그것은 시간을 재는 최소단위로서 마치 1원짜리 동전처럼 사실상 1초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록을 재는 운동경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정지한 듯이 보이는 시침과 분침과 달리 시계의 초침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바라보는 이에게는 초조와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고, 때로는 흥분과 공포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1분마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연속과 일종의 반복으로서의 시간을 시계의 초침은 분명하게-그리고 상징적으로!-보여준다.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의식- 직선적인 시간과 순환적인 시간-을 초침은 1분마다 관념적으로 재현한다. ● 사람들은 시간표를 만들어 시간을 관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1초는 관리하기에는 너무나 짧기 때문에 관리될 수 없는 시간이다. 1초전은 그 관리할 수도 없고, 관리할 생각도 없는 나머지로서의 시간을 일상의 삶에 대한 해석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이 원하는 시간의식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작가들의 작업들은 효율적이고 기능적으로 관리되는 시간에 대한 반발의식을 담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일생이 무의미할 수도 있고 단 일초가 영원한 지속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길 원한다. 또한 여기에는 멀티 미디어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매체의 시간에 대한 자의식도 담겨있다. ● 비디오 작업은 미술이라는 장르에 시간적인 요소를 쉽게 받아들인다. 비디오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의 연속들은 시간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실재의 시간이며 실재의 시간과 일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비디오의 화면에서 1초가 지났다면 현실에서도 1초가 지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용백, 유지숙, 최정원, 김은경, 손혜민 등 5인이 참여하는 1초전은 처음 단계에서 이러한 기계적 이해를 비틀어보고자 하는 의도 하에 이번 전시를 기획하였다.
유지숙의 작업은 이러한 기획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업이다. 그가 싱글채널비디오를 통해 보여주는 self-portrait는 영화필름처럼 연속적으로 찍은 것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영화의 몽타주처럼 하루에 한 번씩 찍은 자신의 얼굴 사진을 스캔 받아 연결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한달 동안 찍은 사진은 단 1초 동안 상영되는 30컷의 포토몽타주가 되는 것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30컷의 포토몽타주. 그는 이러한 작업을 10년 동안 할 계획으로 있고 이를 테면 이번 작업은 그 중간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14개월 동안 찍은 것을 14초동안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14개월 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찍은 그의 얼굴사진은 비디오와 더불어 전시장 벽면에 붙여진다. ● 선명한 그의 사진들과 달리 비디오로 보여지는 이미지는 불분명하다. 1초동안 보여지는 30프레임의 이미지를 사진처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카메라가 잡은 사진의 시간과 비디오가 보여주는 1초 동안의 시간은 엄밀히 말해 거의 일치하는 시간이지만 1초 동안 압축되어 보여지는 것은 한달 동안 작업한 것이다. 또한 이미지와 동시에 녹음된 30개의 일상의 소리들이 1초에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만들어 내는 소리는 이미지만큼이나 충격적이다. 거기서 우리는 시간과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어려운 질문을 받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용백의 작업은 시간에 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에서는 실제 인형을 물에 반영시켜 찍은 인형이 등장한다. 실재의 인형과 물에 비친 인형의 반영은 서로 등을 맞대고 태어난 샴쌍동이처럼 보인다. 그러한 샴쌍동이 인형이 노이즈상태의 화면 속을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반복한다. 물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샴쌍동이 인형이 노이즈 상태의 화면을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반복적인 장면은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시간이 마치 인형의 이미지처럼 정형화된 죽은 시간이라 말하는 것 같고 현실적인 시간이 사실은 카오스적인 시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의 노이즈 속으로 사라지는 인형의 이미지는 이러한 생각을 더욱 증폭시킨다. 물리적 시간은 내적 경험이 결여될 때 실체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주장을 듣는 듯하다.
최정원은 메트로놈 막대의 움직임을 찍은 비디오와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는 손을 찍은 비디오를 두 개의 채널로 병치시켜 보여준다. 또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사운드가 동시에 들린다. 최정원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메트로놈 막대의 움직임은 반복을 강요하는 회초리의 움직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실재 속도보다 1/3로 느리게 보여지는 피아노 건반 위의 경직된 손은 학대받고 있는 듯이 보인다. 최정원은 규율화된 시간의 강박적 이미지를 메트로놈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보여준다.
손혜민은 서울 외곽의 러브호텔들의 야경을 찍는다. 궁전같이 꾸며진 이 러브호텔들의 야경에 나타나는 네온사인들은 분명히 이 시대의 공공연한 세속적 욕망의 기호들이다. 손혜민은 이 사진들을 가로로 연결하여 비디오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손혜민은 그 비디오의 네온사인들을 하나의 연결된 선처럼 보이도록 조작하고, 그것은 심장의 박동을 보여주는 모니터 화면에서처럼 하나의 파동선으로 나타난다. 그 네온사인 불빛들의 파동은 러브호텔 고객들의 거친 심장박동처럼 보이기도 하고, 건물이 사라지고 단지 빛만이 보이는 비디오 화면은 마치 이러한 세속적 공간 속에서 발현되는 욕구의 경박함과 가벼움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의 작업은 통속적인 욕망이 가질만한 부피와 질감을 부인하면서, 통속적인 성적 욕망을 구체적으로 비틀지 않으면서도 희화하고 있다.
김은경은 만화의 컷을 나누는 선들에서 사라진 시간에 주목한다. 그래서 작가는 동일하게 그어진 선들의 시간을 서로 다른 간격의 선으로 표현함으로써 아무런 반발 없이 받아들여지는 선 사이의 경계에서 사라진 시간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고, 생략되어 버린 시간에 대해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그는 만화의 컷처럼 그가 보다 주목한 시간의 순간의 사진은 크게 확대하고, 별다른 주목 없이 지나간 시간의 사진은 축소해서 보여준다.
우리는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할 수 없다. 시간이 없다면 자아도 없다. 무아지경이란 시간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순간적인 도취의 순간에만 존재하다 사라지는 허무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에 대한 열망을 잃어버린다면 삶은 그저 단순한 반복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간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삶의 딜레마를 해석하고 있는 다섯 명의 작가들의 작업은 반복적인 시간의 강박을 벗어나 영원히 지속하는 순간을 통한 자유를 경험해 보자고 말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내적 체험의 순간이 보다 중요한 것이다. ■ 안성열
Vol.20010522a | 1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