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MA

우상호 회화展   2001_0429 ▶ 2001_0509

우상호_KARMA 샘·원천_종이에 먹_46×21cm_2000

갤러리 창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Tel. 02_736_2500

천둥소리에 잠을 깼다. 주위는 아직 어스름한데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때를 만나기라도 한 듯 번개가 치고 천둥이 뒤따른다. 노아 시대에 아마 이렇게 비가 내렸겠다. 반사작용일까? 무서움이나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전에 몸이 움츠려든다. 마음가지 축축해진다. 다시 잠을 청한다. ● 정오가 넘어서면서부터 비가 그쳤다. 어깨위로 맑은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비에 씻긴 나뭇잎들의 향연에서 신록의 참신함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갓 피어난 장미는 물 망울을 한껏 머금어 루비와 진주의 조화에서 신비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살구나 앵두도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결실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가지 아쉬운 건 비에 눌려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있는 페치니아의 가엾음이다. 곧 일어서 본래의 명랑함을 되찾게 되리라. 어디선가 깨끗한 바람이 불어온다. ● 어두워지면서 서서히 나타난 별들이 이제는 더 이상 들어찰 공간이 없게 들어서 버렸다. 점성가(占星家)나 목자(牧者)들은 별을 보고 점을 쳐 운세(運勢)의 길흉(吉凶)을 생각한다지만 나에게는 그런 부담이 없어 좋다. 궁창(穹蒼)의 중앙쯤에 눈이 부시게 빛을 내는 녀석이 있다. 그곳에서도 아마 나를 보고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있다면 지금쯤 나와 같은 생각을 할거라는 공상(空想)도 해본다. 주위에는 힘이 약한 녀석들이 있어 그 녀석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달도 나타나지 않는다. 기세에 눌린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자신을 태워 빛을 발한다. 가만히 보니 모두 그런 것만도 아니다. 바삐 움직이는 녀석도 있고, 아니 가만, 졸고있는 녀석도 있다. 억겁의 세월 속에서 피곤한 모양이다. 단 하루를 지새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인간에 비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이런 인간적인 별에 대해 더욱 동정(同情)이 간다. 어떤 녀석은 너무 정력적이어서 옆의 약한 녀석은 잘 뜨이지도 않는다. 태양이 나타나면 모두 자리를 양보해야겠지만, 그러려면 아직 서너 시간 정도가 남아 있으니 자신의 권리를 맘껏 부리는 모양이다. ●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둔탁한 소리로 자신을 두 번 때린다. 2時다. 정확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지만 믿는다. 자신을 두들겨 알린 소식이라면 믿어주는 게 예의라 생각해서이다. 丑時. 밤이 깊었다. 이제 서서히 나도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을 계획하며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잠자리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오늘을 살게 해주신 주님과 고마운 분들께 감사드려야겠다. - 어렸을 적 어느 봄날의 일기 중에서 ■ 우상호

Vol.20010505a | 우상호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