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60_4720
작가 류지선은 지난해 봄, 인사동 "대안공간 풀"에서 개인전을 가졌었다. 그 때 전시장 입구에는 "동물원 오는 길"이란 전시 제목이 붙여 있었다. 관람객들은 낯익지 않은 전시 제목을 보면서 머뭇거렸다. "동물원은 무엇이고, 오는 길은 또 뭐야." 조금은 황당하고 헷갈리게 했다. 이러한 제목으로 화두를 던지는 작가의 의중은 물론 계산되고 의도된 것이다. 전시장 풍경은 이랬다. 여우 가죽(물론 가짜인)이 캔버스 위에 오브제로 등장하고 인조풀이 깔리고 원숭이와 요구르트가 같은 캔버스 위에 가볍게 그려졌고 동물원을 패러디한 여러 소재들이 여기저기 그려지고 붙여 졌다. 동물원에 '가는 길'이 아니라 '오는 길'로 이름을 붙인 것은 인간에 사육되어지는 동물의 시점(視點)에서 인간이 강제한 '동물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표현으로 그의 작품은 인간의 오만한 습성을 동물을 소재로 하여 회화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요약된다. ● 위 전시로부터 일년이 지나서 그는 우리 앞에 새 작품들을 내 놓았다. 앞에서 언급한 지난해의 개인전과 여러모로 비교되기도 하고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일단은 흥미를 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서 이번 전시에도 '동물원'을 전시 제목으로 내걸었다. 단지 수식어인 '오는 길'을 '사이비'로 바꿔 달았다. 오늘날 최대 화두인 '사이버'를 조롱하려고 비슷한 발음인 사이비를 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적으로도 그의 작품들은 그전에 비해 사이버상의 디지털 이미지를 상당부분 흉내내고 있다. 비교적 공간 연출에 중점을 준 전시장에는 사이버상의 밀도를 나타내는 픽셀이 가시적인 망의 구조로 동물원의 울타리를 형성하고, 그 안에는 촛점을 동물의 엉덩이에 맞춘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 외에도 바닥에 수도꼭지와 함께 놓여진 물웅덩이를 비롯하여 욕조에 담긴 하마그림과 피크닉 온 사람, 동물학명(學名)의 문자 이미지 등을 통해서 인간과 동물이 조우하는 증거를 평면 및 설치 미술로 보여주고 있다. 그대로가 사이비요 허구이며 가식이라는 점을 환기시켜 준다. 여기서 인간의 습관은 위협을 받으며 탈출구가 어디인가를 찾는다. 작가는 이를 관조적 사유를 통해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다. 동물원이 인간에 의해 동물의 자유를 빼앗은 공간이듯이 사이비가 진실과 거리가 먼 허구적인 공간으로 바라보지만, 그를 적으로 규정하여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경계의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오히려 인간 습성의 반성을 촉구하는 회화적 실험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제 그는 출발 지점에 서있다. 주변을 보면 찬란한 21세기 새로운 빛의 신대륙으로 찬미되는 사이버 세상이 주된 명제로 등장해 있으며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내포한 이미지가 난무한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작가 류 지선은 결국 오늘날의 담론들을 확장된 회화적 형식으로 무난히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쉽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음을 극복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송인상
Vol.20010504a | 류지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