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1_0410_화요일_06:00pm
갤러리 사간 서울 종로구 사간동 55번지 Tel. 02_736_1447
사진과 장소 ● 통용되고 있는 사진 프로세스가 완료된 시점에서 나의 작업은 시작된다. 사진 이미지를 일정간격으로 잘라서 흰 평면에 재구성하거나 사진을 붙인 나무 막대기들을 바닥에 설치하기도 한다. 사진 메커니즘(mechanism)에 개입하는 이 같은 나의 행위는 또 다른 질서로서 사진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 토막친 이미지들은 배열이 가해진 순간부터 사진고유의 재현성이 약화되기 시작하고 그 즉물적 환기 성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배열과 배치의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어떤 운 동감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배열순간은 촬영의 순간만큼이나 긴장되고 토막들의 엇긋진 강도는 그만큼의 평면적 장소성과 공간적 현장감을 지각케 한다. ● 완성된 사진 이미지를 자르고 배열하는 행위는 이미지의 부정이 아니라 이미지의 분절을 통해 시지각적 장소성의 회복을 위해서 이다. 이미지를 통한 실물의 존재론적 환기성인 사진적 현실감은 촬영순간과 사진의 지각 순간이 동시성을 띨 때 가능하고 사진적 장소성이 지금/이곳의 장소성을 대신할 때 가능하다. 시신경에 투사되는 보는 순간의 사진이란 이미지가 대상화되는 순간이며 촬영 시 실물이 사진 메커니즘에 투사되어 대상화되는 순간과 일치된다. 일루젼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두 순간의 동시성이 지속되어야 하고 사진적 장소성만 선택되어야 한다. 이미지를 보고 있는 지금/이곳은, 이미지의 그때/그곳과 구분이 없어야 한다. ● 현재의 순간과 과거의 순간이 동시성으로 지각되는 일루젼의 메커니즘은 그러나 이미지와 실물 사이의 인식론적 차별성에 직면하게 되고 의식의 연상과 상상력의 개입으로 그것은 둔화되기도 한다. 직설법적인 현재와 과거가 동시성으로 묶여지는 상황은 곧 저쪽의 장소가 이쪽의 장소성으로 지각되고 이쪽의 장소가 저쪽의 장소성으로 지각되어야 한다. 누가 저쪽에서 이쪽을 지각하는 것일까? 일루젼의 메커니즘에 의해서 나의 지각 순간은 사진적 장소에 그 장소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진 메커니즘은 촬영순간의 장소에 그 장소성을 부여한다. 신체적 지각 순간은 기계적 지각순간과 동일시되고 있다. ● 사진 프로세스기가 완료된 시점에서 시작되는 나의 작업은 사진이미지에 잠재된 기계적 질서와 이미지 밖의 신체적 지각성을 대응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장소에 위치하기 마련이고 어떤 장소에서 보기 마련인 사진이미지는 지각적 장소성을 외면하기 어렵다. 하얀 바탕에 어긋나게 배열되는 사진 토막들은 2차원 평면의 장소성과 대응된다. 배열의 어긋진 강도만큼 장소성이 부여되면 그만큼의 시간 지각-운동감이 뒤따른다. 잘라진 사진 토막들을 재정리하면 사진 이미지의 원형을 되찾을 수 있다. 즉, 광량의 수리적 사진현실은 변함이 없지만 나의 개입으로 인해서 분절된 사진 단위들은 평면의 또 다른 현실에서 반응하고 있는 셈이다. 3차원 공간 바닥에 설치되는 사진 막대기의 경우는 장소성이 보다 적극적이고 열린 쪽이다. 나와 관객은 같은 바닥을 밟고 움직이면서 역시 같은 바닥에 놓여진 사진 막대기의 배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시지각 공간에 대한 선 원근법적 해석 원리에 근거해서 사진 메커니즘은 발생했고 세계의 대상화 프로세스가 가능했다. 사진의 질서는 따라서 대상화의 순환 메커니즘을 숙명적으로 안고 있으며 인간의 시지각도 대상화 메커니즘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실물 앞에서 보고 느끼는 대신 '사진적으로'만 대응하기 쉽다. 사진 메커니즘의 유용성은 또한 대상화의 인플레 현상을 초래하고 새로운 지각으로서의 사진 언어가 필연적으로 요청되고 있다. 사진 메커니즘의 지각 언어화를 통해서나 메커니즘 밖의 지각요소의 대응과 개입에 의해서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이 모두는 대상화의 순환 구조를 제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인간의 기계에 대한 지각성의 또 다른 성숙을 뜻한다. ■ 정재규
Vol.20010413a | 정재규展 / CHONGJAEKYOO / 鄭載圭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