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 김홍석_임승률_STUDIO 자양 강장제_오동권_김효진_백연수_조소연
대안공간 인더루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3-3번지 B1 Tel. 02_3141_1377
레트로 비스트로라는 전시는 미술을 바라보는 일조차 지긋지긋해 하는 이들과 미술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지만 그냥 좋아지는 현상에 마음을 내 맡긴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어떠한 담론과 이슈를 거부하면서도 미술이 그냥 뚝딱 생기는 걸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에는 기획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특별한 이슈가 내재됨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이 전시는 담론화 되어 가는 어떤 이슈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이 아니며 전시와 작품이 형성되어지는 형식에 대한 의문과 실험이다. 또한 문화 예술계에서 담론화 된 주제가 작가들의 개별적 해석에 의해 작품으로 제작되어짐을 지양하고 작가들의 개인적 관심에 의해 제작된 작품들이 나열되는 방식도 배제한다. 어떤 담론을 하나의 단어로 요약하여 전시의 개념으로 설정한다든가 그 이슈에 적합한 작가들을 선별, 선택하여 전시를 기획한다든가 하는 기존의 전시형태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전시가 개막되기 전 어떠한 조건과 설정이 전제한 후에 작품이 제작되는 형식을 아울러 배제한다. 다만 한가지 재현 representation이라는 미술의 본연적 입장은 이 전시에 유일하면서도 단순한 주제가 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미술의 실험들은 결국 기존의 미술 양식에 대한 재현(차용이 아니라)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90년대의 미술은 시지각(視知覺)에서 뿐만 아니라 미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심지어 기존의 미술의 실험과 그에 따른 개념조차 반복적으로 재현되어졌다는 것에 주목했으며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재현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재현이라는 미술의 전통적 의미의 재현representation을 회고(回顧)하고 다시 리바이벌 revival한다는 의도-RETRO-와 이러한 실험은 진지한 담론으로 다루어지기보다는 즐거운 담소의 장으로 되길 바라는 의미-BISTRO- 에서 이 전시의 제목이 성립되었다.
작품 설명-여러 개의 미술을 한 장소에 모아 놓는 일
임승률은 미술가이면서도 다방 레지인지 미술로써 레지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인지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다방레지이다. 다방을 운영하는 소유자(所有者)도 아니고 어느 다방에 소속된 것도 아니며 그는 스스로 원하여 다방레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객이 원하는 곳에 커피를 배달한다. 광고용 찌라시를 배포한 지역이 곧 자신이 커피를 배달해야 할 구역이 되며 자신에게 연락을 해온 고객들에게 신속하게 배달하기 위해 배달용 오토바이(2대가 하나로 결합된 형태)를 제작하기도 한 그는 전문적 커피 배달부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조차 커피를 배달시켜 먹을 수 있으며 그런 길거리에서도 고객이 편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접이식 의자와 테이블도 들고 다닌다. 이러한 행위는 서비스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왜냐하면 커피값은 무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결부되지 않은 서비스 정신은 진정한 의미에서 서비스업이 아니다. 차라리 자선사업과도 같이 보이는 이 행위는 그래서 딱히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농경 정착적 문화를 가진 배달의 민족의 후예인 그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목적 배달부가 되었다고 하면 유치해진다. 단지 레지의 어원이 레지스트(resist)에서 온 점으로 미루어 보면 그의 행위에 대한 이해가 한결 수월해 진다. 이러한 그가 이번 전시에 참여하여 전시장에 다방을 차린다. 그 전시를 보러 온 이들은 그가 제공하는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그는 전문적 미술 교육을 받은 자다.
백연수는 도살장에 방문하여 이미 죽은 한 마리의 돼지를 구입한다. 살코기는 팔리거나 먹혀지고 돼지라는 존재를 알려줄 만한 나머지 것들 즉, 돼지 뼈를 수거하여 조립한다. 그래서 어찌어찌 하여 다시 돼지는 돼지로 복원된다. 그리고 그 돼지는 다시 살이 입혀진다. 두둑해 보이던 원래의 돼지가 아니라 초콜릿이라는 살로 살짝 입혀진 가냘픈 돼지가 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미술가의 역할이 강조되었고 이는 전통적 재현이며 완벽한 조각(sculpture)이다. 뻔뻔하게 은유나 상징도 언급될 필요도 없다. 은유나 상징이 뻔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는 작품대 위에 전시, 진열된다.
STUDIO 자양강장제(김성철, 최정호, 김영기)라는 팀은 '예술은 살아 있다.'라는 제목을 가진 교육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에서 교육받는 미술 전공의 대학생과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의 서구의 미술 양식을 미술사적 입장에서 임의대로 해석하여 구성한 것이다. 내용의 선별 기준은 순전히 지 멋대로 식이며 그 구성은 뜬금 없이 minimalism, installation, body art, performance로 한정되어 있다. 이번에는 퍼포먼스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한다. 익명의 어떤 초대 작가를 모시고 퍼포먼스의 개념과 미술사적 맥락에서의 해석을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하고 곧 어떤 퍼포먼스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이 작업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이 세 사람들에 의해 조작되고 연출되고 연기되고 제작된다. 예로써 소개되는(결국 자신들이 만든) 퍼포먼스는 두 명의 친구가 다른 한 친구를 살해하는 과정을 특별한 편집이 없이 기록적으로 담고 있다. 인터뷰(작가와의 대담)와 친구를 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 퍼포먼스는 모두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의 형식적 재현이다. 그들은 퍼포먼스가 무엇인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무언가 수행(perform)하는 단순한 과정을 보여 주었고 이는 도큐멘타리와 TV, 그리고 싱글 채널 비디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비빔밥처럼 뭉개 버리려 한 결연한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오동권은 벽지에 무릉도원을 그린다. 벽지란 규격이 있기 때문에 그는 적게는 한 폭의 벽지에 무릉도원을 그리기도 하고 열 폭 이상의 대단히 넓은 면을 산들로 꽉 채우기도 한다. 혹은 어느 공간의 벽면의 크기에 맞추어 그리기도 한다. 동양의 전통적 계층식 원근을 그대로 차용하여 몇겹의 산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가고 그 벽지 앞면에는 느닷없이 여러 크기의 하얀 캔버스가 간격을 두고 겹겹이 서있다. 그 각각의 캔버스에는 나무와 돌 그리고 물이 흐른다. 기법은 여전히 흑백의 수묵화를 연상시키지만 하얀 캔버스를 의식한 연유인지 서양식 원근법이 나타나 있다. 즉 배경은 동양적 원근으로 근경의 정물은 서양의 원근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두 가지의 다른 원근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수묵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고 하기엔 형편없는 어거지가 되고 벽지나 캔버스 같은 재료에 의해 기존 수묵화와 구별된다고 한다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의 캔버스에는 전통적 의미의 정물인 나무, 돌, 계곡 뿐 아니라 요즘식 술병(소주병처럼 보이는)과 슬리퍼도 등장한다. 그리고 그 커다란 벽지의 상단 즉, 겹겹이 쌓인 원경(遠景)의 산들 사이로 날아가는 조그만 제트 비행기도 발견된다. 심지어 벽지와 수평의 간격을 두고 겹겹이 서있는 캔버스 사이에는 진짜 정물도 존재한다. 그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갖다 놓고 음악 마저 틀어 놓는다. 이렇게 됨으로써 여기에서 할 말은 무진장 많아지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는 기존의 회화를 (실재 대상이 아니라) 재현(패러디가 아니라) 하였다. ● 그는 벽지를 벽에 실제로 붙이지 않는다. 그냥 테이프로 고정한다. 그래서 그가 그린 산이 있는 벽지는 어느 공간이고 상황에 맞게 후루룩 펼쳐 벽면에 테이프로 고정시키면 순식간에 산이 나타나게 된다.
김효진은 항상 글을 쓰는데 문장이 미술이라는 형식으로 변환 될 때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해 주목한다. 표음적인 언어가 주는 한정적 소통성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의미의 답답함에 대해 의문을 갖고 시작하였으며 그녀는 그림문자화 된 자신만의 독특한 드로잉을 개발하여 그 내용을 표현한다. 따라서 자신이 썼던 글을 공개하지 않는다. 연속된 씬(scene)에 의해 구성된 그림들은 그 방향에 의해 읽혀지기도 하며 이번 전시의 경우에서는 하나의 독립적인 기호들이 그림으로 나타난다. 종이, 벽면, 족자, 병풍, 방석, 이불 등 편평하고 그릴 만 한 곳 어디에든 그녀의 이야기는 전개되어 진다. 고대 이집트 부조나 벽화에서 보임직한 정형화된 그녀의 드로잉은 화석처럼 오래된 어떤 기호처럼 보여지지만 빤질빤질하고 새것처럼 보이는 재질로 인해 상당히 당혹스럽게 된다.
조소연은 자신의 얼굴을 컴퓨터로 수십 가지의 다른 얼굴로 변조한 후 바로 그 자신을 이탈, 변형한 죄목을 씌워 현상 수배 전단을 뿌린 적이 있다. 여기서 정체성이니 시뮬레이션이니 복제라는 단어는 어울리지도 않을 뿐 더러 차라리 상관을 안 하는 것이 유리하다. 중요한 것은 얼굴(portrait)을 표현한 것이다. 굳이 또 다른 재미난 구석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자신이 죄를 만들어 그 죄에 자신이 적용되게 한 후 타인에 의해 신고되어 법적인 처벌을 받고자 한 점이다. 자학적 증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의 얼굴이 누구냐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들에게 묻는 귀여운 유머인 것이다. 현재 그녀는 가지각색의 케이크를 구워내고 있다. 케이크 상단 표면에는 실제 대한민국에서 수배되고 있는 범죄자의 얼굴과 죄목 그리고 수배자의 신체적 특징이 정확히 프린트되어 있다. 남의 얼굴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표현한 것이다. 그 케이크는 원형과 사각형의 두 가지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입체화(plastic) 되어진 케이크는 구성주의적인 재현이 아니며 세잔느의 원통도 르네상스 이래로 내려온 육면체도 아니다. 오븐에 들어가야 하는 규격과 먹기 좋은 부피가 그 형태의 당위성이다. 이 케이크 실제 먹을 수 있으며 관람객(손님)에게 제공된다. 여기서 소멸됨으로 사물이 완성된다는 진부한 해석은 전혀 필요 없다.
김홍석은 눈에 보이는 작품을 이번에 전시하지 않는다. 그는 이 전시가 생겨나도록 주선(남들은 이를 기획이라고 한다.)하였고 그로 인한 뿌듯함으로 이러한 과정과 절차가 미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가 한 중매쟁이 같은 역할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기존의 전시가 기획만 되었지 실제로 어떠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수많은 전시가 벌어지지만 일반 대중이 미술에 접근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품을 제작, 발표한 미술가가 작품이라도 팔아먹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러한 답답하고 과포화 된 대한민국의 작가군들을 해외로 수출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 그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과연 기획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전문적인가 스스로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상업화랑에서 조차 소위 안 팔리는 작품을 모아 기획전이라 이름 붙여져 열리는 전시와 그에 맞추어 매일 매일 발송되는 미술 인쇄물에 담긴 비평과 그 사진들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이 전시의 시작이다. 그는 직접 큐레이터가 되어 스스로 이러한 현장을 경험하는데 그가 기존의 미술전시에서 벌어지는 과정에서 차용한 유일한 것은 비평가에게 글을 부탁한 점이다. 그 이외에 그는 작가를 선별하는데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전개하였다. 어떠한 이슈를 정하여 그에 합당한 작가들을 섭외 한다거나 아니면 어떠한 작가군들의 성향을 연구하여 그들을 소개한다는 기존의 방식을 부정하고 그와 친분이 있는 후배나 제자, 그도 아니면 그냥 술 마시다 기분이 내켜서 같이 하게 되는 식을 적용시켰다. 따라서 그는 전시에 이슈가 내포됨을 부정하였고 그냥 어찌 하다 생긴 전시가 훨씬 유리하다 쪽으로 연구하였다. 이렇게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작가들을 모으다 보니 과연 작품들이 어떻게 전시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만도 한데 그는 기존의 미술계에서 실험되었던 수많은 디스플레이 방식을 거부하고 그냥 마음에 드는 것부터 그리고 서로 그러는 게 낳겠다 식과 눈에 잘 보이는 백화점 식 디스플레이를 혼합하여 적용시켰다. 어차피 팔릴 만한 작품을 하지도 않을 작가들과 어차피 작품을 팔아 주는데도 없는 현실이니 이 전시는 친목, 동호회로써 불려지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그러나 한가지, 이슈가 없는 전시라고 들먹이다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이슈가 된다는 자가당착은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기획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시란 전시가 시작되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이다. 따라서 그는 이 전시를 시작으로 참여한 작가들을 관리 할 것이며 여기서 관리란 이들의 작품이 상업적인 이득으로 이어지게 하거나 이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어떠한 연결고리를 성사시킴을 의미한다. (이때 그는 자신의 지분과 권리를 확보할 것이다.) 즉 그의 작업은 진행 중에 있는 것이고 그의 작품의 완성은 6개의 작품이 각기 다른 소통적 독립성을 가질 때 완료되는 것이며 그는 이 전시에서 유일하게 완성 못한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인 것이다. ■ 김홍석
Vol.20010410a | 레트로 비스트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