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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부터 시리즈로 제작해 온 「산의 이미지」(1992), 「나무의 이미지」(1994), 「形시리즈」(1995), 「컵시리즈」(1995), 「겨울나무」(1996), 「겨울정물」(1999)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용필은 자연을 자신의 조형세계의 주요 테마로 삼아 온 젊은 도예가이다. 미술의 역사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영감과 감동의 원천이 되어왔으며, 자연의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그를 다루는 작가들의 시각도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 그는 이번 전시를 "Winter still life"라는 타이틀로 하여 슬립 캐스팅으로 제작한 컵과 화병들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들 컵과 화병은 용기(用器)로서의 개체적 의미보다는 배열되고 집합되므로서 새로운 시각적 효과를 지니게 된다. ● 팝아트나 키네틱 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에서 알 수 있듯이 배열은 이미 하나의 조형언어로 자리잡아 왔다. 더욱이 인스톨레이션이 유행처럼 번졌던 20세기 末과 오늘의 예술계에서 공간한계를 의식하지 않는 다양한 설치작업들을 통해 이 조형언어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가 자신의 컵과 화병들의 배열과 구성을 통해서 보이고자 함은 반복된 이미지에 의한 리듬이나 역동감이 아니라 그들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전체로서의 조화에 있다. 이전부터 그가 다루었던 자연의 소재들은 주로 나무나 겨울과 관련된 것이었다. 특히 1995년부터 「컵시리즈」, 「겨울나무」등과 같은 일련의 백색 슬립 캐스팅 작업에서는 나무가지로 지지된 컵들을 병렬시키거나 일그러진 用器를 집적시킨 형태들을 선보였다. 따라서 색채보다는 형태 자체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 형태들은 자연과 인간의 이미지가 중첩된 형상들로 자연과 융화된 인간의 속성들을 보여준다. ●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겨울이라는 테마에 더욱 몰두하고 있는데, 모든 작품들을 백색 모노크롬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것은 색채에 대한 무관심이라기보다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눈 덮인 겨울 풍경의 하얀 이미지가 지닌 순수함과 투명함을 대변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색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백색은 모든 것의 처음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모든 색의 바탕이 되는 포용력도 지녔다. 그의 작품은 이 색채와 더불어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다. ● 현대도예의 여러 경향들이 흙이라는 매체를 공유할 뿐 다양하고 실험적인 탈 장르적 제작성향들을 보이는 가운데 그의 작품은 도자기의 본래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 작가의 구성과 배치에 의해 본래의 있어야 할 자리를 일탈하므로서 用器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 작가가 유독 겨울을 응시했던 것은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맑음과 순수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겨울은 바람과 시련을 견뎌내는 겸허의 계절이며, 고요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잠재의 시기이다. 그래서 작가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우리와 대조되는 자연의 묵묵함과 질서의 교훈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 유난히 눈이 많았던 지난 겨울, 그 계절만큼이나 작가도 오랜시간의 수고와 고단함을 견뎠을 것이다. 이제 우리 앞에 서 있는 그의 작품들을 우리는 따뜻한 마음과 진심어린 충고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 송기쁨
Vol.20010323a | 이용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