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 강대철_강요배_권순철_김광진_김용태_김정헌_김원숙_김호득 김호석_민정기_박불똥_박인철_박인경_박생광_박흥순_박희선 서용선_송창_손장섭_송매희_손상기_송현숙_신학철_심정수 안보선_안성금_안창홍_오경환_오윤_오치균_이상국_이응노 이종구_이청운_이흥덕_임옥상_전병현_전수천_정복수_한애규 홍선웅_홍성담_홍순명_홍순모_황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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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리얼리즘과 그 시대 ● 나는 지난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전' 기획에 참가했다. 참가한 정도가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에 출퇴근하면서 실무를 겸하기까지 했다. 그 때 나는 1980년대 민중미술이 자기 사명을 다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갈 것을 희망하고 있었던 터였다. 거듭된 민중운동의 패퇴와 그 집단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사실주의 창작과 대중활동의 전개를 내세우던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은 혁신의 계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 전시에는 1980년대에 활동했던 작가들 거의가 참가했다. 물론 다수는 이 전시를 민중미술 장례식이라 비판했고 나 또한 거기에 일부 동의하고 있었다. 당시 민중미술의 종식과 더불어 그것이 지니고 있는 핵심에 관해 계승과 혁신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었던 탓이다. ● 실제로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민중미술의 이념과 양식은 퇴행 양상을 보였다. 많은 현장활동가들이 후퇴하여 생활인으로 전환했다. 그들은 애초 자본주의 사회에서 뛰어난 작가를 희망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또한 거의 모두가 집단활동에서 개인창작활동으로 근거지를 옮겨갔으며, 특히 계급미술론을 주창하던 급진 이데올로그들은 사상편력을 과시하듯 서구의 미학, 미술론을 이식하는 번역가들로 전환했다. ● 나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에 참가한 일에 관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 때 나는 민중미술의 핵심 가운데 사실주의 또는 리얼리즘 미학과 이론의 가능성을 선택했고 이후 리얼리스트들의 풍요로운 열매를 기대했던 것이다. ● 내가 평가한 바, 1980년대 민중미술과 그 운동은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제 당해왔던 미술과 사회, 미술과 정치의 관계를 풀어놓았다. 허구에 찬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전쟁과 분단 이후 남한 사회에서 미술과 미술가가 참된 자유를 획득했던 것이다. ● 예술지상주의 또는 심미주의 미명아래 숱한 순수론자들이 국가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작품 창작과 사회 활동을 스스럼없이 펼쳐왔던 것은 분단과 독재체제의 순응이라 하더라도 미술과 미술가의 자유롭고 창의에 넘치는 세계관마저 억압 당해온 발자취는 어찌 설명해야할까.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이 그같은 순수의 억압과 권력에의 순응을 제거하고 풍요롭고 성대한 상상력의 가능성을 열어제낀 것이다. ● 윌러스틴이 말한 바 '기술의 근대성'과 '해방의 근대성'이 비로소 조화를 이루며 남한 미술계의 근대, 근대성에 관해 논의할 터전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근대, 근대성의 터전 ● 20세기 끝무렵에 이르러 남한 사회는 민족국가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상당 수준에서 획득했다. 물론 민주주의는 여전히 천박한 수준에 머물고 있고, 산업화 또한 최근 경제위기에서 보이듯 자본주의세계체제의 그늘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민족국가는 분단국가로서 여전히 반쪽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 사회가 근대 국민국가의 외형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 그같은 시대상황을 배경삼아 목청을 높이기 시작한 탈근대론자들이 우리가 이뤄온 '근대 국민국가'를 부정하고 나서는 가운데 민족과 계급의 해체를 운위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문화론을 앞장세워 거대 담론을 해체하고 다원성과 일상성을 중심 담론으로 떠올려 놓았다. ● 이러한 현상은 미술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광주비엔날레를 계기삼은 국제규모의 거대 행사를 발판삼아 기존 미술의 위계질서에 도전하는 기획이 잇달아 범람하기에 이르렀다. 세계화에 도전하려는 젊은 기획자와 작가들의 야심찬 구상이 호기를 만난 것이다. 그같은 범람은 마치 '새로운 전망'을 가져올 구원이나 되는 것처럼 미화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멋있게도 국가와 민족 단위를 허물고 계급과 계층 차별을 감추는 탈근대, 탈식민론으로 포장되었다. ● 어느덧 민족주의는 '과도한 민족주의'로 포장되어 세계화의 장애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고, 노동운동은 시민운동의 고상한 미래에 짓눌려 낡은 계급주의의 덫으로 떨어졌다. 1980년대 미술운동이 내세운 민족, 민중 이념이 눈녹듯 사라진 지금, 그 시절 계급을 팔던 맑스주의자들은 어느새 서구 미학과 문화이론을 판매하는 강사들로 변신해 있다. 그 뿐인가. 노동과 계급을 앞장세우던 그 급진주의 미술가들도 어느덧 시민문화운동가들로 개신해 있는 터이다. ● 요란한 기획이 판을 치는 가운데 가능한 모든 것들을 실험하는 해방된 상상력은 대단한 활력이지만 실로 21세기를 맞이한 우리 미술, 미술가들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기존의 위계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일이야 당연하다 하더라도 강단과 미협이 위협받고 있으며 또한 시장은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권위를 잃어버린 강단의 누추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며, 험악한 이권쟁탈에 눈먼 미협은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 더우기 시장은 1%환경물 설치조례 폐지 및 미술품양도소득세 따위에서 보듯 관료주의 미술문화정책의 굴레로부터 제약을 풀지 못하고 있다. ● 그 모두가 실로 위대한 예술전통과 오랜 인문학 전통의 단절 그리고 식민과 분단의 왜곡이 빚어낸 문화의식의 천박성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일 게다. 그런 뜻에서 나는 탈근대론자, 탈식민론자들이 외치는 서구중심주의와 세계화가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세계화를 꿈꾸는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폐기해야할 장애물인가? 전통은 봉건의 유산일뿐이므로 폐기해야할 목록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일상의 소중함 때문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의 피로와 황폐함에 눈감아야하는 것일까?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승인하며 그 그늘에 온존하는 기획에 만족해야만 하는 것인가? 동아시아 연대를 새로운 국제질서로 인정하고 중국과 일본의 패권 추구는 방치해두어야 할 것인가? 환경과 인권,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는 국가와 이념 따위 억압기제를 거대담론이라하여 방치할 것인가? 분단과 통일 또한 민족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부차화시켜 둘 것인가? ● 나는 그같은 문제의식이야말로 21세기 미술, 미술가들 앞에 주어진 실천과제라고 생각한다. 10년전 내가 속한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해소와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에 참가하면서 주장한 것은 그 민중미술 이념과 양식의 해소, 폐기, 청산 따위가 아니었다. 생활 속에서 시작하는 리얼리즘 정신과 방법 그리고 그로부터 일궈나갈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오늘날 탈식민, 탈근대와 같은 담론이 우리 앞에 주어진 숱한 모순과 그 해결의 대안을 모색하는 기능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거니와 그것은 세기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핵심을 계승하고 혁신해 나가는 것일 터이다. 그 핵심은 민중미술이 확보해 나간 근대, 근대성이겠다.
수장작품의 성격 ● 내가 21세기에 이르러 '1980년대 리얼리즘과 그 시대'란 이름의 전시를 준비하는 것은 개인사로 보나 미술사로 보더라도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이호재 대표가 가끔씩 자신이 소장한 1980년대 작품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기회를 갖겠다고 했었는데 비로소 이제 그 진면목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수장작품을 보니 거개가 모두 익숙한 작품들로 그 활동했던 시간과 공간에 함께했던 작품들이었다. 당연히 나서야 할 전시라고 여겼고 이대표는 그럴 기회를 주었다. ● 1970년대 말 미술의 사회성에 눈길을 주면서 그 가능성을 실천하려는 조직에 참가한 나는 그 뒤 미술사의 숱한 굴절을 체험해 왔다. 때로는 공장, 농촌, 광장에서 때로는 미술동네, 문학동네, 연극동네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실천하고자 했다. ● 미술의 민족성, 민중성 획득은 물론, 그 방법과 양식에서 집단창작, 조직활동 체계 그리고 리얼리즘 양식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끝임없이 구현해왔다. 실제로 조직에 참가해 토론도 하고 기관지를 만들기도 했으며, 가두에 나서기도 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혼신을 다 했다. ● 1980년대 초기엔 그같은 활동에 나서는 미술가들이 거의 없었다. 숨어 있었을 터이지만 누구도 내놓고 말하거나 보여주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많은 미술가들은 숨죽였고 나서지 않았다. 민주대항쟁 끝에 군사독재정권이 후퇴했던 1987년에야 비로소 드러내놓고 자신을 과시하는 미술가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보면 미술운동, 민중미술운동은 민중의 진출에 터전을 두는 것이다. 아무튼 그들을 눈여겨 보아온 사람 가운데 하나인 내가 보기에 문득 지난날 자신이 '민중미술의 모든 것'을 다 해 온듯 허풍을 떠는 미술가를 보면 귀여운 애물처럼 보여 처절했던 지난날의 내가 싱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 '그림마당민'이란 간판을 내건 것은 민족미술협의회 활동을 미술동네에서 펼치자는 것이었으되 외연을 확장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때 난 그 공간에 상근하는 간사로 출퇴근 했었는데 그 때부터 가나화랑 이호재 대표를 가끔 보곤 했다. 기금마련 전시를 할 때면 나타나곤 했던 이대표는 휭 둘러보곤 사라졌다. 그러고 나면 몇몇 작품은 그의 손으로 갔고 민족미술협의회는 집세도 내고, 유인물도 찍고, 기관지도 만들어 내곤 했던 것이다. 그 시절 미술운동에 나섰던 작가, 이론가들과 더불어 수집가도 포함해야 한다고 여기곤 했는데 수집가 가운데 한사람이 다름아닌 이대표다. ● 식민지 시대 때 문화재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와 방만한 해외 유출이 극심한 시절, 그 유산을 수집해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보존한 간송미술관 설립자 전형필을 오늘날 민족문화의 수호자라 일컫고 있다. 해방 뒤엔 호암미술관 설립자 이병철을 그렇게 이르고 있는데 이러한 수집과 보존을 꾀하는 거대 수장가들의 존재는 자본주의 시대 문화사의 주요 근거이기조차 하다. 그러나 수장가라고 해서 누구나 그처럼 커다란 시대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환경과 깊은 관련을 갖는 것이다. ● 민중미술이 전개되던 1980년대는 독재권력이 이른바 민중이념과 민주화세력에 대해 경찰력을 동원해 폭력으로 억압하고 있었고 더구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심미주의 미술가들은 민중미술가들에 향해 비판을 넘어서 지나친 공격을 가했던 시절이었다. 그같은 시절, 수장가의 안목으로 민중미술에 접근했던 것은 막연한 수집이나 후원이 아닌 대열에의 동참이었다. 물론 이호재 대표의 수집은 민중미술작품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폭넓은 시야로 그 외연이 확대되어 있었으며 이를테면 이응노나 박생광을 포괄하는 1980년대 리얼리즘 양식 또는 시대정신 양식에 눈길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수장과 전시의 역사 가치 ● 21세기 벽두에 20세기의 리얼리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회고와 감상을 꾀한다는 것은 비단 과거 역사의 반추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인간해방의 존엄함을 지니고 있는 지난 시기 가치 있는 실천과 그 열매를 그저 지난날의 추억으로 만들만큼 아직 우리의 현실이 편치 않은 까닭이다. ● 20세기를 가득 채웠던 차별과 증오, 분노 따위 모든 추악함이 21세기인 오늘 모두 사라졌을까? 인간 가치를 훼손하는 그 숱한 기제들이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모두 사라졌을까? 민족과 계급, 국가와 사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구조는 완전히 해결되었을까? ● 지난 1980년대 시대정신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곳에서 그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미술이 추구했던 해방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진지하게 음미하는 가운데 21세기 과제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1980년대 리얼리즘과 그 시대'의 작품들이 지닌 시대와 역사 가치를 평가하고 나아가 그것이 지닌 예술과 조형 가치도 더불어 헤아려보는 일은 이번 전시가 겨냥하는 첫번째 목적이다. ● 더불어 리얼리즘 미술의 과거를 헤아리면서 21세기 미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목적이다. 오늘날 우리 미술과 미술가들이 우리 시대 현실을 어떻게 끌어안고 있으며 나아가고자 하는지를 성찰하는 기회이길 희망하는 것이다. ● 지난 '민중미술 15년'전이 민중미술을 무덤으로 보낸 장례식이었다는 평가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하더라도, 이제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게다가 세기가 바뀐 지금, '리얼리즘과 그 시대'전을 과거의 가치와 미래의 전망이 더불어 숨쉬는 강렬한 미술사의 계기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법고창신 또는 계승과 혁신의 방법론은 오늘날 미술과 사회의 관계를 살아있게 하고 더불어 미술이 인간해방을 향한 가장 아름다운 예술로 타오르기 위해서 말이다. ● 뛰어난 기획에 의한 전시를 하건, 한 수장가의 소장품을 전시하건 한 차례의 전시가 그같은 계기로 작동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미술사의 흐름, 그 미학과 방법, 이념과 양식의 줄거리는 전시건 어떤 사건이건 변화와 이행의 동력을 줄기차게 찾는다. ● 수장 작품이 수장고를 벗어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눈길에 마주쳐 그것이 지닌 숱한 가치들을 전달하고 그래서 세상에 되살아날 수 있다면 그 작품에 내재된 정신이 오늘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리얼리즘과 그 시대'전이 그와같은 계기이자 역할을 하기를 희망하는 것은, 여기 출품되는 작품들의 수장 과정과 세기가 바뀐 오늘에 공개하는 기나긴 역사 유래 그리고 그 작품이 지니고 있는 정신과 조형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 나는 끝으로 수장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오늘처럼 강렬하게 부각된 적이 없음을 말해두고 싶다. 동시대 현실에 의미있는 소장 과정은 물론 또한 그 작품이 지닌 문제의식의 핵심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시대에 그 수장품을 공개하고 그것의 살아있는 현실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이다. 오래된 문화재 수집과 전시 행위가 오늘날 가치 있는 문화행위로 평가받고 있는 터에 동시대는 물론 미래 가능성까지 아우르는 수장가의 행위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 최열
Vol.20010315a | 1980년대 리얼리즘과 그 시대 ②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