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감각계, 회화적 되새김질

이흥덕展 / LEEHEUNGDUK / 李興德 / painting   2001_0212 ▶ 2001_0320

이흥덕_여유_캔버스에 유채_90×72cm_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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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서울은 우울하다. 이흥덕의 그림 속에 비치는 서울은 권력과 소비와 폭력과 범죄와 위선과 거짓이 카페와 미용실과 지하철과 풀장과 거리와 신도시에서 횡행한다. 거기에 '나'는 없이 타자화된 숱한 사람들이 넘치고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즐기기 위해 바글거린다. 한편 그 사이에선 이 소돔과 같은 서울을 구원(?)하려 붓다와 예수가 등장하기도 한다. ● 서울의 낮과 밤은 그야말로 한가함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개에게 쫓기는 불안이 이젠 일상이며(지하철), 한가한가 싶으면 횡단보도를 향해 중앙선을 넘으며 질주하는 차(사거리)도 일상이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증폭되는 자본주의 가치체계는 이제 더 이상 어떤 힘에도 끄떡 않는다. 요지경瑤池鏡 속에 비친 아수라阿修羅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의 무력감과 희망에 대한 관념이 섞여서 이흥덕 그림은 유쾌하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을 씁쓸한 유머로 포착해 낸다. 그 포착이 작가의 의도야 어떻든 간에 풍자가 되고 풍자는 바로 우리들의 의식을 공격한다. 희화화된 인물들의 표정 뒤로 우울한 사람들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비쳐지고 그 속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살아가지 못하는데 대한 자괴감이 불안이 되어 우리를 감싼다. ● 이흥덕 그림 속의 불안은 이미 오래 되었다. 다만 초현실적인 요소를 띄던 과거의 그림들과는 달리 지금의 불안은 더욱 구체적인 주변 현장에서 드러나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작가의 심리적인 시점에 의해 드러나던 구작에서의 불안이 이젠 객관적인 관찰로부터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구체성을 증폭해 낸다. 따라서 불안은, 혹은 그러한 불안 사이에 종종 비치는 희망에 대한 상징(성자들이나 통나무를 멘 젊은이, 머리에 새나 토끼를 이고 있는 사람 등)은 차라리 심리적인 문제라기보다 구체적인 현실과, 그 현실에 대한 작가의 입장(희망에 대해 소박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원하는 비현실적인 관념으로서의 희망)이 혼용된 지각도상으로 보여진다. 그의 그림에 있어서 이 불안의 상징은 감성에 의한 그림 분위기에서도 주제의식의 강조에 의한 주지적인 입장에서도 오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불쾌한 현실에서의 사실들을 이흥덕 그림이 다시 들먹이기 때문에 오는 다소 묘하고도 역설적인 확인작업인 것이다. ● 이런 것들을 견인해 가는 이번 전시작품의 형식변화는 이전에 비해 다채롭다. 붓터치의 분방함과 운동감, 화면을 빈틈없이 빼곡이 메운 평면성, 그리고 화이트의 빈번한 사용에 의한 시각적인 혼란에의 유도, 인물들의 디테일한 묘사 없이 간단한 캐리커쳐식의 속도감, 몽타주 형식의 공간구성, 현실 속으로 달려들어 온 동물들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화포의 거친 텍스쳐에 의한 질료감이나 붓질의 변화는 정적이었던 화면의 견고성을 일거에 허물어 드린다. 이흥덕 그림에 있어서 이러한 회화적 맛은 전혀 새로운 것이다. 더구나 여전히 회화의 전래적 장점과 새로운 가능성을 믿는 그에게는 적지 않은 위안이 될 것이다. ●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하나 짚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회화가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과 기능과 효용성과 개념들 속에서 어떻게 근대적인 의미를 지워내고 바로 오늘이라는 복잡다단하고 정보화된 후기산업사회에서 존재할 것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걸맞은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를. 이미 평면이라는 바탕에 그려진 일루젼이 부정(미니멀아트)된지도 한참이나 되었고, 개념적인 미술, 커뮤니케이션론에 기반한 매체미술의 순발력과 문화이론에 비해 어떤 대응점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 이흥덕은 생각과 감각과 신체가 타블로와 안료와 직접 부딪힐 때 생성되는 회화의 민감성과 섬세함에 이 대응의 단서를 두고 있는 듯하다. 즉 그것은 그의 에스키스 할 때의 생각과, 그리는 과정에서의 즉발성과 페인팅의 속도감이 빚어내는 생생함의 프로세스, 그리고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실재세계에 기초한 상상의 즐김이 일상과 미술의 경계에서 게임처럼 진행되는 형식적인 특성인 것이다. 그리고 이 맛을 이흥덕은 적절하게 사실의 체질과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 그러나 근작에서 화면 가득히 온갖 것들을 몽타주 기법으로 결합하는 방식은 오히려 예민한 감각이나 긴장감을 감퇴시키기도 한다. 그의 구작 중 연못에서 수영하는 여자 엉덩이를 쫓는 뱀 「춘몽」에서 관객의 감정까지도 아슬아슬하게 흡입하던 방식이다. 프라스틱 같은 원색으로 온갖 과일들을 생경하게 그린 정물 「생명」에서의 색과 회화방식에 의한 센서티브한 어법과 같은 촌철살인의 형상성이 근작에서는 서술적인 소재들의 결합으로 다소 둔해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인 날카롭고 명료한 상징이 서술적인 화면구성과 어떻게 결합될지 기다려진다. ■ 김진하

Vol.20010212a | 이흥덕展 / LEEHEUNGDUK / 李興德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