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SPACES, 9 PERCEPTIONS

영은미술관 개관展   2000_1104 ▶ 2000_1119

초대일시_2000_1104_토요일_03:00pm

참여작가 김기린_김범_김소라_김형대_박무림_박소영_육근병_이항아_황성준

영은미술관 경기 광주시 쌍령동 8-1번지 Tel. 031_761_0137

9 SPACES, 9 PERCEPTIONS전은 영은미술관(관장 김영순)의 개관전으로 경안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고있는 9명의 작가의 작품으로 기획되었습니다. ● 성별과 세대와 개성을 달리하는 9명의 작가가 각각의 개성과 역량을 펼쳐보이고 있는 이 전시에 대하여 본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 측은 9 SPACES, 9 PERCEPTIONS (九- 空ㆍ感)로 전시명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화단을 주도했던 이른바 모노크롬 계보의 평면회화에서부터, 공간을 가르고 세우는 설치작업과 첨단 영상시설로 상영되는 영상예술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입지에서 출발한 그들의 작품에 일관되게 관통하는 하나의 관건이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지각(知覺,perception)의 세계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 특히 지각(perseption)에 초점을 맞춘 것은 국내의 다른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무려 7M높이의 천장과 그 높이에 걸맞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본 미술관의 건축공간에 9인의 작가의 작품이 각기 조응하며 이루어 내는 공간의 전개와 그 공간을 지나며 오감으로 체험할 관객의 입체적 만남을 전시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 1층 본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이항아의 작은 액자들은 모두가 유기적 생명체의 탄생, 성장, 분화 그리고 소생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영속성을 암시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양파나 피만, 과일, 배추포기 등 일상적 생물체의 형상에 구슬과 같은 이질적인 형상의 오브제를 꼴라쥬하거나 디지털프린트로 합성하여 본래의 구체적 형상을 벗어나 신비한 생명의 상징적 형상으로 바뀌고 입체적인 화면효과를 드러냅니다. 여기에 이미지의 외형을 따라 변형된 액자는 평면회화의 세계를 조각적 오브제로 변환시키면서 단일한 생명세계의 이야기를 압축합니다. ● 그런가 하면 작가의 팔을 벌려 최대크기가 될 규모의 드로잉회화를 제시하고 있는데 외형은 사과의 반을 갈라놓은 듯한 형태이나 가까이 가보면 작은 물방울 형태를 무수히 채워 넣어 마치 세포가 분열되어 증식되는 과정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 같다. 멀리서 볼 때 여성의 신체부위를 연상시키는 에로틱한 곡선의 형태를 띠고 있어 미묘한 에로티시즘에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실제 작품이미지는 식물의 배아나 생명체의 핵이 되는 부분 형태를 드러내면서 신선한 반전을 체험케 합니다. 그러한 반전효과는 호기심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품고 에로물에 접근하는 관객이 실상 그 내용이 건전하여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는 미묘한 심리적 체험을 동반합니다. 그것은 동시에 세속적 욕망에서 신성하고 고귀한 생명체의 신비감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 이항아의 작은 액자들이 낮은데서 높은 부분까지 리드미컬하게 걸려있는 액자를 따라 나오면 황성준의 재재소에서 켠 듯한 나무들이 서있는데, 실제 이 작품은 나무가 아닙니다. 천에 나무의 결을 그대로 찍어낸 이른바 프로타쥬기법의 평면작품이 입체기둥형태로 제작되어 지각의 오류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지각의 오류를 유도하는 이 작가의 또 다른 속임수는 철판으로 굳건하게 박아 넣은 나무기둥의 그림자입니다. 철판의 그림자 형상과 실제 조명에 의한 그림자가 교차하며 물체로서의 그림자부조와 빛의 잔영으로서의 그림자 사이에서 관객은 미묘한 착시를 체험케 됩니다. 가상공간과 실재사이에서 존재의 간극을 극대화하여 흘러가는 시공 속의 존재의 정체성은 어떻게 견지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숲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는 여러 개의 나무기둥 사이를 걸어나오면 이 미술관의 가장 높고 큰 전시공간으로 들어가게 되는 데 이곳에는 70-80년대 한국미술을 주도하고 한국의 모더니즘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확보해준 이른바 모노크롬회화의 세계가 질서 정연하고 화려하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 김기린과 김형대 두 작가의 개별 세계를 동서VS남북의 형태로 분리하여 멀리 떨어져 마주보게 함으로서 마주보는 화면과 화면 사이의 거리 만한 공간이 그림에 연계되어 그 사이에 서있는 관객은 3차원적 평면회화 속에 들어 서 있는 지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청, 백 , 적의 올오버평면회화를 제시하고 있는 김기린의 「안과 밖」이라는 표제가 붙어있는 화면은 프랑스 국기의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적으로 회화화하고, 여기에는 단색평면에 바탕색과 같은 색 물감을 일정한 호흡으로 찍어간 필촉의 자국이 시각적 일루젼을 지우고 촉감적 실재세계를 드러냅니다. ● 한편 김형대의 바탕의 색을 투명하게 투과하면서 파동치는 물결의 음률을 가시화하고 있는 「후광」연작은 한국의 단청이나 한복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순색의 단색회화를 제시합니다. 단색으로 절제되면서 투명한 한복 옷감을 여러 겹 포개놓은 이른바 께끼효과를 자아내는 그의 화면은 서구모더니즘회화의 평면조건을 충실히 실현한 위에 공동체 문화속에 내재된 정서를 환기시켜줍니다. 율동적으로 파동치는 께끼효과는 화면을 여러 가지 색으로 덮어간 뒤 표층이 마르기 전에 빗으로 긁어 가 빗질 사이에서 남겨진물감과 긁혀진 속살 사이에 드러나는 얼비침이 자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각적 일루젼으로서가 아니라 실재의 可觸공간으로 제공되는 것입니다. ● 원색의 촉감적인 모노크롬회화공간을 돌아 나오면 박무림의 門을 통과하게 됩니다. 하나의 공간과 다른 하나의 공간을 가르고 연계시켜주는 門의 존재를 몸으로 지나면서체험하여 상황과의 관계 속에 놓인 인간 존재를 환기시켜줍니다. 그리고 솜으로 만든 문과 빈 문틀만을 세우기도하고 기존의 문틀을 그대로 둔 채 거기에 문제제기를 하듯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문틀을 세워 우리가 늘 그 존재를 잊고 있는 일상사물의 존재에 다시 한 번 눈뜨게 해줍니다. ● 박무림의 문틀이 끝나는 지점에서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열리고 계단의 한쪽 벽에 김범의 화살표 이미지로 연속되는 연작이 붙어 있습니다. 그의 화살표 지시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서면 거기에 여러 개의 상징표지 같은 작품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도식화된 사자형태를 옆으로 세운 이미지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뒤 이라는 제명을 붙이고 있는 그의 작품은 마치 형태심리학자들이 심리와 지각력 테스트에서 사용하는 표본들 같은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작가의 트릭이 교묘하게 가해진 이미지들은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나 편견이 형성하고 있는 상투화된 상상세계를 교란시켜 관객에게 풋풋하게 살아나는 지각의 세계를 제공합니다. ● 그의 화살표지를 따라 안내되는 것은 김소라의 음향효과를 활용하고 있는 비디오 영상세계인데, 사물과 인간 관계사이를 일탈시킴으로서 드러나는 존재의 명징성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의미부여하고 있는 것들이 고정된 고리들을 끊어버린 뒤 사물자체로서의 가벼운 존재로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일에 그녀는 몰두하고 있습니다. 김소라의 바람에 휘날리는 빨래처럼 펄럭이며 꿈틀대는 사물 등의 영상작품을 지나 나오면 벽에서부터 바닥에 넓적한 살아있는 연체동물 같은 녹색의 평면으로 이루어진 유동적 형태의 작품이 깔려 있다. ● 박소영의 작품입니다. 유동적인 포름, 증식되어가는 형태, 폐기물에 핑크빛 조화로 아름답게 장식한 면모에서 이리가라이(Luce Irigaray)가 지적하듯 남성의 감각이 시각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반해 그와 대별되는 유동적이고 촉각적인 여성 특유의 감각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페미니즘미술로서의 해석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바닥을 기고 있는 듯한 유동형의 그녀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손톱 만한 크기의 작은 조화 잎사귀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계속 면적을 넓혀가며 전시공간을 잠식해 갈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요즘의 조각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재료인 폴리코트 빈 깡통에 분홍빛 매화꽃 조화를 폴리코트 물감이 들어있던 안쪽 면에 가득히 붙여 놓아 버려진 폐기물에 새로운 생명을 소생시켜줍니다. 작가는 소비산업사회에서 소모된 뒤에 쉽게 버려지는 또는 우리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죽음에 이른 모든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희망을 품고 작품으로 실현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영매가 되어 그녀의 녹색공간을 벗어나 문 앞에 이르면 인체의 이미지를 왜곡한 인쇄물 같은 김범의 작품과 만나면서 지하 전시공간의 체험은 막을 내립니다. ● 다시 일층으로 올라와 대나무 숲이 내다보이는 로비의 우측을 향해가면 육근병의 영상작품과 만나게 됩니다. 1945년부터 1995년까지 인류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쟁과 학살의 장면을 배경으로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하나의 눈이 오버랩되어 있는 사진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일관되게 지속되는 화면의 주제는 인간 권력과 그에 의한 억압과 희생이 거듭해온 인류생존의 역사와 그 허구성과 인간욕망의 무상함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지에 실렸던 제2차대전시 총에 맞아 죽기 전의 천진스런 미소를 짓고있는 소녀의 사진을 소재로 삼아 극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커튼이 드리워진 홀에 들어서면 전시된 사진의 이미지들이 살아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사람의 박동을 흉내낸 음향과 함께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영상작품은 라는 명제를 표방하고 있는데, 작가가 미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류에게 보내는 진정한 휴머니즘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박동하는 음향효과와 함께 빠르게 지나가는 역사적 장면 위에 오버랩되어 있는 어린이의 한쪽 눈입니다. 시선을 고정시키고 정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어린이의 눈은 관객을 향해 응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류역사의 증인으로 입회하려는 작가자신의 표상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이 시각의 문제인데, 관객과 마주보고 상호교감하도록 설치되는 눈은 영상매체가 지배하는 오늘의 시선과 관계항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요소입니다. 이제까지의 작품이 관객에 의해 일방적으로 관람되는 상태의 것이었다면 그의 작품은 관객을 응시함으로써 관객과의 상응(interaction)관계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음향과 박진감 넘치는 영상체험을 끝으로 9개의 공간체험은 종료됩니다. ■ 영은미술관 학예연구실

Vol.20001101a | 9 SPACES, 9 PERCEPTIONS-영은미술관 개관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