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0_1017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임안나_김수진_한기선_아조_이은종_최은주_김재영_양정아
SK포토갤러리(폐관)
사진에 대한 문화론적 해석으로 언뜻 카메라의 '시선'의 문제를 떠올려 본다. 우리는 카메라를 '눈'으로 일치시키기도 한다. 마치 카메라 자체에 자율적인 시선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주체의 눈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주체의 시선이 미처 의식하지 못한 부분을 카메라 잡아낸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는 주체가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잡아낸다고 해도, 결과는 늘 그 이상의 내용이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이상의 내용이 사진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하다. ● 사진이 회화와 다른 점이 바로 그 예기치 않은 시선을 잡아낸 이미지와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진을 회화보다 훨씬 더 '현실'에 다가가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안토니오니의 영화 '블로우 업'에서 사진가가 의식하지 못했던 현실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는 너무도 잘 알려진 사례다. 하지만 회화는 이와 다르다. 회화는 화가의 구도 아래 이미지가 그려지고, 그런 점에서 이미 계획된 것이다. 회화는 사진처럼 대상의 '선택'을 바탕으로 둔 것이 아니라, 형상을 만드는 여러 전통적인 도식과 기술 및 태도가 축적되어 잇는 창고로부터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선택되어 '찍혀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화가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었던 회화적 결과나 효과가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조형적 차원에서의 문제이지 전적으로 연실 인식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 '만들어져' 나온 것과 '찍혀 나온' 것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진이 보다 현실에 근접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진이 '순간'의 시선이라면 회화는 '축적된 시간'의 시선이다. 순간에 시선이 현실을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잡아둔다면, 축적된 시간의 시선은 현실을 주관적이고 은유적인 대상으로 묘사한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현실을 반추하고, 현실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 내는데 더 효과적인 매체가 된다. ● 무엇을 찍는가, 어떤 순간에 어떻게 찍는가, 왜 찍는가에 모든 문제는 곧 '시선'의 문제다. 그것은 동시에 이미지 재현에 체계와 관련한 문제이며 회화에 재현 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결국 시선은 곧 세계관이며, 현실 인식이며, 가치판단의 문제와 중첩되어 있다. 흔히 이미지에 역사를 '시선'의 역사라 할 경우, 그것은 다름 아닌 누구의 시선이고, 무엇을 목표로 하는 시선인지를 묻고 답하는 과정을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미지의 역사에서 여성의 문제를 거론하면, 제일 먼저 바로 그 '시선'의 문제가 지적된다. 미술사의 이미지는 실제로 권력의 시선으로 일관해 왔고, 특히 여성의 묘사에서 드러나는 '남성적' 시간의 우위는 이미 재현과 그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결과를 결과한 요인으로 간주된다. 결국 여성적 시각의 적용이란 바로 그런 남성적 시선의 탈피를 말함이고, 그 재현의 역사와 의미체계를 해체하는 데서 주어지는 것이다. ● 여성의, 여성적 시선의 회복은 굳이 페미니즘의 명분을 앞세우지 않더라도 여성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되묻고,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어가려는 노려해서 비롯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은 여성작가들에게서 엿보이는 이런 노력들은 사실 특정한 예술양식이나 사조를 만들어내는 일과는 크게 연관되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기존의 예술 개념과 주류 예술 양식 및 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의 패권주의적 측면을 공략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 ● 그렇다면 여성적 시선이란 무엇일까. 제일 먼저 여성적 시선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의 논리를 의식적으로 추적해 가는 해석, 즉 사진의 현실적 의미와 맥락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여성의 삶을 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며, 해석해 가는 '관점'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이번 '여성, 그 아름다운 Fiction'이라는 작은 저항의 이름으로 모인 여덟 명의 여성 사진작가들은 이미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모아내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각각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어떤 일관된 주제나 통일된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삶 - 개인사에서부터 사회적 관계에 이르는 -을 성찰하고, 자신의 여성됨을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자 그 궤적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 여성이란 명제는 이미 하나의 텍스트로 존재한다. 여성이란 이름은 곧 삶의 구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의 삶을 실화 '논픽션'이 아닌 '픽션'이란 이름지었다. 픽션은 실화가 아닌 허구일 수도 있고, 또 하나의 장대한 소설일 수도 있다. 오늘의 여성의 삶이 이미 이야기 구조에 들어가 있다는 의미에서라면 그것은 '픽션'이다. 또 여성의 삶이 허위의식의 산물이라면 그 현실은 허구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 구조를 어떻게 현실적 맥락으로 드러내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문제는 여성의 시선이 실천해내는 '뒤집기'의 방식이 된다. 그런데 진정한 자기를 찾는 일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일에서 비롯하는 법이다. 여기 모인 여덟 명의 여성이 보인 시선의 의미가 바로 그 지점에서 발화될 것이다. ■ 박신의
Vol.20001019a | 여성, 그 아름다운 Fiction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