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가 본 동방(東方)의 빛

Georges Rousse_Bernard Faucon展   2000_1006 ▶ 2000_1112

죠르쥬 후스_황학동 현장작업2._2000년 3월

책임기획_공근혜   "버려진 공간"_건축가 최승원_2000_1014_토요일_03:00pm "사진의 미학"_평론가 이영준_2000_1021_토요일_03:00pm

성곡미술관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02_737_7650

"민족 분단 반세기"라는 아픈 과거를 껴안았던 우리 민족은 세기의 전환기를 맞이하며 한반도 통일을 예시하는 극적인 사건들로 들떠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러한 흥분들을 가라앉히고,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과제가 남겨져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 발전에만 몰입했던 전후 반세기 동안 송두리째 망각해 버린 우리 전통 문화의 빛을 되찾는 일이다. 분단이 타 세력에 의해 빚어진 아픔이었다면, 지금의 이 삭막한 도시환경은 분단 이후 우리 스스로가 빚어낸, 물질만능에 물든 우리의 정신적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결과물이다. 전쟁이후 경제개발 우선 정책으로 일어난 건설 붐과 저속한 상업자본주의가 맞물려 이룩된 우리의 도시 건축환경은,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 걸쳐 비리와 부패로 물들었던 20세 기 후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이제 곧 다가올 통일된 한반도를 맞이할 이 땅의 주인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지키고 보존 시켜 나아가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자는 의도에서 기획한 것이다. ● 전시제목 "동방의 빛"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동방을 한자어로 풀어보면 하나는 동쪽 방향 東方, 즉 서양의 시각으로 바라본 아시아를 뜻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두 작가는 세계적으로 이미 그 예술성을 인정받은 프랑스 사진 작가다. 동양 철학과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이들은 그 동안 자신들의 작품 속에 동양의 정신 세계를 자주 반영시켜 왔다. 특히 이번 전시는 외부인의 시각에 비춰진 우리의 도시건축물에서 받은 첫 느낌을 작업에 담아내게 함으로써, 관객이 되어 바라보는 우리의 생활 환경을 객관적 시각으로 관찰할 수 있게 의도한 것이다. ● 전시 구성은 우선 "동방의 빛"을 담아낸 작품들을 본관의 메인 룸인 제2전시장에 전시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미술관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상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제1전시장을 포꽁의 방으로, 제3전시장을 후스의 방으로 구성해 보았다. ● 죠르쥬 후스 Georges Rousse는 곧 철거되어 사라질 건물의 내부를 활용하여 회화와 설치로 공간을 재구성하고 이를 사진기의 소실 점 원리를 이용하여 인화지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후스는 지난 3월, 1차 서울 방문 기간동안, 특별히 이번 전시를 위해 황학동 재개발 지역의 버려진 한 가옥을 설정하여 "서울, 2000"I, II를 제작했다. 황학동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우리 건축사를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역사적 현장이다. 일제 시대를 거치며 생겨난 벼룩시장들, 60년대 경제개발의 붐을 타고 변두리로 쫓겨난 서민들의 콘크리트 슬래브집들, 70년대 이후 건설 붐을 타고 지어진 다세대 아파트, 90년대 상업화의 세태를 반영하는 고층 빌딩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이제 또다시 재개발의 논리로 하루아침에 사라질 철거현장 등... ... ● 후스가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들에는 원이라는 기하학적 형태를 이용한 것들이 많이 눈에 띤다. 그에게 있어 원은 다분히 동양적 사상을 내포한 상징 태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마치 동양의 음양이론이 이루어 내는 합을 추구하기라도 한 듯, 사라져 가는 황학동의 역사적 숨결을 소생시키는 활활 타는 생명의 빛을 발하는 원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원 작업에 입혀진 두 가지 색깔은 그의 이번 작업의도를 더욱 부가 시켜주고 있다. ● 흰색의 원(서울,2000, I)은 복잡한 역사적 환경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지역을 한민족을 상징하는 흰색으로 완화 시켜, 어수선했던 지난 세기를 깨끗이 지우고 조용한 휴식의 시간을 부여하여 곧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다음단계를 위한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는 명상의 세계로 이끌고자 함이다. ● 흰색에 뒤이어 작업된 붉은 색(서울,2000. II)은 후스가 자주 즐겨 사용해온 색이다. 그에게 있어 붉은 색은 한마디로 빛의 상징물이다. 어두운 세상을 밝혀준 태초의 빛, 모든 생명체에 활기 있는 에너지를 불어넣는 빛을 상징하는 것이다. 황학동의 황폐한 주변 환경들로 이리저리 흩어지는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 원은 곧 사라질 이 장소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머리 속에 각인 시킬 만큼 강렬하다. 그래서 마치 "정신차려"라는 경고의 언구를 퍼붓고 있는 듯... ... ● 후스는 이번 전시에서 작품제작 과정을 완전히 공개하는 의도로 미술관 전시장 내부를 이용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성곡미술관, 2000"). 황학동의 옛 지도를 전시장 내부의 기둥들을 이용하여 직사각형 형태로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외부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여 입체를 다시 평면화 시키는 시각 효과로, 극적인 감동을 생생히 자아내는 기발함이 돋보인다. 이 밖에도 94년부터 99년까지 세계 각 도시들의 역사적 의미가 담긴 건물 내부에 다양한 형태로 제작한 작품들을 15점 선보인다. ● 베르나르 포꽁 Bernard Faucon은 70년대 말부터 "미쟝센느 Mise en Scene" 라는 새로운 방식의 사진 작업을 시도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그의 작품은 폐허와 부재를 의미하는 공간 속에 강렬한 인간의 삶과 존재를 환기시키고 있는 "사랑의 방"시리즈(사랑의 방, 금의 방, 겨울의 방) 30점을 소개한다. ● 동양 사상에 관심이 많은 포꽁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느꼈던 성스럽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금빛으로 표현하여 그의 사진 작품에 담아내었다. 그리고 부재의 공간을 표현해 오던 "사랑의 방"들은 이때부터 모든 생존의 흔적들을 완결한 무의 세계로 이끌어 "빛"만을 작품에 담아내는 "금의 방"시리즈로 이어진다: 그의 작품들이 발하고 있는 이 찬란한 빛들 은 퇴색한 우리의 환경을 돌아보며 전통의 얼이 담겨있던 살아있는 빛을 다시 동경하게 하 는 묘한 감정을 유발시킨다. ● 특별히 이번 서울전을 위해 포꽁은 실재 크기의 "사랑의 방" 하나를 비디오 프로젝션을 이용하여 재현한다. 그리고 사랑의 방을 장식하고 있던 몇 개의 오브제들을 함께 전시하여 이미 사라진 그 공간에 대한 여운의 감동을 자아낸다. ● 97년부터 포꽁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해 왔다. 세계 각 도시들을 돌며 젊은 청소년들에게 일회용 사진기를 나누어주고 한 장소를 정해 마음껏 사진을 찍게 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모인 이 사진들을 "내 젊은 날의 가장 아름다운 날" 이라는 제목으로 9월부터 파리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그리고 그 일부를 이번 서울전에서 특별히 선보인다. ● 60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 서울. 그러나 지금, 이 도시는 전통문화와 역사를 읽게 하는 그 어떤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그야말로 "혼이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사대문 안의 옛 서울의 발자취를 그나마 간직하고 있던, 사직동, 가외동, 내수동 등의 전통 한옥지대들 마저 이제 곧 개발 논리에 휩쓸려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선 정체 불명의 도심지로 변모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우리의 문화 환경을 무참히 내팽개쳐온 지난 세기를 반성해 봐야한다. 그래서 아직 남아있는 우리의 것을 보존하려는 문화시민 의식을 되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 본인이 기획한 전시의 이러한 의도가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주거환경에 대한 미적 자각뿐 만 아닌, 그 동안 길들여진 성장 제일주의의 잘못된 우리의 습성을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하루 빨리 오랜 동안 잃어버린 우리의 동방의 빛을 다시 찾아, 이 지구촌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는 세기를 펼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 공근혜

Vol.20001014a | 프랑스 작가가 본 동방(東方)의 빛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