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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82.(0)2.733.9512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 기다림의 장소로 마련되었던 이김천의 꽃밭이 다시 무성한 꽃들과 커다란 하늘로 가득하다. 꽃잎 하나 하나에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리움이 담겨졌고 별이 가득한 하늘에는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기록되었다. ● 꽃이라는 식물이 지니는 상징은 참으로 대단하다. 거대하게 벌려진 생식기의 모습으로부터 너무나도 부끄러워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는 애틋한 마음까지... 이김천의 꽃들도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마치 식물도감을 펼쳐놓은 것처럼 수천여종의 꽃들이 이김천의 화폭에 들어와 있다. 물론 이 꽃들은 식물도감을 보고 그린 것이거나 들에 나가 직접 보고 그린 것들이 아니다. 화폭에 그려진 꽃들은 이김천의 삶속에 응어리진 회한과 그리움이 교차며 만들어낸 설레임의 표현인 까닭이다. 그래서 이김천의 꽃들은 햇볕이 없고 메마른 땅에서도 그 화려함을 잃지 않는다. 과거나 현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 하늘 또한 이김천의 생각들로 채워졌다. 무심히 반복되는 문양으로 그려진 하늘은 동양의 신비로운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컴퓨터그래픽으로 치밀하게 짜여진 알록달록한 벽지 같기도 하다. 화가들에게 있어서 무한을 의미하는 하늘을 채운다는 것은 매우 힘겨운 작업중의 하나이다. 더구나 기다림의 장소에 피어있는 설레임의 꽃의 배경으로 제시되어야하는 하늘은 정말 막막한 공간이다. 이김천의 하늘은 시간을 의미한다. 이김천이 그려낸 하늘이 마치 고대의 달력을 연상시키는 까닭도 무수한 시간들을 머금고 있는 까닭이다. ● 가끔 그 하늘에서 비가 내려온다. 상념의 공간에 내리는 비는 애틋하기 그지없다. 눈물도 분노도 아닌 빗줄기들이 화폭을 가리운다. 시원한 빗줄기가 고달펐던 지난날을 다 지워줄 것 같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추억들을 돌이키게 만든다. 시간을 머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가느다란 빗줄기들은 지난날의 기억들을 잔인하게 재생시킨다. 아주 사소한 시간들까지도...
수묵/채색화라는 전통회화가 갖는 담백한 매력은 굳이 동양인이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다. 이김천은 수묵/채색화가다. 그렇다고 과거 수묵/채색화의 전통을 고스란히 지키고자 하는 고리타분한 전통화가는 결코 아니다. 개화기서부터 워낙 많은 변화를 겪어왔던 남한사회이기에 수묵화 또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리고 요즘은 오히려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이 더 신선해 보일 정도로 과거의 전통은 심하게 훼손되어버리고 말았다. 전통의 입장에서 보자면 과거를 지키는 일은 무척 중요할 것이다. 워낙 빠른 격변기를 달려온 남한사회에 있어 보존할 과거가 남아 있는지가 의문이지만... 자우튼 지킬 것이 있다면 좀더 철저히 지키고 폐기할 것이라면 과감히 폐기하여야 수묵화는 회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김천의 수묵/채색화가 더 각별해진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을 머금은 이김천의 수묵/채색화는 과거 수묵/채색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어리고, 미래의 수묵/채색이라 일컫기에는 너무 늙었다. 사실 그 어정쩡함에 고민해야 하는 사람은 이김천 뿐만이 아니다. 바로 2000년 여름과 가을을 남한에서 살면서 이김천의 화폭을 대하는 모든이들이 이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직 그 전통이라는 것들이 어떠한 모양새로건 남아 있다면 그것을 결과한 장본인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 최금수
Vol.20001006a | 이김천展 / LEEGIMCHEON / 李金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