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의 종묘 시민공원 무산과 관련한 경과보고 및 비상대책위 공동성명서로 '이미지 속닥속닥'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의 종묘 시민공원 무산과 관련된 '이미지 속닥속닥' 독자의 견해들은 네오룩쩜엔이티 neolook. issue 게시판에 있습니다. 그동안 50여 독자분들이 진지한 견해를 올려 주셨습니다. 참여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계속해서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email protected]

종묘시민공원 미술전 폭력저지사태 관련

표현의 자유를 위한 기자간담회

일시_2000_1004_수요일_02:00pm

주최_종묘시민공원 미술전 폭력저지사태 관련 표현의 자유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독립예술제사무국_또하나의문화_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_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연합_여성만화협의회_여성문화예술기획_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여성미디어네트워크_여성민우회_여성신문사_여성영화인모임_영화인회의 전국민족미술인연합_참여연대_페미니스트저널 'if'_한국여성의전화연합 종묘시민공원 미술전 폭력저지사태 관련 비상대책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고갑희_여성문화이론연구소 소장 김인순_화가 김정헌_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박옥희_페미니스트 저널 if 발행인 박영숙_사진작가 원동석_전국민족미술인연합 대표 윤석남_화가 이혜경_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 지은희_여성단체연합 대표 최영애_성폭력상담소 소장

장소_철학카페 느티나무

종묘시민공원 미술전 폭력저지사태 경과보고

9월 27일 모 언론 기관에 보도된 기사를 보고 '종묘점거'라는 제목에 발끈한 전주 이씨 종친회측은 "행사 장소를 바꾸어라, 그렇지 않을 시는 어떠한 무력행사로도 이 축제를 저지하겠다"는 일방적 통고만을 해왔다.

9월 28일 이미 6개월전 행사기획 단계에서부터 종묘시민공원을 선정해 현장 구성도와 설치작품 등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우리로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 종로경찰서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고 계획대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9월 29일 우리는 아침 7시부터 모여 행사 준비를 위해 작품들을 설치했고 종친회는 9시부터 우리의 설치물들을 뜯어내며 행사를 중지하라고 압력을 가해왔다. 땅따먹기 놀이를 위해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마르고 나면 떼어 낼 수 것) 장소에 와서 물감통을 발로 차며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풍선길을 만들고 있는 장소에 와서는 색실을 끊어내고, 여성의 신체를 쿠션으로 제작한 작품들 중 일부를 들고 가서 성적인 폭언 ("가랭이 찢어죽일 것들", "네년들 거 보여주지", "국회 앞에서나 가랭이 벌려봐", "588에서 온 년들이지", "이 작품 보니 남자놈들 거 많이 들락거렸겠군", "네년들이 벗어봐" ...)을 하며 작가들을 모욕하였다. 우리는 작품과 짐을 들고 종묘시민공원 여기저기를 피해 다녔고, 이씨 종친회와 유림들은 우리가 가는 곳을 따라다니며 작품들을 뜯어내고 모아놓은 작품들까지 들춰내며, 근엄한 종묘를 더러운 자궁으로 모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종묘공원을 치마형태의 깃발로 장식한 상징물들이 찢어지고, 몇 개의 작품은 그들에게 탈취당했다. 일단 작품을 한군데 모아놓고 지키면서 대책을 논의했으니 이미 많은 작품이 훼손되고 지속되는 무력 행사와 확성기를 이용한 그들의 잇단 성명서발표로 인해 오후3시 우리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 정정엽_우신희_하인선_제미란_곽은숙_류준화_윤희수_김명진

종묘 시민공원 미술전 무산사태에 대한 비상대책위 공동성명서 성차별주의에 근거하여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파괴하는 폭력행위를 규탄한다 !!

1.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는 우선 시민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사용하는 공공영역인 종묘 시민공원을 종묘와 혼동하여 작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유린한 사단법인 전주 리씨 대동종약원과 종묘제례보존회, 그리고 정통가족제도 수호 범국민연합의 폭력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종묘시민공원은 적법한 절차와 규칙에 따라서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이며 이러한 공공영역에서 예술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법치국가 내에서는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공공영역인 종묘시민공원이 마치 자신들의 사유지인 종묘의 연장인 양 시민이 자신의 영역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표현할 자유를 억압하고자 했다. 시민공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구청에 신고를 하는 정도의 적법절차로 충분하며 이는 무엇보다도 공원의 주인인 시민이 합리적 절차를 통해 자유롭게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들은 종로구청에 공원의 사용일자와 작품의 설치방법을 미리 예고하고 작업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위의 3개 단체는 이러한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공원에 설치된 작가들의 작품을 훼손하거나 설치를 방해하고, 전원이 여성인 작가들에게 성폭력적 언사를 퍼부었을 뿐 아니라 철거를 강제했다. 구청당국에서도 주변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설치를 허가했던 애초의 입장을 번복하여 사건 당일 이들의 요구에 따라 나무에 걸어놓은 작품들을 새삼스럽게 환경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철거를 돕거나 방관했다.

2. 게다가 이들의 성폭력적 언사의 근거와 동기가 놀랄 만한 문화적 무지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개탄할 일이다. 물론 예술작품을 상상력의 산물인 허구적 표현물로 읽지 못하고 이를 현실과 혼동하며 착각할 자유와 이런 착각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할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단편들을 사용하되 이를 현실의 삶에서와는 다른 시각과 방식으로 구성하는 미적 표현물인 미술의 문화적 차원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예컨대 패러디와 이미지 합성을 통한 허구적 표현물로서의 사진작품을 현실과 혼동함으로써,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거나 기념동상을 점거했다고 분노하는 것은 미술작품의 또 다른 문화적 차원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이다. 이것이야말로 문화유산으로서의 종묘의 가치를 부르짖는 이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자가당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번에 이씨 종친회와 종묘제례보존회, 정통가족제도 수호 범국민연합 뿐 아니라 현실의 특정 경험과 규범을 기준으로 허구적 표현물인 미술작품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려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 그 동안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 정권의 오랜 통제하에서 만연된 검열 풍토로 인하여 표현의 자유와 예술창작의 자유가 억압받는 것을 당연시해 온 면이 있고, 그로 인하여 미술은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다룰 자유를 상실함으로써 문화적 빈곤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한국미술은 대상의 이면에 숨어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포착하면서 현실에서 부족한 삶의 풍부한 가능성들을 표현함으로써 미술과 현실, 미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왔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예술적 시각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경우 미술가들과 관람자들이 소통하는 문화적 장이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다채로운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특수성을 보장하는 것이 문화적 풍요의 열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동시대 우리의 현실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 때, 그 순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풍요가 하루아침에 언제든지 문화적 야만으로 퇴행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 동안 수많은 미술작업들이 현실의 특정한 정치적, 윤리적, 종교적 기준 등을 이유로 침해당해 왔으나, 이제 21세기 문화의 세기를 맞아 차이와 다양성에 기반을 둔 문화적 자원의 계발, 육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더 이상의 전근대적인 문화억압의 관행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3. 무엇보다 우리는 이번 사태가 특정 이해집단이 특정 미술가들에게 행한 폭력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주의적 문화에 기초한 여성일반에 대한 남성우월적 편견과 독단의 결과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주시하고자 한다. 사실상 이번 사태의 본질은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에 대한 상기집단의 침해가 이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상에 대한 남성우월적, 성차별주의적 편견으로부터 직접적 동기를 부여받았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여성의 신체를 제작한 작품들 중 일부를 들고 가서 성적인 폭언을 하며 작가들을 모욕하고, 근엄한 종묘를 더러운 자궁으로 모독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이러한 언어적 폭력은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휴대폰을 통해서도 자행되어 전원이 여성인 이들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심리적 불안을 안겨주었다. ● 종묘의 신성함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한국의 문화재이자 세계의 문화유산, 그리고 외국인들 관광의 시발점이 되는 종묘가 여성의 몸, 특히 그 치부(자궁을 가리킨다)를 드러냄으로써 정신적 문화가치를 훼손하고 우리의 문화를 우리가 파괴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성한 종묘와 더러운 자궁, 즉 이씨 성을 가진 종친회가 대변하듯 남성의 혈통이 가지는 신성함과 더러운 여성의 몸의 차별적 대비와 위계를 극복하고 남성을 생산하는 기원인 여성의 몸을 그 위계의 공간에 미적 상징물로 배치함으로써 전통과 여성,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바로 이번 전시의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행태는 일시적으로 설치되는 미적 구성물이 여성의 신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자랑하듯 장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공간을 더럽힐 것이라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하는 남성우월주의의 불안과 왕조중심주의에 기반을 둔 남성지배적 전통을 영속하려는 전근대적 아집의 자가당착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일개 미술품에 대한 폭력행위에 그치는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전근대적인 문화적 무지에 기초한 성차별적 폭력사태로서 민주주의 질서와 창작, 표현의 자유를 그 근본으로부터 위협함과 아울러 우리 미술의 풍요한 미래를 짓밟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문화예술계와 여성계에 종사하는 제단체의 명의로 이번 사태를 자행한 '전주리씨 대동종약원', '종묘제례보존회', '정통가족제도 수호 범국민연합'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만약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검찰고발을 불사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

1) 이번 사태에 참여한 '전주리씨 대동종약원', '종묘제례보존회', '정통가족제도 수호 범국민연합'은 자신들의 행위의 불법성과 폭력성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작가그룹과 전시관련자들에게 공개 사과하라.

2) 우리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표현물인 미술작품을 현실과 혼동함으로써 문화적 빈곤을 강제하는 전근대적 상태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예술 작업을 현실의 잣대로 무차별 재단하려는 모든 이들과 언제 어디서든 공개적 토론과 대화를 전개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통하여 성숙한 시민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 예의 주시할 것이며 즉각 위와 같은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문화예술계, 여성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연대하여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행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2000년 10월 4일 종묘시민공원 미술전 폭력저지사태 관련 표현의 자유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Vol.20001005a | 종묘 시민공원 미술행사 무산과 관련한 경과보고 및 비상대책위 공동성명서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