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상은 1974년에 태어나 '호부호형', '시각문화-세기의 전환', '진공포장', '교란', '시대의 표현-눈과 손'전 등에 출품했다. 사진과 조소 사이에서 만들어진 그의 입체작품들은 인간사회 속에 존재하는 억압 또는 강제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담고 있다.
'이미지image'라는 것이 '매직magic'과 유사한 철자로 이루어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록 속임수라 하더라도 지금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갑자기 나타나게 한다거나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 그리고 상상과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이미지 생산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이를 '사기'라 부를 지라도…. ● 형식으로만 보자면 권오상은 사진과 조소 사이에서 작업을 한다. 일단 사진이 갖고 있는 현실 흡입력을 바탕으로 대상의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카메라로 포착한 후 이를 인화하여 이미지 한 조각 한 조각을 다시 입체로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굳이 말을 붙이자면 '사진을 재료로 하는 조각'이라고나 할까. 자우튼 권오상이 보여주는 것은 양mass을 다루는 고전적인 조소와 대상을 기록memory해내는 사진을 서로 섞어 놓은 것이다. ● 조소는 시각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장르 중의 하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주술을 걸려는 무속의 목적이나 무덤의 부장품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다른 장르에 비하여 보존상태가 오래가는 재료들로 만들졌던 까닭이다. 어찌되었건 눈으로 보여지고 손으로 만져지는 양감에 의한 마술의 힘은 단순히 평면에 끄적대는 것보다 훨씬 더 실감났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 조소에 비하면 사진의 역사는 매우 짧다. 사진의 역사는 아무리 길게 잡아야 고작 150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은 현대사회의 기술발전과 함께 한 매체이기 때문에 짧은 기간이지만 무척 빠르고 광범위하게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신기할 정도로 강력한 재현능력 앞에서 아무리 손재주가 좋다는 화가나 어떤 사건을 적나라하게 써 내려간 몇 장의 문서도 모두들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진이 갖는 마술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1990년대 컴퓨터그래픽이 생활에 들어오기 전까지 심지어 조작된 사진이라 하더라도 애써 그 내용을 믿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조소와 사진. 이 두 장르가 갖고 있는 한계와 장점들을 활용한 권오상의 작품들은 무척 쌘 마술을 구사한다. 우선 권오상의 작품에서 눈으로 읽혀지는 마술은 '인간'이다. 생명체로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사진과 조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돌연변이로 때로는 기형으로 인간의 표준을 벗어난 형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변형에는 시간과 함께 묘한 감정들이 섞여져 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시대감성에 기반한 심리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하는 까닭이다. 결국 권오상에게 있어서 인간은 하나의 정지된 대상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포함할 경우 그 내용을 집어넣을 수 있는 비정형의 틀로도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 두 번째 권오상의 마술은 '불안'이다. 이는 당연히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결과한 것으로 어떤 익숙했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생기는 묘한 긴장을 의미한다. 누가 그랬던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면 아무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일그러진 인간 형상을 결과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 또는 현실에 대한 불안은 점점 더 나약한 인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한한 생명을 지니지 않았기에 죽음 또는 여러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권오상에 의해 연출되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권오상의 작품에서 종교의 냄새가 풍기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 권오상의 세 번째 마술은 가장 강력한 것으로 '현실의 배반'이다. 다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아름답게만 이야기하거나 '이 판이 워낙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고 스스로 포기할 때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작품에 쓰여지고 있다. 상상과 현실의 교란. 그리고 그로부터 얻어내는 새로운 힘들이 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만든다. 현실을 배반할 수 있는 상상의 힘은 사진과 조각으로부터 더 큰힘을 얻어 하나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해 가고 있는 것이다. ● '권위' 또는 '강요' '숭배' 등이 권오상의 작품제목에 쓰여지는 키워드들이다. 이 키워드들을 잘 분석해 보면 대항할 수 있는 것 또는 대항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에 대한 '진술서'가 권오상에 의해 작성된다. 때로는 300장으로 때로는 540장으로. 매수야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한장 한장에 써 내려간 진술들은 서로 붙여지면서 미이라처럼 하나의 커다란 테두리를 만든다. 그 갑갑한 테두리에 머물러 있는 진술이 있는가 하면 그 테두리를 삐집고 나와 그 주변 공간에 맴도는 이미지들도 있다. 아마도 갇혀있는 진술들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맴도는 이미지들이 권오상의 작품을 공간에 일으켜 세우는 것 같다. ■ 최금수
Vol.20000910a | 이미지올로기_01_권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