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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2000_0829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용석_권순환_김석환_김수범_김영길_김영호_박동주_박민석 박상화_박이창식_윤진숙_이문형_정주하_차경섭_허강_황경희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1~8
흔들리는 땅을 유랑하는 확장된 신체들과의 대화 ●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 역사는 북방 유목민이 남하하여 한반도에 정착한 이후 남방계 이주민 또는 외래 민족과의 반복되는 갈등과 화합의 과정 속에서 전형적인 농경민으로 길들여져 간 정착의 역사에 다름 아닐 것이다. 호전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을 지닌 서구인들의 근간이 유목문화에서 비롯되었고 평화지향적, 안정지향적인 기질을 지닌 우리 민족의 근간이 농경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저간의 학설대로 우리는 근 오천년 동안 정착적 농경문화를 발달시켜왔다. 외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인들이지만 초현대식 아파트에까지 온돌식 보일러를 설치하고 일본의 기무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율배반적 행동을 보이는 현상도, 온돌과 김치가 결코 떠나지 못할 정착문화의 대표적 유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런데 이처럼 김치와 온돌로 대변되는 우리의 질긴 정착문화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거센 도전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다. 전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거대한 정보통신망과 난마처럼 얽혀가는 항공로, 세계경제 시스템의 구축 등이 우리를 더 이상 안정된 정착민 사고방식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옥죄어오고 있는 것이다. 수십년 전부터 시작된 대규모 이민의 행진에 뒤이어 최근 확산되고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한 군데 정착하여 안정되게 뿌리내리고자 하는 우리의 원초적 욕구를 그 근본으로부터 말살시키려 한다. 또 생활 깊숙이 침투해오고있는 전자 네트워킹 시스템은 지구상 인간들간의 지리적, 문화적 거리를 순식간에 무화(無化)시키는 대신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존 공동체의 역할과 끈을 한층 더 느슨하게 풀어주고 있다. 실제로 일정한 거주지 없이 직업이나 프로젝트에 따라 거처를 옮겨 다니는 현대판 유목민이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미래학자이자 저술가인 자크 아탈리(Jacque Attali)에 의하면 지난 30년간 인류의 5퍼센트가 유목화했으며 30년 후에는 10퍼센트가 유목화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세계적 유목화 현상과 흐름 속에서 시각예 술 생산자들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자유로운 사고와 삶이 창조적 작품의 필수조건이 되는 현대미술 본연의 속성상 그들이야말로 21세기 노매드의 참된 전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주:여기서 '노매드_Nomad'인간형이란 그 사전적 의미인 '유목민'의 뜻을 넘어, 21세기 인간의 새로운 전형으로 통용되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고방식, 네트워크의 활용, 주도면밀함, 경계심, 정보의 공동체사회를 형성하는 우애 등의 특성을 지닌 인간형으로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21세기 현대사회의 변화와 관련하여 또 한가지 주목할 개념으로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주도할 신엘리트 층을 일컫는 '디제라티'를 들 수 있다. 이는 디지털(digital)과 지식계급을 뜻하는 '리테라티'(literati)의 합성어로 새 밀레니엄 시대를 이끌어갈 미래 사회의 주역을 일컫는 말인데, 미국의 과학기술 평론가인 존 브록만은 최근 펴낸 책 '디지털 시대의 파워 엘리트'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아메리카온라인을 설립한 스티브 케이스, 루 터커 자바소프트 사장등 33명을 디제라티 제1세대로 소개한 바 있다. 사실 디지털 혁명시대에 예술가들이 후발 디제라티리로 성장하게 될지, 아니면 디제라티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남게될지를 예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정보통신혁명에 따른 새로운 지형변화에 적응하거나 반응하는 것을 자기작업의 기초로 삼고있지만, 그 이상의 작가들이 손과 고전적인 기계와 아날로그 영상을 수호하는 작업을 고집스럽게 개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리 없는 격돌은 단순한 신구(新舊) 대립의 차원을 넘어, 예술의 개념과 속성에 대한 재정의, 더 나아가 예술의 역할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시사점을 제시해준다. ● 한편, 회화와 조각과 같은 전통적 매체에 비해 사진적 프로세스를 응용한 다양한 현대의 영상매체들은 예술가의 확장된 신체인 뷰파인더와 여러 기자재들을 통해 표현과 소통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시켜왔다. 최근에는 포착된 일차적 이미지의 단순한 재현과 복제를 넘어 이를 변형, 교배, 합성하는 디지털적 프로세스로의 전환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동하는 몸이 재현해내는 땅-물질세계-의 고정된 이미지가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흔들이고 있음을 방증하는 하나의 사례라 할 것이다. 이번 전시회가 사진적 프로세스를 어떤 형태로든 활용하는 작업들로만 구성된 것도 땅 위를 부유하는 신체들과 그들의 주관적 시선에 의해 흔들리고 변형되는 대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사진적 감수성과 사고가 더없이 적합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 사실 '중심의이동전'은 각 지역작가들의 자생적 정체성을 찾고 이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우며 숨어있는 우수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몇 번의 전시회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같이 비좁고 급격히 평준화된 문화적 지형을 갖추고있는 나라에서의 지역미술 개념에는 상당한 수준의 혼란이 존재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지역에 실제로 거주하는 작가들과 지역 출신이지만 타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간의 정체성 대립이 일차적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고 외국에서 유학한 후 충청도에서 직장을 얻었다면, 이 작가는 수도권 작가인가? 아니면 충청도 작가인가? 또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후 강원도에서 직장을 얻었지만, 부인의 직업 때문에 현재는 서울과 강원도를 매주 왕복해야 하는 작가의 경우, 그는 강원도 작가인가? 제주도 작가인가? 아니면 서울 작가인가? 이들의 작업에서 지역적 정체성이란 과연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가? 사실 이들에게 있어 '집'이나 '땅'의 의미는 이미 농경시대의 그것들이 갖던 절대적 권위를 상실한 지 오래일 것이다. 이처럼 전시기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이 그 지역의 정체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고와 기질을 소유하고있을 뿐 아니라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상존하고있는 현실을 보게 되었고, 이러한 목격은 새로운 전시개념의 틀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게되었다.
그리하여 전시회의 중심은 '지역에 뿌리박힌 작가'가 아닌 '흔들리는 땅' 위를 걷는 '이동하는 몸'으로서의 예술가에게로 자연스레 옮겨졌다. 작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지역적 안배는 고려하지 않았으며 서울에서의 활발한 전시경력을 배제하지도 않았다. 각 지역대표로서의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지역과 유리된 개인으로서의 작가를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선정된 작가들의 작업들로부터 지역의 스테레오타입 색깔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게 되었다. 지역을 떠나본 적이 없는 작가이건 외지로부터 흘러들어온 작가이건 그들의 작업은 모두 정신적 유랑자로서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전시회는 지역적 정체성이라는 화두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하고, 작가들의 실제적인 공간이동 궤적과 유목적 사고를 반영하고 기록하는 다양한 영상언어를 제시함으로써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탈중심적 예술행위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생시키려는 지향점을 지니게 되었다. 정통 은염사진을 포함한 영상작업, 디지털작업 등의 매체적 속성은 오늘날 약화된 땅의 구속력을 상징하기에 매우 적합할 뿐 아니라, 아날로그 과정과 디지털 과정이 만나는 현대의 지형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이 교차의 지점들로부터 다양한 독해와 질문이 발생하고, 각 작가들이 보여주는 역사와 일상, 자연과 문명, 희망과 불안, 명료함과 모호함, 진실과 거짓,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권력, 욕망, 본질, 성 등에 관한 여러 관점과 해석들이 중첩되어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그렇게 되면 이 작은 그물망들 사이로, 이동하는 신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정성과 고향의 상실을 초래한 21세기 초기유목사회의 편린이 전시 전체를 가로지르며 나타나게 될 것이다. ■ 김혜경
Vol.20000824a | 이동하는 몸, 흔들리는 땅-2000 한국현대미술중심의 이동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