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읊조림과 따스함의 이미지로 변주되는 생명의 울림   이준영展 / painting   2000_0211 ▶ 2000_0220

이준영_三-치유_종이에 목탄_100×64cm_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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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번지 Tel. 02_720_1524

우리에게 추상미술은 형식적이고 절제된, 차가운 금속성의 이미지로 연상된다. 물질적이며 무기체적인 추상의 이미지 말이다. 그러나 이준영의 추상그림은 따스한 물처럼 편안하다. 그것은 그의 그림이 생명의 이미지를 시각화하고 표현한 유기적 추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그의 그림이 지닌 미덕이 있다. ● 이준영의 그림은 '따스함을 지닌 추상화'이다. 그의 그림에는 아메바 같기도 하고 신체의 일부분인 것 같기도 한 유기체들이 꿈틀거린다. 이 형상들, 현미경을 통해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미생물적인 형태에서 발견되는 추상적 기호들은, 작가 자신의 주관적 감수성과 융합되어 태고의 흔적처럼 아름답게 남는다. 그는 이런 유기체적인 형상들을 드로잉으로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주지만, 우리는 이 생명체들의 움직임 속에서 삶의 소중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모든 삶의 근원인 유기체와 그림의 근원인 드로잉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이준영의 작업방식은 근원적인 것을 표현하려는 그에게 가장 적절한 표현방식일 것이다. 그가 가진 기왕의 전시, 『부유』와 『달걀과 바다』에서 관심을 구체화시켜 간 것처럼 이번 전시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치유하는 체험의 이미지들로 더욱더 체화되어 있다. 근원에서 여성의 감수성으로 여기서 자신의 내면으로 좁혀 들어간 형상들은 하나의 깨달음이며 읊조림이다. ● 세계는 삶과 죽음, 선과 악, 의식과 무의식처럼 이중적 요소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내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준영은 여기서 벗어나 두 세계 사이의 중간지대에 자신의 작품을 놓으려 하며 그럼으로써 두 세계를 관조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그린다는 것은 두 가지의 상반된 세계가 공존하는 사이에서 삶에 대한 흔적과 경외, 그리고 관조까지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인 것이다. ● 삶 속에서 체험되는 다양한 생명력을 가시화하는 그의 작업은 우연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의 두 가지 축은 「얼굴 연작」과 「숫자 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연작들은 경험과 주관적 감수성, 우연을 통해 비정형적인 형상들로 추상화되고 상징적인 의미들을 내포한다. 하지만 그가 추상화하고 상징화한 것들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찾아낸 것으로 철저하게 주관적인 것이지만 객관화된 철학에 맞닿고 있다는 점에서 성찰이라고 할만 하다. ● 그에게 있어서 얼굴과 숫자는 자신을 의미하는 것들이다. 그는 「얼굴 연작」에서는 대표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신과 그림의 관계를, 「숫자 연작」에서는 자신의 경험 안에서 해석해낸 수를 통해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투영해내고 있다. 특히 숫자 연작은 그가 이전의 전시에서 가끔 사용했던 디스플레이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작품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숫자에 대한 도식적이고 철학적 해석들은 객관을 가장한 죽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준영은 꿈틀거리는 삶의 근원으로 숫자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한 것이며 그것들은 때로는 종교적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때로는 생태적인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 이준영의 그림에 표현된 나즈마한 읊조림과 따스함의 이미지는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생명의 변주처럼 삶이 태동되고 크고 작은 상처들이 치유되는 평화로운 중간지대인 것이며 깨달음인 것이다. ■ 박수진

Vol.20000214a | 이준영展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