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 한국_중국_일본_필리핀_말레지아_인도네시아 쿠르드 등 7개국 200명 작가 참여
서울시립미술관 SEOUL MUSEUM OF ART (SeMA)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서소문동 37번지) 서울시립미술관 600년 기념관 Tel. +82.(0)2.2124.8800 sema.seoul.go.kr
● 이 글은 1999년 9월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국제예술가 심포지움에서 발표되었던 것입니다.
몸으로 깨닫기에 관하여● 동아시아 미술의 미적인식의 핵심원리를 중국미학 쪽에서 알아보자. '보기(先泰시대)' '맛보기(魏晉시대)' '깨닫기(宋대)'로 발전하는데 이것을 현재적으로 압축하면 몸으로 깨닫기(張法)가 된다. 동아시아 미술의 앞으로의 미학적 과제는 어쩌면 이 세 단계를 압축한 '몸으로 깨닫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중작가 홍성담의 지난번 전시회 주제를 평론가들은 '저항과 명상'으로 잡았다. 이것은 좀 사설에 안 맞는 점이 있으나 그 뜻만은 알겠다. 저항의 내용이 만약 '고통의 감각'이라면 바로 '몸'을 뜻하고 명상의 뜻이 '고통의 감각을 통한 명상'이라면 바로 '몸으로 깨닫기'가 된다. 민중미술이든 대중복제미술 또는 예술이든 현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민중 또는 대중예술에서 사라져버린 '아우라' '영감' '예감' 또는 '근원성'을 되찾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중 또는 대중과 예술의 결합과정은 바로 고도한 과학기술이나 상업적 매체의 개입과 연계되어 민중 또는 대중의 미의식의 타락으로 인한 세계인식과 변혁의지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아우라'와 '초월성'의 회복은 물론 동양과학의 周易이나 正易과 영화, 또는 디지털 테크 또는 사이버스페이스나 일반 시지각 이론을 연계시키는 새로운 '미학적 과학'의 창조에 의해 결판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먼저 미술일반을 통해서 감각과 관조, 또는 五感과 깨달음 사이의 미학적 통로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데에서 비로소 가능해 질 것이다. 여기에는 감각과 깨달음의 통합이 그 미적 인식주체를 깨달음이나 관조에 관련된 영성적 주체, 깊은 우주적 인식주체에 두어야만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는다. 고대의 탁월한 무애無碍춤의 예술가이기도 했던 원효元曉의 예를 들어보자. 감각의 현실총괄인 '칠식七識'과 우주 무의식인 '팔식八識'을 그 통합적 인식주체, 곧일심 一心으로 했다는 사실과 함께 바로 그 아뢰야식 전체가 결코 절대가 아니라, 깨달음과 어리석음의 양면으로 상대화되어 서로 결합하는 의식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홍성담이 저항을 명상으로 연속시킨 놀라운 작품의 성공에 나는 대단히 큰 감동과 한께 슬픈 교훈을 인식한다. 그는 고통으로 가득찬 스무날의 물고문 과정, 그 붕괴된 감각의 지옥 속에서 고향바다의 새파란 물빛을 보았고 이 물 속에서 무한 무궁한 평화의 성스러운 광명을 찾았다. 그것은 최고의 깨달음이었다. 이 비극적 역설을 우리는 이제부터 깊은 고뇌와 함께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홍성담의 삶과 작품, 그의 인격과 예술사에 피처럼 번지고 있는 이 고통의 감각 속에 피어난 웅숭깊고 아름다운 도상들, 그 우주꽃의 만발은 먼저 그가 감각이 아니라 '감각의 붕괴'(즉, 극한 감각)로부터 시작하되 원한이나 복수나 증오로 나아가지 않고 깊은 관조의 큰 깨달음으로 정진한 그 모질도록 성실한 창조적이고 영성적인 미적인식 행위에서 오는 것이다. 이 영성적 인식 안에 이미 우리가 흔히 소위 '신'이라 부르는 '영성, '아우라', '초월성' 등이 깊이 깃들어 대담하게 스스로를 확장하면서 그의 인간과 작품을 쌍방향으로 자기 초월하도록 만들어, 결국에는 그 인간적 승리와 그 작품 속에 결코 외면할 수도, 왜곡할 수도 없는 명백한 '흰그늘',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결정시켜 놓았다. ● 동아시아 미술은 홍성담으로부터 이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내가 이미 제기한 바 있는 민중미술, 대중복제예술에서 요구되는 '아우라' 그리고 감각으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미학적 통로의 발견을 위한 미술일반의 공헌 이외에 또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일본 극우파의 최근의 재무장 난동과 문화적 극우이념 선전 및 끝없는 군국주의적인 전쟁적 인간관의 교육망동은 이제부터 동아시아 민중전체와 예술가, 미술가들의 가장 첫째 가는 적이요, 투쟁대상, 저항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 내의 반극우 민중세력의 전멸소식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 같은 사정으로 인해 야기된 동아시아와 태평양 전체의 유례없는 긴장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이며, 이 대응에서 동아시아 미술가들이 홍성담으로부터 배워야 할 독특한 '미적-윤리적 패러다임'과 교훈은 무엇이겠는가? 동아시아의 현대미술, 예술과 미학의 최대과제는 이미 말한대로 '몸으로 깨닫기'일 것 같다. 이것은 '보기 맛보기 깨닫기'의 압축이다. 즉 '몸으로 깨닫기'는 단순한 '감각적 관조(들뢰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이기도 하지만 '병렬'이기도 하다. '보기'는 '보기'로서 이미 '깨닫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극우파의 저급하기 짝이 없는 문화적 공세를 보라. 그들은 석은 감각을 전제로 하는 폭력과 음란을 퍼트리며 한없이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감상주의'를 마치 아름다움이요 윤리인양 위장 판매한다. 그들의 썩은 문화감각에 맞서는 싱싱한 감각, 감각으로부터 출발하는 살아 생동하는 깊고 크고 넓은 우주적 깨달음과 인류적이고 전생명계적인 사랑과 공경의 깨달음, 그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갈 이제부터의 동아시아 미술에 있어 홍성담은 하나의 모범이 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50여년전 일본 극우파의 전범들에 의한 동아시아 전체 민족들의 그 극도의 고통에 의한 감각의 붕괴, 그 극한 감각의 기억으로부터 여기저기 이들 저들 속에서 가능했고 또 가능해 마땅했던 참된 깨달음의 그 아름답고 감동적인 슬픔의 세계가 여러 화면에 의해 생생히 기억되어야 하며 동시에 이제부터 예상되는 그들에 의한 도 다른 고통과 그 감각의 붕괴를 딛고 우뚝 일어서서 드높은 우주사랑과 인류애의 큰 깨달음의 세계가 힘차게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의 대응문화는 그들의 협착한 국수주의, 군국주의를 훨씬 넘어서야 한다. 이 과정 전체는 바로 현대인류의 큰 숙제인 대중적 복제예술 속의 아우라의 회복, 감각으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미학적 통로의 발견으로 인하여 대중적 민중, 숱한 카오스 민중의 보편적 명상행위와 깨달음의 성취와 널리 일반화되는 대민중문화 창조의 빛나는 과정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오늘 동아시아 미술의 보편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 김지하
Vol.19990928a | 진보·연대·희망-동북아와 제3세계미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