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제 내부공사『호부호형』에 관한 변명과 사과

1. 전시공간 확보에 대한 서면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가 진행되었다. 독립예술제가 예술의전당과 결합하면서 구체적인 행사장소 및 프로그램에 대해 적어도 행사시작 6개월 전에 서면계약이 있었어야 마땅한데 진행자들은 모두 구두계약만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행사시작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고 전시장소가 계속 변경되기에 이르렀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독립예술제 미술행사 프로그래머로서 안정적인 전시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실수이다.

2. 결국 제6전시장이라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다. 미술작품 전시를 위한 배려가 잘 갖춰져 있지 못한 예술의전당 제6전시장은 실제 미술작품을 전시하기에는 매우 어수선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행사를 강행했던 까닭은 예술의전당 측의 태도만 문제삼으며 소모적인 논의에 휩쓸리기보다는 독립예술제라는 커다란 행사에 함께 동참하여 원래 전시행사의 취지였던 각 장르별 수평 횡단교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예술의전당 측에서는 독립예술제 내부공사 행사장소와 관련하여 제6전시장과 야외 몇몇 장소 밖에는 지원을 할 수 없음을 밝혀왔고, 독립예술제 집행위원회 및 각 프로그래머들도 이 턱없이 부족한 지원에 대해 항의하며 협의도 해보았다. 그 결과 독립예술제 행사 전체 진행을 위해서 좋지 못한 여건을 감내하고 미술행사를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예술의전당에서의 독립예술제란 '초대받지 못한 예술인들의 축제'이다. 초대받지 못한 데에는 여러 불합리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부공사 프로그래머로서 예술의전당이라는 장소에 집착하기보다는 독립예술제라는 내용을 선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3. 그리고 '호부호형'전은 지상전이라는 소극적인 전시형태로 이뤄졌다. 결국 『호부호형』은 실제 작품전시가 아니라 지상전이라는 형태로 열리게 되었다. 지상전이라는 대안을 마련하기까지 참여작가, 프로그래머, 예술의전당, 독립예술제 집행위원회 및 각계 인사들과 언성을 높이며 의사조정을 했으며, 결국 제대로 된 전시공간을 지원 받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전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고 독립예술제와 별도로 『호부호형』만을 따로 떼어내어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되었던 까닭이다. 결국 『호부호형』공간으로 제6전시장이 확보되었으며, 우천시 야외 전시가 곤란한 『호형호제』작품들이 들어왔다. 『호형호제』실내전 공간에서 지상전이 병행되어 더 산만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지만 독립예술제 프로그래머로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독립예술제라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축제였던 것이다.

4. 프로그래머로서 참여작가의 불만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어차피 좋은 여건에서 출발한 독립예술제가 아니었기에 행사가 열리기 전부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각 장르 프로그래머와 독립예술제 집행위원회,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의 실무자들은 매우 성실하게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미술행사 프로그래머로서 제대로 된 전시장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개인적으로 무마될 문제가 아니었다. 도록 제작사, 후원업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출품작을 준비하고 있던 30여명의 작가들의 불만은 프로그래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전시 전면 취소까지 생각해 보았으나 그럴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주로 밤시간을 이용해 몇몇 참여작가들을 만났고 이들의 불만을 달래며 오히려 전시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프로그래머로서 약간의 위안을 얻으려 했다. 문제는 당장 지금 눈앞에 놓여진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문화생산자로서 이들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염없이 부족하고 괴상한 『호부호형』지상전이 만들어졌다. ● 행사 도중에 또 다른 문제가 된 것은 『호부호형』이 아니라 『호형호제』였다. 물론 『호형호제』에 별도의 프로그래머와 어시스턴트들이 있었지만 같은 장르 행사 진행자로서 충분히 교류하며 그 역할을 나누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확연히 작가의 입장도 그렇다고 독립예술제나 예술의전당의 입장도 쉽게 동의할 수 없는 프로그래머로서 모든 이들의 불만을 그대로 뒤집어 써야 했던 것이다.

5. 새로운 예술역역을 확보하기 위한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자. 독립예술제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은 문화생산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불만스러운 것은 아직도 예술의전당이라는 장소가 자유로운 예술영역을 포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프로그래머로서 독립예술제와 예술의전당의 아슬아슬한 결합을 보며 그 잘못을 어느 한쪽에 몰아 붙일 생각은 없다. 그 이유는 어느 측이건 실무자들에 있어서 새로운 예술영역의 확보하겠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서로의 입장에서 지나친 욕심과 그 와중에 읽혀지는 타자를 배려하지 않는 고리타분한 고정된 과거관념이다. 아무쪼록 이 시기에 서로 싸우기 위한 소모적인 싸움에 매진할 것이 아니라 서로가 맞은 영역에서 만들어낸 엄연히 다른 문화를 서로 인정하려 노력했으면 한다. 어찌되었건 올해의 독립예술제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독립예술제'99가 되기를 바란다. ■

1999년 9월 17일 독립예술제 내부공사 '호부호형'전 프로그래머 박민정·최금수

Vol.19990918a | 독립예술제 내부공사『호부호형』에 관한 변명과 사과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