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부호형·呼父呼兄

99 독립예술제 내부공사展   1999_0913 ▶ 1999_0926

김일용_옷벗기기_합성수지_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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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전시는 여러 여건상 실제 작품이 전시되지 못하고 도록을 게시하는 지상전 형태로 열립니다.

참여작가 김일용_배영환_이샛별_김미정_안창홍_강홍구 박용식_전수현_김준_최민화_김정욱_박은영 노석미_홍지연_최영희_이동기_권오상_이흥덕 문승영_진달래_최지안_이정우_윤여걸_수파티스트 권기수_연영석_박형진_이종빈_최경태_지미연

책임기획 / 최금수_박민정

예술의전당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서초동 700번지) 미술영상실 주변 Tel. +82.(0)2.580.1300 www.sac.or.kr

족보族譜다.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許하거나 금禁하는 것은 족보와 관련된다. 어떤 권력을 유지시키는 혈연관계와 그 지나간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 기득권旣得權에 대한 증명證明이다. 예술, 좀더 구체적으로 남한 시각 이미지에 있어서 족보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정통성正統性을 바탕으로 나름의 권위權威를 인정받고 있다면 다들 그 족보에 편입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쓰려 할 것이다. 그리고 '족보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말은 가장 강력한 위협威脅의 무기武器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족보를 무화無化시키려는 노력들도 그 족보 못지 않은 힘을 지니게 될 것이지만.

홍판서 길동에게 호부호형을 허하다. ● 우스개가 있다. 달밝은 밤 길동은 서자庶子로 태어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번도 길동에게 따스하게 대한 적이 없던 홍판서가 다가왔다. 홍판서는 길동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을 알아차리고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길동은 준비했다는 듯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이 놈의 삶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라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멀끄머니 길동의 하소연을 듣고있던 홍판서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시간부터 내 너에게 호부호형을 허하노라'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길동은 다시 홍판서에게 말을 건내고 더 구슬프게 흐느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호부호형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러자 홍판서는 어이없어 하면서 '그러기에 내가 호부호형을 허한다고 그러지 않았더냐'라며 다시 타일렀다. 그러자 길동은 더 격분하며 '답답하십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그깟 호부호형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라고 외쳤다. ● 잠시후 길동은 너무나 기뿐 나머지 한달음에 길동모母의 숙소로 뛰어 갔다. 늦은밤 길동이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을 본 길동모가 말했다. '이놈 길동아. 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니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거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그리 호들갑이냐?' 그러자 길동은 '어머님 기뻐하십시오. 드디어 홍판서. 아니 아버님께서 호부호형을 허하셨습니다'라며 커다랗게 외쳤다. 이에 길동모는 아연질색하며 '이놈 길동아. 야밤에 그렇게 큰소리로 떠들면 못쓴다. 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니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너의 신세가 하도 가여워 오냐오냐하며 길렀더니 너무 철이 없구나'라며 주변을 살피면서 길동을 야단쳤다. 그러자 길동은 '어머님 답답하옵나이다. 드디어 아버님께서 호부호형을 허하셨습니다.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라며 다시 대답하였다. 그러자 길동모는 얼굴을 붉히며 '이놈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네. 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니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그깟 호부호형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더냐. 제발 진정하도록 해라'라며 더 큰소리로 야단쳤다. ● '여보슈 사람들. 드디어 홍판서가 우리 길동이에게 호부호형을 허했답니다.' 다음날 길동모는 너무 기뻐 이른 아침부터 저자거리에 나와 외쳤다. 그러자 시장사람들이 하나같이 손가락질하며 소곤대기 시작했다. '저 여편네 미쳤나봐. 지 아들은 애비를 두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뭐가 그리 좋은 일이 있다고 이른 아침부터 저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거야?'

김정욱_한지에 수묵_1998

호부호형이 다 무슨 소용이랴 마는 ● 길동모는 기운을 잃었다. 이러다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 하며 호부호형을 설명하고 다녀야 할 판이다. 바쁜 세상에서 이미 족보는 그 권위를 잃어가고 있던 참이다. 더구나 길동과 길동모가 사는 생활범위 내에서는 그 족보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굳이 자신이 받게된 혜택을 자랑하기 위해 남들의 아픈 구석을 들출 필요는 더더구나 없었다. 어차피 호부호형을 허하건 허하지 않았건 간에 아버지는 아버지고 형은 형이다. 그리고 첩은 첩이고 서자는 서자이다. 다만 첩과 서자라서 천대賤待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거過去가 문제이다. 그렇다면 굳이 힘을 잃어가는 과거 적자의 권위를 서자출신인 길동의 힘을 빌어 지금의 평민들에게 설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 길동모는 곰곰이 생각한다. 만약 길동이 힘이 없었다면 홍판서가 과연 호부호형을 허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현재 홍판서보다 길동이가 더 권력을 지녔단 말인가? 자신의 체면을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나 몰라라 지내왔던 홍판서가 어찌 한순간에 호부호형을 허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의 능력能力을 결정決定하는 적자와 서자라는 구분이 정말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약삭빠른 홍판서가 길동이 자신마저 위협할 것이라 판단하여 호부호형을 허한 것일까? 길동모는 의심疑心과 근심이 점점 더 깊어진다.

이흥덕_붓다, 예수 서울에 입성하시다._캔버스에 유채_1998

적자와 서자 ● 아직도 미련하게 적자와 서자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오늘날 시각 이미지 생산에 있어서 이 둘을 나누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물론 시각 이미지를 제외해 놓고 그 생산과 유통과정에 만날 수 있는 관계자들의 태도態度만으로 국한하자면 아직 할 이야기는 많다. ● '99독립예술제 『호부호형』전은 기왕의 인디문화와 수평水平으로 횡단교류橫斷交流할 수 있는 시각 이미지를 모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러므로 인디문화로서의 시각 이미지에 접근하고 있는 전시는 결코 아니다. 다만 기획에서 읽고자하는 것은 작가도 아니고 인디문화는 더더구나 아니며 이미지形象 그 자체일 뿐이다. 확연히 인디문화로서 시각 이미지를 제시할 수 없는 까닭은 남한 시각 이미지의 축적도蓄積度가 너무 얇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예술장르를 아우르는 인디문화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립槪念定立이 아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 남한에서 인디문화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게된 시기는 90년대다.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담론巨大談論과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혀있는 전근대적前近代的 성향性向들 때문에 그 속도를 자랑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혹자들은 그 속도를 요사이 문을 연 몇몇 대안공간代案空間에 기대를 하고 있지만 실상 남한 시각 이미지의 현재에 있어 대안공간은 대안문화代案文化라는 내용적 고민은 고사하고 그 물리적物理的 공간空間을 유지하는 것마저도 버거워할 정도로 열악하다. 그래도 그나마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음악, 영화 등 타 장르 예술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시각 이미지 생산에 있어서도 인디문화에 근접할 수 있는 몇몇 작품들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이런 시각 이미지들이 곧바로 인디문화 타 예술장르와 적극적으로 결합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남한 시각 이미지 생산의 속도와 성향이 워낙 개별적個別的이고 느린 탓이기도 하지만 80년대라는 거대한 문화운동文化運動을 경험했던 활동적인 시각 이미지 생산자들과 향유자들이 경직硬直된 80년대식 사고思考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문화지형文化地形의 변화變化에 둔감鈍感해져 버린채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虛費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 '99독립예술제 『호부호형』전은 어떤 대안이나 주장을 위해 꾸려진 것이 아니다. 다만 기왕의 인디문화와 교류하기 위해 동시대同時代 감성感性이 확연히 읽혀지고 시각적視覺的 상상력想像力을 바탕으로 질식해 버릴 것 같은 일상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려 노력하는 이미지들을 모아 본 것이다. 이것이 주류主流건 비주류非主流건 그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것을 따지자면 또 거추장스럽게 족보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혈통을 따져야 한다. 쓸데없이 두터운 족보를 들춰 도식적인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무댓보이기는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눈과 가슴의 감각을 믿고 속도速度를 내기로 했다. ■ 최금수

Vol.19990906a | 호부호형·呼父呼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