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염중호展 / YUMJOONGHO / 廉中熩 / photography   1999_0113 ▶ 1999_0128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서남미술전시관_폐관 Seonam Art Museum_closed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3-8번지 동양증권빌딩 1층 www.seonam.org

일상과 사진을 배반하는 너무 흔한 사진들 ● 염중호는 누구나 손쉽게 찍어 DP점에서 찾을 수 있는 4×6 싸이즈 컬러인화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그 4×6 싸이즈 사진들은 세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첫번째는 그냥 단순하게 대상을 카메라로 촬영하여 인화하는 방법이다. 두번째는 대상을 캠코더로 촬영하여 텔레비전 브라운관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재생시킨 후 그 화면을 다시 카메라로 촬영하여 인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은 실제 영상물들이 방영되고 있는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무작위로 촬영하여 인화하는 것이다.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실제로부터 거리두기 또는 가까워지기 ● 일단 염중호 작업은 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4×6 싸이즈 컬러인화 사진 형식을 취함으로써 아마츄어와 작가사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전문가만이 찍을 수 있다거나 뽑을 수 있겠다는 신비로움이 염중호 작업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이런 제작방법을 과감하게 택했다는 것에서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는 역으로 생각해보면 염중호는 분명히 아마츄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염중호는 이 너무 흔하고 평범한 사진작품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 염중호의 사진은 ① 일상을 비데오카메라로 촬영함으로써 어떤 예술형식이 되었던 것을 / ② 또다시 모니터에 재출력하여 예술형식 이전의 일상으로 만든 후 / ③ 그것을 다시 촬영하여 4×6 싸이즈 컬러인화 사진작품으로 제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① 일상에서 예술형식으로, ② 그 예술형식을 다시 일상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③ 일상이 된 예술형식을 다시 새로운 예술형식으로 반복하는 작업이다. ● 그렇기 때문에 염중호는 4×6 컬러인화 사진이라는 가장 흔한 형식을 사용한다. 핵심이 되는 것은 이 작업과정에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요란한 사진기법을 동원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실제로부터 출발한 이미지들을 사진작품이라는 형식으로 만들어내면서 실제와 분리시키고, 그것을 다시 실제 현실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약간의 변환과정을 거칠 뿐이다. 이 변환과정 중에 이미지들은 왜곡되거나 그 밀도가 옅어지기도 하지만 어차피 실제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 엷은 밀도의 이미지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있기에 특별히 염중호가 꾸며낸 것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결국 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촬영효과로서 염중호가 얻고자 하는 것은 현실와 예술, 그리고 실제와 허상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인 셈이다.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너무 많은 것은 개별 의미를 희석시킨다. ● 몇번의 변환과정을 거친 4×6 싸이즈 컬러인화 사진들은 다시 무작위로 전시공간에 빽빽하게 붙여진다. 이렇게 연출된 전시공간은 하나 하나 개별 사진의 의미보다는 수천장 사진들이 동시에 뿜어내는 차가운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진다. 원래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가 차가운 기계 감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염중호 작업의 도시 감성이 더해져 그 차가움은 더 증폭된다. 그리고 이런 제작방법 및 디스플레이는 실제 현실과 사진이라는 매체와의 거리두기 또는 상황의 반전의 반전이라는 지극히 개념적인 성향을 띠고 있기에 논리의 명쾌함 또는 중성적인 차가움이 전시공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 만약 특정 이미지에 중심을 두고 그 의미를 증폭시키기 위해 많은 컷의 사진을 제작하였다면 상황은 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염중호 사진작업은 한장 한장이 거의 비슷한 정도의 비중을 가지고 제작된다. 특별히 작가가 애정을 더 가지고 있었다거나 허술하게 생각했다고 생각하는 장면들은 읽혀지지 않는다. 그저 비슷한 정도의 애착 또는 무관심으로 덤덤하게 셔터를 눌러댔던 것이다. 이 덤덤함은 디스플레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것의 배치가 무작위라는 것. 그리고 너무 많은 수의 사진들이 동시에 보여진다는 것은 그 사진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디스플레이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염중호는 사진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되는 기록이라는 성격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디스플레이 방식을 노리고 있다. 그 사진의 기록성이 직선적 시간관념을 조장한다면 염중호는 도배식 디스플레이로 시간의 직선을 해체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무작위로 붙여진 수천장의 사진을 어차피 관람자들은 모두 다 읽어내기란 힘들 것이다. 설혹 그 사진 한컷 한컷을 모두 다 읽어냈다고 하더라도 그 순서는 관람자마다 다 다를 것이다. 어차피 염중호는 이전에 읽혀졌던 방식보다는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들이 읽혀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무지막지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도배식의 디스플레이는 매우 적합한 방법 중의 하나인 셈이다. 하나 하나의 이미지들보다는 그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우연의 이미지를 관람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순서로 선택하여 읽음으로써 각기 다른 느낌의 작품을 감상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까닭이다.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개인을 떠난 사생활의 힘 ● 4×6 싸이즈 컬러인화 사진에 담겨진 내용들은 지극히 사사로운 일상이다. 그리고 이 사진들에는 작업을 하기 위해 특별히 제시되는 가치판단이나 조작 따위는 개입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염중호는 '제3자적 입장에서 포착한 작가 자신의 사생활'이라고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을 설명한다. 그래도 굳이 염중호의 사진작업을 분류해 보자면 크게 자연, 인물, 음식, 공산품, 거리 등으로 구분된다. ● 자연은 철저하게 가공된 것으로 도시적 감성이 유지되는 인간에 의해 지배되는 자연이다. 대표적으로 화려하게 부풀려진 꽃과 잘 다듬어진 정원들을 찍은 사진들이 그렇다. 그리고 인물사진에서는 그냥 작가의 주변을 맴돌거나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이 찍혀져 있다. 굳이 어떤 전형으로서 인물이 아니라 그냥 작가의 사생활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이거나 아무런 관계가 없이 스쳐지나간 사람들이다. 그리고 슈퍼마켓에 진열된 야채라던가 먹다가 남긴 음식 찌꺼기 등에서는 욕망의 냄새가 난다. 그 욕망 때문에 뭔가 필연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포기되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사생활은 재충전의 계기를 갖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손이 아니라 기계가 만들어낸 공산품들은 그만큼의 편리로서 이 세상을 바꿔 놓고 있다. 그 공산품들로 인해 복제가능한 삶의 영역들이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건설과 파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거리에서는 공공의 권력이 느껴진다. 나약한 사생활들이 모여져 만들어낸 공공의 거리에서는 감춰진 사생활만큼이나 두터운 공공의 벽들이 쉴새없이 무너지고 또 다시 세워지고 있다. ● 사실 염중호의 이번 사진작업에서는 무엇을 찍었느냐도 그리 중요한 것 같지가 않다. 렌즈에 포착된 것은 물론 염중호 개인의 사생활이지만 그 사생활의 이미지들은 오히려 은밀한 사생활이기를 포기하고 무언가 공공의 것을 이야기 하려 한다. 그리고 사진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담담하게 지배하고 있는 작가가 의도한 중성적인 경향은 개인의 사생활마저 공공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염중호_사생활_컬러인화_각 4×6inch_1999

결국 문제는 사진이다. ● 염중호 사진작품을 내용으로 읽으려 시도하면 수천 여컷의 장면들에 질리게 된다. 결국 영리한 관람자는 무수히 많은 사진 컷에 숨어있는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 한다. 어차피 무언가를 찍어야 사진이라는 형식이 되는 것이기에 작가 염중호는 자신의 사생활을 찍은 것이다. 그리고 수천 여컷에 달하는 사진들은 서로가 서로의 내용을 약화시키면서 하나의 커다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 커다란 이미지가 바로 작가의 의도이다. 그렇다면 그 커다란 이미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진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실제 존재하는 현실과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현실 그리고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현실 및 본디 사진이라는 것이다. 결국 염중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과 현실 또는 실제 사이를 오가며 사진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을 타진해 보는 작업인 것이다. ■ 최금수

Vol.19990113a | 염중호展 / YUMJOONGHO / 廉中熩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