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조각

ILLUST·SCULPTURE展   1997_0303 ▶ 1997_0420

이종빈_조각가의 방_혼합재료_실물크기_1984~1985

책임기획 / 최금수

서남미술전시관_폐관 Seonam Art Museum_closed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3-8번지 동양증권빌딩 1층 www.seonam.org

『일러스트 조각』展을 기획하며 - 파괴된 우상의 파편을 본다 ● 파편, 아픔으로 조각나버린 덩이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것들은 역사필름 속에 그리고 늙어버린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아직도 살아 꿈틀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파편은 어차피 부서져버린 것들이다. 그냥 그렇게 떠나버린 것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진다. 파괴된 우상의 파편을 다시 긁어모아 일으켜 세우려는 짓은 부질없어 보인다. 굳이 그 우상의 파편을 주어모아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그런 눈물겨운 경험을 하고 싶다면 할 말은 없다. 하여간 세상은 점점 더 빨라져 가고 있다.

캐논, 언제나 그것은 인간이었다 ● 오랫동안 조각은 사람을 만들어 왔다. 아마도 미술에서 가장 끈질기게 인간에 대해 집착을 보여왔던 장르는 조각일 것이다. 그래서 조각작품에서는 사람들의 삶이 어렵지 않게 읽혀진다. 그것이 문화재가 되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건 예술작품으로 미술관에 들어와 있건 말이다. 그 중에서 특히 인체조각은 보다 밀접하게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사실 인체조각의 경우는 이상의 보존을 위해 죽음과 관련되어 발전해 왔다. 그러기에 무덤의 부장품이나 종교 의례품으로 제작되었던 인체조각들에서는 새삼 타임캡슐이나 역사교과서를 펼쳐 놓은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뻣뻣하게 서있는 수많은 우상이나 기념비들로부터 지금은 확연히 죽어버린 영화의 흔적들을 찾아 볼 수가 있다. 인간이 삶과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조각작품도 삶과 죽음이라는 기억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다. ● 현대조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난해한 개념이 들어가고, 좌대가 없어지고, 크거나 작아지고, 대상 없이 물성만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이들 조각작품들이 갖고 있는 캐논은 여전히 인간일 수밖에 없다. 캐논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치수로만 이야기될 성격이 아니기에 인간이라는 캐논은 아무리 복잡한 사회에서도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기의 흐름이 전해주는 이야기들 ● 조각은 크기, 비례, 형태, 질량 등을 이용한 3차원 예술이다. 조각을 향유하는 데에는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이 동원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조각작품들에서는 촉각을 대신하는 시각이 향유를 도와주고 있지만 조각은 분명 촉각에 기반한 공간예술인 것이다. 그리고 조각작품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은 풍경화의 원근법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괴량감과 그 덩어리가 바꾸어 놓은 공기의 흐름 때문에 조각은 당당히 예술의 한 장르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 『일러스트 조각』전은 우리 삶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조각작품들을 모아 본 것이다. 그것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삶을 읽도록 만들어진 조각작품들로 이루어진 전시이다. 물론 한 예술작품에 있어서 창작자와 향유자의 이해는 서로 빗나갈 수도 있으며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일러스트 조각』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향유자에게 비교적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보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살아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창작자의 의도와 만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 또 『일러스트 조각』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명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드로잉 또는 채색을 서슴없이 활용하고 있다. 조각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의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암암리에 지켜왔던 금기들이 『일러스트 조각』전에 출품한 작가들에게는 전혀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작품이 조각이라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크기, 비례, 형태, 질량 등을 다루는 3차원 예술로서의 성격을 더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이 조각작품들이 서로 연출되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간들은 설치미술에서의 공간개념과 비교해 볼 만하다. 물론 시각으로 느껴지는 것만으로 그 공간의 폭을 가늠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공간과 허공간에 대한 배려가 잘 갖춰진 조각작품과 실재와 가상이 적절히 어우러진 설치작품을 비교해 보는 일은 공간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성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일러스트 조각 : 쉽고 친한 조각 ● 일러스트레이션은 사회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예술적 대안으로 의미사슬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즉 이미지를 통한 시각 커뮤니케이션으로 어떤 의미를 공유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그러기에 일러스트는 적확한 의미전달을 추구하며 대상이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배려된다. 굳이 조각작품 전시에 일러스트라는 말을 앞에 붙이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런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친근한 조각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일러스트 조각'은 다른 말로 '쉽고 친한 조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쉬운 조각은 이해되기 쉽다. 하지만 쉬운 조각작품을 만들어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쉽고 친하다'라는 표현은 여러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가까이 다가와 속삭여 주는 그런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그러기에 『일러스트 조각』전은 일러스트와 조각이라는 각기 다른 장르를 연결지어 보려는 그런 의도에서 기획된 전시가 전혀 아니다. 다만 일러스트가 갖고 있는 적확한 내용전달과 현실 친화력을 빌어오겠다는 생각으로 '일러스트 조각'이라는 낱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 일러스트에 대한 이해가 폭넓게 진행되지 못한 느낌이 있지만 그간 시각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짐작해 보건대 그 가능성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일러스트라는 낱말에 현실 흡입력이라는 무게를 실어 조각작품들을 모아 본 것이다. ● 한편으로 섣불리 '일러스트 조각'이라는 합성어를 사용하게 되어 조각 또는 일러스트 분야에 둘 다 만족을 못시킬 전시를 꾸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해 보았으나 원래 기획의도가 미술작품의 현실 친화력에 있었기에 굳이 일러스트다 조각이다 하며 따지지 않았다.

문제는 현실 흡입력이다 ● 『일러스트 조각』전은 현대 한국조각에 있어서 쉽고 친하게 오늘이라는 시점을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을 귀납방식으로 꾸민 전시이다. 얼핏 유사 창작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은 형식전시라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일러스트 조각』전을 살펴보면 심상치 않은 삶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낯익은 희망일 수도 있으며 고리타분한 전통일 수도 있다. ● 『일러스트 조각』전에는 역사, 사랑, 성장, 희망, 투쟁, 분노, 파괴와 생산 등의 이야기들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적당한 정도의 허무와 적당한 정도의 안주도 읽혀진다. 또 거부하려 하여도 끝까지 따라붙는 그런 구차한 것들까지 함께 섞여 있다. 만약 예술작품들이 현실전유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면 『일러스트 조각』전은 창작자가 수고하여 현실에서 분리해 낸 예술작품들을 다시 현실로 되돌려 보내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말해 창작자가 한껏 빨아들인 현실을 다시 작품을 통해 내뱉게 되는 그런 것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 최금수

1997년 『일러스트 조각』전 출품 작품 설명글 강용면 / 과거를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 ● 나무로 만든 인물조각에 알록달록 전통 안료들이 칠해졌다. 투박하게 깎여진 인물들은 입혀진 옷들만큼이나 두터운 역사를 걸머지고 있다. 가끔 몸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맨살 역시 옷보다 더 두터운 무언가에 싸여져 둔탁하기만 하다. 역사 그리고 전통.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역사.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가 결과한 오늘이 아니라 오늘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버거워 한다. 잠시 멈춰진 이들의 발길은 다시 과거를 걷고 있다.

김주호 / 어둠을 이겨낸 오밀조밀한 웃음들 ● 생활 속에 건강한 표정이 있다. 흐뭇한 미소 그리고 커다란 웃음. 어눌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 속에는 솔직한 웃음이 섞여 있다. 때로 가식된 웃음을 짓는 얄미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들 또한 유쾌하기만 하다. 힘들지만 다들 엇비슷하게 세상을 살고 있기에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잠시 여유를 갖고 한번쯤 밝게 웃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시련보다도 더 강한 삶에 대한 애착이 있기에 웃음은 항상 건강해 보인다. 그리고 웃음으로 본 세상은 밝기만 하다. 머리 속 복잡한 생각들 그리고 가슴 속 어두운 기억들은 이제 없다.

이종빈 / 메마른 거대한 삶과 그 그림자에 덮인 화려한 아픔 ● 거대한 꿈속에 빠져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이 오늘을 살고 있다. 혹은 잔인하고 현란하게 자신을 치장하려 하지만 오히려 이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화려한 아픔들 뿐이다. 부풀려진 욕망 속을 허덕이다 겪게 되는 화려한 아픔. 이 아픔을 이기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허황된 꿈에서 벗어나 또 다른 꿈으로 옮겨가게 되면 미치도록 서글프고 초라한 상처만이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뒤늦게나마 허수아비처럼 움직여 왔던 자신의 껍데기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유영호 / 무너지는 삶 그리고 그 이후 ● 달동네가 부서지고 있다. 초라하고 가난한 동네였지만 따스한 마음과 애틋한 눈물이 있었던 그곳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비좁았지만 그래도 넉넉한 마음이 있었던 곳.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던 소박한 사람들. 이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방 한칸 한칸에 살아왔던 건강한 꿈들이 너저분하게 속살까지 드러내며 처참하게 쓰러진 것이다. 무기력해진 이 꿈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묻고 있다. 달동네 구석구석에 서려 있던 아기자기한 희망들은 이제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한다. 다시 일어설 힘조차 없는 이 몸둥아리는 그냥 세상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린다.

연영석 / 다시 의심의 눈초리로 세상을 읽는다 ● 변혁과 변화를 겪으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아직 그대로인 것 또한 적지 않다. 낡았다거나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그리고 새롭게 닥쳐진 문제들의 틈 속에서. 다시 삶을 생각하여야 한다. 지나간 것들에 연연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살아가야 할 삶이라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이제 싫은 것은 싫고 좋은 것은 좋다고 하자. 좀 더 솔직해지고 좀 더 당당해지자. 현기증 나는 바보 같은 세상. 어차피 여기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면 신나게 살아보자.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보자.

한애규 / 이제야 그들은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 사람들이 물을 바라보며 서 있다. 물같이 흘러가는 세월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서 읽혀지는 삶과 희망.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착한 여인들과 거대한 힘에 맞서는 나약한 남자. 그들이 지켜 온 삶이 눈앞에 흐르고 있다. 아픔과 기쁨이 뒤섞인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온 사람들의 표정. 거기에는 헛되지 않은 땀과 눈물이 함께 맺혀 있다. 사랑과 슬픔으로 채워진 수많은 세월들이 땀과 눈물이 되어 잔잔하게 흘러내린다. 시련에 맞서 더욱 더 견고하게 삶을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 이제 이들은 자신이 흘려 온 땀과 눈물을 바라본다.

허위영 /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명 그리고 문화 ● 생명.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삶은 문화를 만든다. 거대하고 딱딱한 것들만이 삶과 문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작고 우스꽝스러운 것들 또한 삶과 문화를 만들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만들어 내는 살아 있는 문화. 거기에서 찾아낸 웃음들. 그것은 삶의 기쁨일 수도 있고 회의일 수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경우 역사가 되기도 하고 예술이 되기도 한다. 작은 사랑 이야기 하나가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모두에게 느껴지는 것으로 자리잡는다면 그것은 문화이다. 그리고 그 문화에 시간이 걸려 있다.

『일러스트 조각』展은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서 쉽고 친하게 오늘의 삶을 읽을 수 있는 조각작품들을 모아 본 것입니다. The 『ILLUST·SCULPTURE』 is to sense the reality of our contemporaries through the easy and familiar works of sculpture.

Vol.19970303a | 일러스트 조각 ILLUST·SCULPTURE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