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19920505a | 자연(自然), 그 새로운 해석展 1으로 갑니다.
참여작가 김산하_박용인_송창_오치균_윤종구_이강하 이원희_이호중_정재성_주태석_최경철
책임기획 / 윤진섭
현대백화점 현대미술관 압구정 본점_폐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456번지 Tel. +82.(0)2.547.2233
80년대 형상미술, 그 양상과 전개 ● 80년대에 대한 미술의 경향을 여러 갈래로 분류하고 그것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커다란 흐름은 형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형상미술이야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종래의 구상미술이라 불리는 형상미술이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 현대사회의 다양한 현실과 현대인의 복잡한 세계관과 가치관, 심층심리와 같은 것들을 다양하게 수용해야 할 필요가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변별되고 있다. 이는 특히 그 이전의 화단을 지배해 온 미술이 시대의 다원화 요구와는 동떨어진 편협하고 경직된 경향으로만 고착되었던 것에 대한 심한 반작용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 하지만 형상을 중심으로 한 미술운동은 한결같은 양상으로만 전개된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나 그 밖의 계기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전개되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같은 형상을 표현의 기초로 삼고 있다 하더라도 한쪽에서는 현실의 반영이나 변혁의 논리로 형상을 도구화한다거나, 아니면 다른 한쪽에서는 현대미술이 경향과 논리 속에 대입하여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신구상', '신형상', '후기형상주의'라는 구분조차 모호한 여러 갈래의 형상미술이 혼재한 터였다. 그리하여 혹자는 현대미술의 전환기적 징후를 말하며, 그것이 어떤 동기에서인지 명확히 밝혀지는 않은 채 단지 '그리기로의 복귀' 혹은 '이미지 회복' 현상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 복잡한 형상미술의 새로운 부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점이 있다. 즉 국제적인 조류에 대한 어떤 반응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우리 내부적 혹은 환경적, 심층적 요인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된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 등의 시각이다. 대체로 국제조류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는 시각에는 당대 세계적으로 신표현주의, 신구상주의, 트랜스 아방가르드, 뉴페인팅, 포토리얼리즘과 같은 경향들이 얽혀 있다는 점이 그 근거로서 제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 내부적 요인은 현대미술사 내에서의 교육한경, 제도적 환경 등으로부터 야기되는 것과 미술사의 변증법적 도정에서 비롯된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필연적 현상에서 함께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1. 재현적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 배경 ● 대상의 이미지를 근간으로 한 재현적 형상(representational figure)은 조형언어의 중요한 어휘이자 문장이다. 현대미술사를 통해 극단적인 리얼리즘의 추구 태도에 의해 아무리 전위적인 실험이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재현적 형상이 전혀 소멸될 수는 없다. 존재자에 대한 인간의 시각적 경험이 있는 한, 그리고 미술이 소통의 기능을 버리지 않는 한 재현적인 형상은 건재할 것이다. 물론 금세기초 일루젼을 해체시키는 과정도 있었으며, 재현에 있어서의 리얼리티가 의심을 받기도 하였다. 한동안 주지주의적 모더니즘의 패권 장악 이후 재현적 형상이 왠지 지성의 반열에서 도태되는 것 같은 억압의 구조가 조작되기도 하였으나, 그 역할이 단순한 이념적 이유만으로 배척될 수 없는 이유가 이미 탈근대적 인식론 속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 그런가 하면 지나치게 재현적 향상의 능력을 과신하여 미술에 있어서의 기능을 반영과 인식의 국면으로만 제한하는 리얼리즘 역시 재현적 형상의 편식만을 습관화시켜 재현적 형상의 가능성을 크게 저해하였다. 특히 후기 산업사회에 들어 각종 매스미디어와 정보기기의 발달로 인해 감수성이 크게 바뀌고 있음에 따른 기초체계와 상징체계, 그리고 매체와 어법의 새롭고도 유연한 발굴에 장애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적이 아니면 동지만이 있으며, 적은 있되 비판적 동지가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형상의 폭넓은 구현은 실로 요원하였던 것이다. ● 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민중미술이 리얼리즘의 기치 아래 출범을 하였을 때 많은 젊은 작가들이 호응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리얼리즘의 승리였다기보다는 형식주의 및 제도권 미술이 지나치게 폐쇄적이었던 것에서 온 반작용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사실 모더니즘 미술의 실패는 양식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것의 담론구조 속에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자율성과 순수성을 구가하는 미술이란 애당초 비현실성을 전개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력을 가졌을 때 심각한 모순이 뒤따를 것은 당연하였다. 또한 그러한 원리들이 자발적으로 구현된 것이 아니라 타율적으로 소여된 것도 문제였다. 그것들이 원리화될 수 있었던 것은 미술자체의 선택이 아니라, 권력을 쥐고 있는 과학의 억압적 권고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교조적으로 준수하고자 한 형식주의는 또 다른 억압에 대한 혹은 방조의 매개가 되리라는 것이 자명한 이치다. 바로 우리의 70년대 미니멀리즘의 상황이 그러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소외된 작가들이 다수 참여하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념적 결집만이 아니라 재현적 형상에 대한 동질성을 갖고자 하는 충동의 작용이기도 한 것이다. 즉 입시 때부터 기계적이라 할 정도의 묘사력에 의해 작가 입문을 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성화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상 기피현상에 대해 커다란 혼란을 느꼈을 것은 뻔하다. 대다수가 묘사력을 소질로 믿고 입문하였을 터에 묘사력이 아닌 지적 유희에 대해서는 체질적으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형과의 혼란기에 태동한 리얼리즘이나 새로운 표현주의 등은 이러한 형상의 지지세력 혹은 잠재적 지지세력을 용이하게 규합하거나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이뿐이 아니다. 70년대 말부터 나타난 극사실주의가 많은 작가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묘사 중심의 입시환경과 그리 무관하지 않다. 극사실주의가 미국에서의 팝아트적 전통에 대한 이해의 차원과 현대문명에 대한 중성적인 형상성으로서의 맥락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것 자체의 맥락에 대한 이해 혹은 수용의 차원이 아니라, 가장 적응하기 쉽다는 점에서 커다란 거부감 없이 우리 화단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특히 극사실주의가 큰 거부감 없이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대립적 화단구도 속에서 중도적일 수 있다는 점과 일치한 일종의 묵계적인 비무장 영역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종래의 아카데미즘에서 시장성 구상회화도 어느 정도 형상적 동질성 때문에 미학적으로 보다는 현실적으로 연대할 수 있었으며, 리얼리즘과도 어느 정도는 근친성을 확인한 터여서 적대성이 약하며, 또한 미니멀리즘과 같은 여타의 형식주의적 미술과도 서구 현대미술의 계보적인 위치에 있어 동일한 염색체를 가지기 땜에 원만한 유대를 형성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 한편 이렇듯 재현적 형상의 교육 세대가 형상에 대한 충돌을 표출시키는데 있어 더욱 고무될 수 있었던 것을 바로 국제적으로 조류화된 형상미술의 국내 유입에도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82녀에 열린 『프랑스 신구상 회화전』(4. 24-5. 30, 서울미술관)이나 미국의 극사실주의, 뉴페인팅, 그리고 독일의 신표현주의와 같은 형상적 중심의 조류들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형상의 건재를 열망하는 작가들에게는 대단히 고무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사태를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모든 미술의 담론과 실천들이 해외사조에 수동적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형식주의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리얼리즘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를 들면 아무리 70년대를 풍미한 미니멀리즘의 현실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 강하고 형상에 대한 신념이 굳건했다 하더라도, 만약 동조적이고 우호적인 경향들 -즉 새로운 구상 혹은 형상을 위시한 경향, 혹은 동구권의 지역주의적 리얼리즘의 경향 등-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민중미술이나 극사실주의적, 혹은 신표현주의적 미술이 그토록 세확장을 꾀할 수 있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물론 우리 내부적으로 이미 다원주의적 맹아가 근대사 속에 싹트기 시작한 까닭에 그러한 형상미술의 자생적 기반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보편주의적 국제주의가 우리 문화의 주도적인 담론이 되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무모한 추측만도 아닐 것이다.
2. 새로운 형상미술의 양상과 전개 ● 앞서 말한 바 있지만 80년대의 형상미술의 전개가 그리 단조로운 가락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념적으로 혹은 방법적으로 서로 상이한 통로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여러 동기와 이해관계를 복잡하게 가진 크고 작은 규모의 그룹들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양상을 분류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80년대 형상미술의 가닥을 잡아본다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가 하이퍼리얼리즘 혹은 포토리얼리즘이라 불리는 극사실주의적 경향이며, 둘째가 계급적 삶과 현실의 반영 및 인식의 원리로서의 현실주의적 경향, 즉 민중미술이다. 이 밖에도 세 번째로 삶과 미술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내면적 형상언어를 토로하는 신표현주의적 경향과, 네 번째 종래의 형상을 새로운 감수성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시키는 포스트모던의 경향과 같은 것들로 구분할 수 있다. ● 극사실주의적 경향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이다. 미국에서는 60년대 후반부터 팝아트의 전통과 객관주의적 전통에 입각하여 일상적 현실을 극단적으로 포착하여 중립적으로 표현하는 리얼리즘의 일종으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미국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미니멀리즘과 컨셉추얼리즘과 같은 경향과 일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경향들에 대해 아이러닉한 수사법을 구사하는 미국적 리얼리즘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극사실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성행한 데에는 다른 맥락에서의 배경과 그 양상이 있었던 것이다. ● 우리나라에서는 '동아미술제'나 '중앙대미술대상전'과 같은 민전과 '대학미전'과 같은 기관주도의 전람회들에서부터 주로 선보여져 젊은 세대들에게 형상미술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열기를 불어넣은 바 있다. 특히 묘사력 중심의 입시를 거친 젊은 작가들이 미국적인 객관주의적 사고의 부분은 생략하고 우리의 아카데믹한 구상회화의 감각을 가미하여 서정적이고 유미적인 화면을 구축하거나 초현실주의적인 구성을 혼합하여 시각적 메시지를 증폭하는데 역점을 두는 등 상이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석주, 주태석, 지석철, 고영훈, 김강용, 배동환, 이승하, 김용식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필립 펄스타인과 같은 묘사력 중심의 페인팅을 바탕으로 서정적 화면을 장식한 주태석, 척 클로즈 등의 확대 이미지로 중성적인 형상성을 전개하는 이석주와 지석철, 후기미니멀에 가까운 오브제의 주관적 변용의 김강용, 초현실주의적인 화면구성과 개념적인 성향을 동시에 보이고 있는 고영훈, 환상적인 인물처리로 시선을 끈 바 있는 김용식 등이 두드러졌다. ● 이러한 극사실주의를 기초로 한 주요 그룹으로는 1978년 창립전을 가진 '사실과 현실' 및 81년 창립전을 가진 바 있는 '시각과 메시지' 그룹을 들 수 있다. '사실과 현실'의 경우 주태석, 지석철, 조덕호, 서정찬, 송윤희, 김강용 등이 주축이 되어 82년까지 주로 미술회관에서 5회까지의 전시로 활동을 마감하였다. 한편 '시각과 메시지'는 고영훈, 이석주, 이승하, 조상현 등을 중심으로 하여 결성되었으며, 84년 5회전으로 종료되었다. 80년대 후반에 가서는 다른 류의 형상계열과 연대하여 전환기적 미술의 한 갈래로 재편성되기도 하였다.
한편 민중미술의 경우는 가장 주도적으로 70년대를 주도한 추상미술과 미니멀리즘을 제도적, 권위주의, 형식주의 등으로 매도하여 재현적 형상의 역할을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원리화하면서 태동하였다. 특히 서민의 미술동참과 향유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현실의 반영과 변혁적 이식의 문제를 최대의 논점으로 삼으면서 많은 소외 작가들을 규합할 수 있었다. 또한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8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는 정치적인 변혁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으면서, 현실적인 힘을 축적하기도 하였다. 대체로 사회적 상상력에 입각하여 현실의 수동적 반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행위의 유발을 가능케 하는 선전과 선동을 목표로 삼고 있는 터에, 재현적 형상은 상당히 전투적이며 거친 모습으로 표출되곤 하였다. ● 최초에는 형상의 정당성을 논의하는 수준에서는 많은 호응이 이었으나, 그것의 혁명적 도구 하에 대한 논의가 주도되면서 낳은 동조세력들이 이탈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다. 한편 80년대 말부터 일기 시작한 동구권의 개혁과 개방의 물결에 상당히 당혹한 나머지 극단적인 급진세력이 주체사상을 그 대안으로 들고 나오는 등, 거듭되는 선명성 논쟁으로 운동 지속의 한계를 보이게 된다. 따라서 이미 천명된 미술의 민중 혹은 대중화 노력이 자생적이고 보다 탄력적이어야 할 필요에 직면하여 거대한 전화기적 흐름에 동참하는 추세를 보이기도 하고 있다. 그 결과 민중미술에서의 형상은 혁명보다는 대중적 공감의 폭이 큰 통일의 문제를 담거나 혹은 참교육, 노사문제, 환경문제, 여성문제와 같은 현실 속의 비교적 적은 이야기들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쪽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 70년대의 고답적이고 자폐적인 미니멀리즘에 대한 대응은 극사실주의적 회화나 리얼리즘 화회와는 다른 형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것을 신표현주의적 형상회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부르는 까닭은 아무래도 독일 신표현주의가 국제적으로 선전(善戰)을 펼치고 있었던 당시의 분위기와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며, 우리의 현실에 파고들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자 하는 측면에 기인한다. 이는 이른바 '후기형상미술(장석원)'이라 불리기도 하면서 그동안 억압되어온 주관적 감성과 표현의 재건을 모토로 하여 삶과의 내면적 연대를 부르짖게 되었다. 한편 이는 대립적 화단구도를 지양하는 제3의 대안적인 미술로서의 입지를 겨냥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삶의 영역을 리얼리즘과는 어느 정도 반분하면서 상당 부분 오버랩되고 있다. 그런 감성을 자유롭게 표출시키는 가운데 현실의 문제를 비판적으로만 다루고자 하는 점에서는 리얼리즘과는 변별되고 있었다. 리얼리즘의 시각에서는 루카치가 표현주의를 '소시민적 저항의 표현'이라 비난하였듯이, 전술적 연대는 가능하지만 근본적인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은 극복될 수가 없는 것으로 배척해온 터이다. 하지만 이런 점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대립적 구도 속에서 독자적이고 중층적인 입장으로 부각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한강미술관을 거점으로 한 독자적인 미술운동의 한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 대표적인 작가들로는 정복수, 이상호, 장경호, 김보중, 신학철, 김진열, 권칠인, 전준엽, 김산하, 홍효창, 이흥덕, 조용각, 장명규, 김경인, 손장섭, 오원배, 고경훈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8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부터 조직적인 운동의 퇴조를 맞게 된다. 게다가 가설적인 신표현주의와의 관계가 공공연한 관계로 드러나면서 가뜩이나 유동적인 조직에 해체되는데, 일부는 민주화 열기에 편승한 리얼리즘으로, 일부는 소위 전환기적인 탈모던 미술의 진영으로 재편되는 이합집산의 소용돌이를 겪게된다. ● 80년대 초반과 중반의 격랑이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서 화단의 재편구도가 서서히 정중동의 모색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것은 종래의 모더니즘의 발육이 중지된 상태에서 리얼리즘의 좌절을 딛고 어떤 힘의 진공을 채우려는 다소 급조적으로 지양, 종합된 탈모던의 인식론적 재편구도이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는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한 내부적 요구와 변증법적 도정의 결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70년대 말부터의 극사실주의에서 형성된 형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신표현주의적 양식들과 함께 절충되어 새로운 현실이 미술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는 무어라 규정할 수 있는 근거로서의 공통적인 특징을 찾고 있는 일이 그리 쉽지 않으며, 또한 그것의 담론들도 대단히 침묵적이면서도 수다스런 것들이어서 '포스트모던 형상미술'이라는 잠정적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다. ● 그러나 힘의 진공을 틈타 들어온 이 새로운 경향은 새로운 판도의 주역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초현실주의적 어법이 적용된 극사실주의나 신표현주의, 후기미니멀리즘, 뉴페인팅 등으로부터 온 양식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기껏 형상이라는 동질성 하나로만 묶기에는 집합이 성립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이러한 양상이 '現·像' 그룹에서 잘 발견되고 있다. 86년 창립전을 가진 '현상'은 91년 6회전에 이르는 동안 30명 내외의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여 그 실세를 입증하였다. 이들에게 있어서의 형상의 역할도 다양한 층을 이루고 있다. ● 80년대 초반부터 일관되게 극사실주의적 형상세계를 견지하고 있는 이석주, 고영훈, 지석철, 주태석, 김우환, 김종학 등의 경우는 도시적 일상을 반영하는 사실성을 바탕으로 중산층의 감성구조와의 밀착의도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자아의 상실증을 환각적 혹은 단절의 현실 속에서 재현하는 권여현, 황용진, 그리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 고백하는 자아의 모습을 그린 박권수, 몽환적인 행위가 의식과는 동떨어진 김용식, 김유준, 이 밖에도 경험적 대상 속에 자연 혹은 무으식의 충동과 행위를 투사하고 있는 류인, 김영원, 임영선, 이용덕 등은 모두 형상의 매개를 통해 상이한 양식의 변모를 반영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이제 형상의 역사적 재등장고 재인식의 상황을 잘 반영해주고 있으며, 탈이데올로기적 미술구도의 도래를 의미하고 있다.
3. 새로운 형상미술의 성과와 과제 ● 그러고 보면 80년대를 장식한 것은 것은 형상계열인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아닌게 아니라 80년대는 형상과 표현이 회복된 시대였다고 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물론 현실과 사실에 대한 인식과 표현에 있어 전혀 상이한 방식으로 접근한 새로운 미술의 패턴도 대단히 많다. 그러나 형상이 새롭게 등장함으로써 야기된 결과는 근원적으로 현대미술의 동질성을 이데올로기 밖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며, 형식과 내용에 있어 그리고 양과 질에 있어서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대립과 반목의 격랑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제 역사가 80년대를 묶어 새로운 형상의 시대로 부를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역사는 형상과 추상 혹은 행위와 같은 것들이 인간의 존재와 경험, 언어 등을 둘러싼 상호보완적인 것임을 머지 않아 깨닫게 해줄 것이다. 아니 이미 깨닫게 하지 않았는가. ● 지난 80년대 전체를 통해 개진된 형상미술의 성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미술이 삶과 현실을 다각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대의 어떠한 미술도 삶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만, 더욱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심층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밀착되게 한 것은 역시 형상의 작용이었다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침묵의 미술에서 벗어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어 미적 기호와 상징의 체계와 내용, 그리고 그에 따른 미적 경험을 풍부하게 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성과는 개인적 차원의 상상력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상상력을 환기시킨 성과를 낳게 하였으며, 침체된 감성적 국면을 회복시키게 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셋째, 미술이 좀 더 대중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후기산업 사회의 사회상황의 변화와 감성구조의 변화에 일치하는 언어의 탐구가 형상의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으로 해서 더욱 대중에게 친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게 되었다. ● 그러나 80년대의 형상미술에 부과된 과제 또한 중대하다. 우선 무엇보다 대부분의 형상적 표현의 계기들이 외래 사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투적 편의주의에 젖은 미국적 극사실주의나 게르만적 우수와 신경질적 감성의 신표현주의, 중독적 환각의 기호로 난무하는 뉴페인팅 등이 과연 우리의 집단적, 전통적 감성과 어떠한 관련을 가질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에 지나친 의혹 혹은 경도에 의해 미술이 우리의 현실적 모순을 바로 잡을 수 있다거나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는 신념 속에 그 어떤 주체적 동일성이나 전통을 타도의 대상으로만 삼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여 보자. 먼저 극사실주의의 경우 기교적 형상에만 의존하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소재주의 방식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형상을 지나치게 중성적이고 특정 계층의 것으로 고착하는 어떤 폐쇄적 담론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파편화된 현실에 대한 작은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타당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능사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리얼리즘의 경우 그것이 비판적인 한에서 그것은 대중적 수용이나 호응이 가능함이 명백해졌다. 또한 세계를 보는 총체성 역시 국내외의 전반적인 전세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가운데, 형상을 좀 더 유연성 있는 미적 경험과 이식의 도구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 밖에도 신표현주의적 경향이나 그 밖의 이질적 감성의 형상미술은 자연성과 원형적 동질성을 획득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자주적 미술문화는 이 땅에서 요원할 것이며, 전환기의 어두운 구름은 걷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야말로 형상미술은 회복 그 자체에만 능사가 아님을 자각하고, 우리의 주체적 동일성을 굳건히 하고 상징적 조형의 전통을 어떻게 재창조해야 할 것인가 모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유희와 상징으로 충만한 우리의 고유 전통도 오늘날의 감수성에 새롭게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체계로 전환시키지 않으면 안될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형상은 재현적 상태 그것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상황에 따른 다양한 변용과 승화 및 재창조의 과정이 필연적인 전환기적 과제로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4. 결언 ● 형상은 개념의 하위에 있어야 하는 감각적 현실의 것만도 아니다. 합리성의 변두리에 있는 것만도 아니다. 이미지 자체는 물론 가상의 세계임이 틀림이 없지만 그것이 사물의 본질과 인간 경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조형에 있어 형상이 가지는 기호성과 상징성은 수동적 재현만이 아니라, 제반 이미지들의 직관과 구성력에 의해 재구성되거나 새로운 체계로 조직됨으로써만 중폭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역사적 맥락에서의 형상 회복과 재인식이란 결코 우연적 사건이 아니다. 인상주의로부터의 일루젼 해체실험이 무려 1세기에 걸쳐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결과로 획득한 역사의 순리이다. 이렇듯 오랜 실험의 결과는 수사로서의 형상, 어법으로서의 형상, 상징으로서의 형상 등이 온전히 회복될 때만 시각이 언어일 수 있다는 사실의 인식이다. ● 이제 우리는 오늘날 복합적이고 다원화된 삶의 양감과 질감을 동시에 느끼며 살고 있다. 이러한 삶의 본질은 형상만으로 다 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 밖의 대안이 있다 해서 그것에만 닫혀 있을 수도 없다. 따라서 형상은 우리의 경험과 상상력 및 오성이라는 정신영역과 감각과 물질의 제반 조건 위에서 능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새로운 전자매체들이 엄청난 양의 신선한 이미지들을 뿜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후기산업사회의 양상이 형상미술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점에서는 그러한 삭막한 메카니즘 속에서 자연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듯이, 인간의 소박한 형상적 재현이야말로 가장 신뢰할만한 유일한 자연으로 군림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형상의 회복과 새로운 변용은 확실히 전환시대 미술의 지평이 되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어떠한 신화를 만들어 가느냐 하는 것만 남았다고 보아야 하겠다. 구전으로만 남을 신화가 아니라 눈으로 보고 눈으로 대답하는 신화 말이다. ■ 이재언
■ 편집자 주_윗 글은 80년대 미술운동 중 주요 이슈로 떠올랐던 형상미술의 성과를 필자 나름의 시각에서 정리한 것이다. '탈모던'의 비평적 관점에서 형상미술의 전개에 따른 당위성과 현대미술 문맥에서의 의미를 분석한 이 글은 향후 본 미술관에서 기획할 예정인 '구상회화의 재조명' 시리즈와 관련하여 대중들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고 여겨져 여기에 전재한다. 재수록을 허락해 준 『미술평단』 편집자와 필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글의 출전은 『미술평단』 1991년 가을호(통권 22호)이다.
90년대의 구상회화-풍경화와 현대적 조명 ● 타락한 이 시대에, 분열과 흠집으로 얼룩진 도시적 일상에, 기계화와 물질문명의 광포(狂暴)하고 치밀한 그물망 속에서 자연을 그리는 '풍경화'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어느 의미에서는 과학기술 문명의 과도한 발달과 물질만능의 세계관, 철근과 콘크리이트 박스 속에서 컴퓨터의 키보드만을 두드리는 삶과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의 끊임없는 피폐화와 황폐화가 가속도로, 파멸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그것의 회복과 '자연과의 무한한 친화'를 통해 '원초적 삶에의 동경'을 꿈꾸는 행위가 나름의 절박한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작금에 와서 종래의 비교적 단일한 시각으로 그려지던 자연관에서 벗어나 폭넓고 깊이있는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에 주목하는 일군의 움직임들이 보다 활발해지고 있는 듯하다. 실상 그간에 우리의 경우는 일제를 통해 받아들인 인상주의 및 자연주의 화풍의 영향으로 인해 자연스레 풍경화가 독립된 장르로서 집중적으로 그려지게 되어 왔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그 풍경화에 대한 종래의 인식은 자연주의적 복제의 개념 내지 즉물적인 차원에서 묘사하는 틀 속에 한정되어 왔다고 여겨진다. '아카데믹한 낡은 풍경화' 내지 '보수적 장르 개념으로서의 풍경화'로 굳어져 온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연을 보다 아름답게 미화해 내거나 정취적인 분위기의 단순한 삽입 내지는 거울처럼 전사해 내고자 하는 욕구(왜곡된 미술관, 미의식)들이 풍경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차단해 오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이는 자연에 대한 인식이란 것이 우리들 삶과 생활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수준에서 행해지기 보다는 절대미에 대한 압박감과 묘사의 의미에 대한 빈약한 이해(현실의 외면을 복사한다는 저급한 차원에서의 리얼리즘 인식과 무의미한 대상의 자연주의적 묘사관)에 기인하다고 여겨진다. ● 우리가 자연을 경험한다는 것은, 경험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이 바로 우리를 존재케하는 힘이며 이는 삶의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인에게 있어 자연이 유효한 것도 그것이 여전히 우리들 생명의 근원이요, 형의 본질이고 정서의 원형이자 감동의 발원이기 때문이며, 어쩌면 그것은 이 추악한 현실을 이기는 꿈의 자궁에 다름 아니다. ● 그래서 자연을 바라 본다는 것, 그린다는 것은 결국 자연 그 자체에 대한 해석에 국한되어 있다기 보다는 한 시대가 요청하는 정서와 세계관, 생활감정, 미적 취향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겠다. 자연에 대한 접근은 그 재현을 통해 외부세계가 어떠한 문맥 속에서 반영되는가 하는, 보다 복잡하고 중층적인 인식들의 의미망에 걸려 있으며 그에 따라 폭넓게 세계와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풍부한 모습을 담아내는 이식 기능이 동반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에 개입된 인간의 사회적 존재방식을 환기시켜 주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해석, 즉 세계관의 개입이란 것이 풍경화에 있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실상 자연이란 것도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주목된다기 보다는 그것이 인간의 삶과 역사의 반영인 동시에 그 산물이며 아울러 우리의 사회적 삶과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주목하는 것이다. ● 이에 따라, 종래에 풍경화라는 장르의 작품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도 그것을 단순히 자연 자체의 묘사여부(있는 그대로의 풍경, 꾸며주는 풍경)에만 방점을 찍을 것이 아니라 풍경을 보는 작가 개인의 인식 지평 내지 세계관을 통해 드러나면서 동시에 '우리다운 심성의 표백'으로 끌어 올려지고 있는 풍경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진지한 탐구 자세를 한 축으로 하면서 그리고 우리 시대의 감각과 문화적 정서를 반영하면서 또한 사회 역사적 삶의 공간으로 표출되는 자연과 도시문화 속의 풍경에 대한 집요한 성찰이라는 또 하나의 축이 상호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풍경은 소재적 차원에 국한되어서 아름답게 치장되어 그려지는 것이 아닌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삶의 현장'으로 또한 '한 작가의 세계관과 미술관이 녹아 있는 주제'로서 자리해야 할 것이며, 풍경이란 다름 아닌 '세계에 대한 시각의 양식'이며 '혼의 상태(아미엘)'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근자에 이르러 풍경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고루하고 편협한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각기 독특한 시각과 방법론으로 풍경을 해석해 내고 있는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이를 몇 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 첫 번째는, 비교적 전통적인 의미에서 재현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작가들을 꼽을 수 있겠는데 이 유형에는 우리 속에 융화된 풍경을 한국인의 정서와 생리로 해석해 내면서 유화의 특성에 주목하는 이원희와 서정적 감수성에 짙게 드리워진「안개 풍경」의 이호중, 그리고 샤머니즘적 색채와 향토성을 주축으로 하면서 치밀한 묘사력을 보이는 이강하를 비롯하여 정재성과 최경철 등이 있으며, 정적인 화면 분위기를 표현주의적 색조와 터치로 간략화시키는 박용인의 경우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 두 번째는, 대상의 즉물성을 강조하면서 다분히 개념적 접근으로 추상과 구상이 공존되는 양상을 꼽을 수 있는데, 이에는 저치한 묘사로 은밀하게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를 그리는 주태석과 흙의 질감으로 묘사하는 서정찬, 알레고리로 드러나는 자연의 돌발적인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는 이석주 및 이중적 회화 구조 속에 드러나는 임철순의 풍경 등이 이 범주에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 세 번째는, 추상적 어법으로 자연을 이미지화시키는 부류인데 여기서는 자연의 이미지를 추상적인 점으로 동의시키는 유병훈, 자연의 표면에 관한 인지적 측면에 주목하는 안병석, 모노톤의 절제된 색면추상으로 드러나는 관념적 차원의 풍경을 그리는 이나경, 기하학적 형태로 땅의 생태학에 주목하는 박영국의 작업 등이 모더니즘 기법으로 풍경을 해석하는 측면이라고 파악된다. ● 네 번째는, 자연의 대상이 상징이나 알레고리의 수단이 되면서 자신의 내밀한 심리상태를 표출해 내는 작가들로서 여기에는 현란한 색감의 추상표현주의 기법을 동원해 한국의 자연을 드러낸 최욱경, 환상적인 색감으로 내면적 사유의 공간으로서의 풍경을 그리는 한석란, 그리고 신비하고 은밀한 비교적(秘敎的) 분위기의 숲을 그리면서 '정신적 동화로서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그 자연과의 교감을 꿈꾸는 윤해남, 김명숙 등이 해당된다고 하겠다. ● 다섯 번째로는, 우리들의 생활공간으로서의 풍경을 현실반영적인 동시에 역사적·사회적 삶의 풍경화로 들어올리고 있는 작가들을 지적할 수 있는데, 분단 상황을 순수조형 요소로 그리면서 강력한 감정을 환기시키고 있는 송창과 손기완, 그리고 톱밥을 이용한 독특한 마띠에르 감각을 살리면서 분단현실과 농촌문제를 다루는 나종희, 생동하는 우리네 현실의 당을 자유로운 상상력과 탁월한 기법으로 해석하는 임옥상 및 우리 민족의 삶의 기록으로서의 풍경에 몰두하는 김산하, 역사와 삶에 관련된 우리의 공통된 정서의 풍경을 그리는 손장섭 등을 꼽을 수 있겠다. ● 아울러 일상의 현실 풍경을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의 동시대비로 보여주는 최진욱과 역사의 교훈을 들려주는 땅의 여러 요소들을 드러내는 김우한과 김영덕, 아울러 산을 통해 시대를 표출하는 이상국, 권순철 및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서울의 풍경에 몰두하는 오치균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 이상으로 분류해 본 우리시대 풍경화의 제 경향(서양화)들이 전적으로 작금의 경향을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이들의 작품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풍경(자연)이 다양한 표현방법과 세계관, 미의식으로 드러나고 있음에 주목해 보면서 앞으로 풍경화에 대한 보다 폭넓은 가능성과 새로운 인식 및 모색의 장이 더욱 확장되었으면 한다. ■ 박영택
『自然, 그 새로운 해석』展은 당시 책임기획자인 윤진섭님의 허락을 받아 복원된 것입니다. 참여작가님 중에 이미지의 보완 또는 삭제를 원할 경우 [email protected]으로 연락 주십시오. 즉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Vol.19920505b | 자연(自然), 그 새로운 해석 2-구상회화의 재조명 시리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