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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기획 / 장익화_이섭
한강미술관_폐관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5-46번지
김진하(이하 김)_판법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면 역시 작고하신 오윤씨의 판법과 작품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군요. 오윤씨의 판화들은 굉장한 매력이 있죠. 우리정서에 근접하는 요소들은 많고 …… 먼저 그분이 갖고 있는 의식세계가 건강하고 작품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애환, 그것을 극복하는 생명사상, 풍자성의 내용 등은 튼튼한 형태구조와 투박하면서도 유연한 선의 효과, 두터운 힘 등 시각적 효과가 무게와 함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그렇듯 뛰어난 작가였으므로 전형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선에 의한 양각 판법의 형식이 전형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판법 전부일 수도 없고 …… 목판화에 대해서 작가가 갖는 자세에도 문제가 있는데요, 그 재료가 갖고 있는 다양하고 독특한 성질을 파악하고 활용하려 하지 않아요. 목판은 작가가 선택하는 나무의 종류와 칼, 그리고 찍을 때의 여러 가지 방법 등을 염두에 둔다면 매우 다른 각각의 효과를 낼 수 있거든요. 나뭇결에 따라 가로나 세로로 칼을 사용하는 맛이 상당한 차이를 갖고 있다든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윤씨 작업처럼 창칼이나 세모칼로 윤곽의 굵은 선을 남기고 부수적 여백에 둥근칼이나 끌칼을 사용하는 방법을 무조건 모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지요. 그것은 나무의 상태에 칼이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칼의 도식성을 부여하는 것 뿐이죠. 그 원인은 결국 형식이나 재료에 대한 표현욕구보다는 내용만을 전달하면 된다는 식의 틀로부터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한 사고의 한계에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경우 목판을 고집하는 것은 의미가 없게 되겠지요. 발달된 다른 판화매체들의 기술적인 면들을 사용한다면 오히려 표현의 극대화를 통해 내용전달이 용이하게 될 여지가 있을 테니까요.
이섭(이하 이)_목판화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을 충분히 갖춘 작품은 없다하더라도 목판화가 사용되어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온 경우에 대해서, 즉 그 쓰임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겠군요. 목판화의 활용은 80년대 문화운동에서 미술의 큰 몫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고 여겨지는데요... 김_에, 그 점은 일장일단이 있음을 먼저 이야기 해놓고 실제로 목판화가 여러 곳에서 대중들의 구체적 삶의 현장에 들어왔음은 쉽게 보이는 현상이 되있습니다. 대학가 학생운동의 포스터, 전단 등과 출판문화운동, 노동운동에까지 훌륭한 매체로서 강한 시각효과의 특성을 최대한 이용한 긍정적인 면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걸개그림이나 만화매체의 등장과 그 기능, 활용도, 효과 등에 견주어 어느 정도 목판화는 한계를 갖게 되있죠. 곧 목판화라는 특성을 단순기능에 접목시켜 이해하려 했던 점은 반성해야죠. 그래서 치밀함을 작가 스스로가 갖추어 작업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일 수 있다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_이제 영향을 받았던 또는 우리목판화에 영향을 끼쳤던 외국의 목판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겠군요. 외국의 목판운동, 독일의 표현주의 목판화라든지 중국의 목판운동, 멕시코의 몇 작가가의 작품 등은 어느 정도 우리에게 지적인 보충을 가져다 주었고 판화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기도 하였으며 목판에 대한 매력을 한껏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이념적으로 민족주의와 초기 목판에 전통성을 부여했던 우리작가들이 관심을 두고 이식의 경도마저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김_외국의 목판화운동과 판법 등이 영향을 받았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목판화 작가들이 어떤 공통점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즉 독일이나 중국, 그리고 멕시코 판화들이 활발했던 시기의 정치, 사회, 문화구조가 갖는 유사점이죠. 모순된 구조에 대한 변혁의 필요성, 외세에 대한 저항,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80년대 상황과 유사하거든요. 특히 독일의 판화는 많은 작가들을 매료시켰는데 개인의 주관성을 전적으로 중요한 표현주의의 한계점은 짚으면서도 그 파급효과는 대단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많은 목판화 작가들이 이런 좋은 판법들이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언어로 극복하지 못한다든지 혹은 상대적으로 선묘만 남는 형식이 판법을 고집하거든요. 그 선묘만을 강조하는 판법은 오윤이라는 걸출한 작가 때문에 준거틀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메카시한 오류 또한 갖게 되었습니다.
이_외국작품의 예와 함께 창칼로 전체적인 윤곽만을 강하게 표출시키는 판법은 상대성으로 말미암아 우리 것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 준 것이 사실인데, 이 경우 앞서 김진하씨가 지적하신 데로 오윤이라는 작가의 성공적인 작품이 주는 결과인지, 전체적인 설명을 해낼 수는 없는 판법이거든요. 외국이든 우리의 옛목판이든 기술적 기본 형태가 선묘중심의 판법이었고 이는 인쇄술의 일부분으로 다량복제와 함께 판을 오랜 기간 동안 파손시키지 않으며 찍어낼 수 있는 기술적 측면의 사인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김_덧붙여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에는 작가가 작품을 제작한다거나 아니면 목판화라는 독립된 장르로서 제작되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한 복제를 위한 인쇄술로 판화기술이 사용되었다는 점이고 그러니 새로운 표현방식의 습득이나 파법의 개발을 하고자 하는 작가적 표현욕구는 크게 필요가 없었죠. 그런 의미에서 독일표현주의 목판화는 표현영역을 크게 넓힌 하나의 예로서 많은 작가들에게 수용되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_지금 독일 목판화를 예로서 이야기하셨는데, 저의 생각으로도 선묘를 중요시하는 판화기법을 제외한다면 대개가 영향을 독일 목판화의 표현주의 시기의 작품에서 받았다는 느낌입니다. 중국의 근대목판화도 독일 표현주의 목판화를 노신이 소개함으로써 기폭제를 삼았듯이... 그러나 중국 목판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판법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인데, 우리가 작업방향을 세워 나가는데 있어 좋은 선례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중국 목판화는 이데올로기의 상승효과로서 중국의 혁명과정과 목판운동이 주는 매력 외에는 판법에 있어 크게 시사했던 점은 없었다고 보여지거든요. 거기에 비하여 독일 목판화는 목판의 표현영역을 확대한 점은 인정해야 하리라 봅니다. 김_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작품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우선 논외로 하고, 목판화 칼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봐요. 완벽한 밑그림을 그려 놓고도 도장 파듯이 나무를 재단하고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자유분방하고 감각으로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죠. 도상은 단순하되 단조롭지 않고 이미지는 긴장감과 함께 극대화되어져 읽혀지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목판화의 형식과 판법에 대한 저의 관심은 즉발적인 칼의 사용과 효과가 일차적인 매력에 있습니다.
이_그러면 이제 목판화가 다른 판화 매체와 비교하여 갖게 되는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하겠군요. 저의 생각으로는 목판화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가 흑·백의 선명하고 강한 통의 대립이 주는 효과를 우선 이야기 할 수 있겠는데, 그런 장점들은 90년대 목판화들이 적절한 효과를 살리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다색목판화가 갖는 또다른 입장은 충분히 인정해야겠지만... 목판화의 표현과 내용에 있어 특성을 지적해보고 싶은데 전체공정이 다른 매체에 비해 짦기 때문에, 그러니까 작업과정에 기술적인 지루한 과정이 상대적으로 생략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즉발적으로 접근하고 표현과 내용의 거리가 짦아져 일치감을 빨리 밖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김_또 다른 판화매체에 비하여 굵고 거칠은 느낌과 자연스럽게 형태의 과장과 생략이 명쾌한 시각적 효과로 바로 연결될 수 있고 강한 이미지를 살려낼 수 있다는 점이죠.
이_기술적인 면 외에 판화가 갖는, 특히 목판화가 갖는 특성이 있다면 여기서 거론되어야 할 것 같군요. 김진하씨는 회화와 판화 모두를 다루고 있는 작가로서 개인적인 이야기 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 김_일단은 판화가 회화의 부수적인 장르라는 생각에서 또는 회화에서 이미 표현했던 소재를 되풀이 해도 좋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겠지요. 저의 경우 목판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제가 표현하고자하는 내용과 단색 목판화의 표현방식과 특성이 아주 적합하게 맞는다고나 할까요. 여러 가지 판화들을 학교 재학시 몇 번 경험했지만 결코 목판화의 부드럽고 서정성이 강한, 그러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살려주는 특성에 미치지 못했거든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찍혀 나오는 도상에 대하여 예상을 하면서 제작을 하지만 우연한 효과 또한 늘 내재되어 있고... 그 점이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나무를 찢어 가듯이 사용하거나 긁듯이 한다거나 톤을 조절하면서 우연에 대한 기대치는 늘 남겨 두지요. 이런 점 등이 다른 매체와 그리고 다색판과의 차이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_제가 김진하씨 이야기에 덧붙여 이야기 한다면, 80년대 우리가 바라고 지향코자 했던 사상이 방향과 목판의 특성은 적절한 어울림을 갖추었다고 봅니다. 물론 목판화가 감당한 몫에 대한 정당한 평가이겠지요... 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가령 불끈 주먹진 형상을 회화와 모간이 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면 그 차이는 누구라도 상상이 가능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특성이 좋은작품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일회적 용도에 그쳐 버린 점이죠. 작가들이 다루어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과 메시지는 이미 그 완숙도나 건강함에 모두가 공감하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작가들이 갖게 되는 작품의 완성도는 형식과 특히 목판에서의 판법문제가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적절한 그릇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가 기획되었고... 김_어떻든 80년대 후반 들어 목판화의 운동적 측면, 즉 기능성과 효용성은 걸개그림이나 만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효과가 반감된 듯 보여지거든요. 그렇다면 목판화의 의미조차 축소되어야 할까요? 저의 생각으로 이런 시점에서 목판화작가들이 노력을 배가하여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형식과 내용의 완벽한 일치가 여타 회화장르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판화이니까요. 이_긴 시간 대담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업을 기대하겠습니다. ■ 이섭_김진하
『뜨거운 눈빛 - 한국의 목판화』展은 당시 책임기획자인 장익화_이섭님의 허락을 받아 복원된 것입니다. 참여작가님 중에 이미지의 보완 또는 삭제를 원할 경우 [email protected]으로 연락 주십시오. 즉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Vol.19891106b | 뜨거운 눈빛-한국의 목판화展 ②